한국 사람은 대개 ‘영성’이라는 단어를 보고 기독교를 떠올린다. ‘하나님의 마음 자체인 영성을 깨치자’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최근 불교계, 특히 불교 복지계에서도 ‘영성’이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불교적 영성을 통해 한 단계 높은 복지를 이루자는 것인데, “‘영성’이라는 단어를 불교에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 한가”의 문제로 의견이 분분하다.

사전적으로 ‘영성(靈性)’은 신령한 품성이나 성질을 의미한다. 기독교 용어라고는 어느 곳에서도 못 박고 있지 않지만 불교계 내에서 정리된 입장이 없어 논란이 가중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영성의 어원이 기독교가 아닐 뿐 아니라 해외에서는 영성이 종교를 초월한 인간 본래의 속성으로 이해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한국 불자들이 이 단어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버리고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말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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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라는 용어에 대한 사용 논란이 벌어진 ‘통합적 사회복지 실천을 위한 불교적 영성과 복지’ 포럼 장면

반대되는 시각도 있다. 영성은 명백하게 ‘신적인 만남으로 회개한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며 교회의 신성함을 이야기하는 오염된 단어이기 때문에 불교에서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것이다. 이들은 또 불교의 ‘자비’나 ‘하화중생’ 등 영성보다 차원이 높은 개념이 이미 존재하는데 왜 기독교적이고 허상적인 개념을 불교에 접목하려 하냐며 저의를 묻기도 한다.

이 같은 논란을 반영하듯 7월 10일 한국불교역시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통합적 사회복지 실천을 위한 불교적 영성과 복지’ 포럼에서도 ‘영성’을 주제로 한 뜨거운 논의가 오갔다.

크게보기도승자 중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오른쪽 사진)는 ‘통합적 사회복지실천을 위한 영성적 접근’이라는 발제를 통해 “영성을 기독교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기는 현상은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고, 영성은 특정 종교에 관련 없이 어디에서나 종교 본질적인 면으로서의 ‘종교성’을 표현해주는 말”이라며 “미국의 경우 영성이란 말을 이슬람, 불교 신자 등 모든 종교인이 전혀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는만큼 한국에서도 본뜻을 회복하여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크게보기‘불교적 관점에서의 영성과 사회복지’로 발제한 권경임 복지영성연구소 대표(왼쪽 사진)도 “불교적 영성의 관점을 확립하고 사회적 실천의 관점에서 연구 돼야 할 것”이라며 도승자 교수와 뜻을 같이 했다. 권 대표는 특히 불교경전에서 영성(靈性)이란 용어를 많이 찾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교가 기독교보다 먼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권 대표는 “<수심결>은 대승불교의 불성사상에 기초해서 영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대보적경>에는 일체의 무량한 불토에 모두가 영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종경록>은 모든 만물이 모두 동일한 영성을 갖고 있지만 수행의 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했으며 또한 <신화엄경론>에서는 영성이 수행에 의해 고취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며 “대승불교의 경전과 논서, 선어록 등에 나타난 영성은 불성(佛性)과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여래장(如來藏), 자성(自性), 각성(覺性), 일심(一心)과도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용어 사용에 논란이 뜨거운 것과 관련해 불자들이 가진 ‘용어 콤플렉스’를 되돌아볼 필요성도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예컨대, ‘장로(長老)’나 ‘예배(禮拜)’ 등의 용어가 기독교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이들이 불교에서 전래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심지어 요즘은 불교의 대표적인 사상을 나타내는 ‘자비(慈悲)’를 천주교에서 차용, 천주교의 용어인양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불교 용어로 쓰일 근거가 충분한데도 기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거부하는 것은 콤플렉스에 다름 아니라는 지적이 힘을 얻는 이유다.

물론 일각에서 제기된 “불교에는 영(靈)이라는 용어보다 심(心)이 더 진리에 부합한다. 불교의 용어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포교지, 세상의 용어를 불교에 끌어들이는 것은 불교의 법성을 흐리는 것일 수도 있다”는 지적도 일리는 있지만, 세계적인 흐름과 해석에 맞서 빗장을 걸어 잠그는 것도 옳은 자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성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심리학계와 정신학계 등에서 사용되어온 말이다. 아직 한국에서는 종교성과 영성이라는 개념의 차이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지만 ‘종교의 경계를 초월하여 인간의 삶에서 영감을 주고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원천’으로의 본뜻을 회복하여 과학․의학․복지 등 다양한 범위에서 자유롭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이날 포럼의 분위기는 불교계에 만연한 용어 기피 콤플렉스에 작은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