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거사(居士)로 보는 중국불교사가 출간됐다. 거사로 보는 한국불교사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 거사들의 활동을 정리한 책을 만나니, 부럽기도 하고, 일면 착잡한 심정을 금할 길 없다.

책의 이름은 <중국불교의 거사들>(운주사)이다. 저자는 현재 중국 절강성 항주의 절강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한·중 불교교류 연구와 사업에 매진하고 있는 김진무 박사다.

중국에 불교가 뿌리내리고 역사 속에서 화려하게 꽃피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출가자들뿐만이 아니라 재가 거사들의 뛰어난 활약이 있었다. 이 책은 중국불교의 대표적인 거사들의 삶과 사상, 즉 그들이 당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불교를 위해 헌신하였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개괄하였다. 이를 통해 중국불교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 온전한 인식이 가능하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중국에서 불교는 다분히 황실의 필요성, 즉 ‘경세(經世)’의 유용성 때문에 이식되어 받아들여진 면이 있다. 따라서 황권의 의중이 불교의 쇠락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황실의 태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재가 거사들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었던 면이 있었다.

하지만 중국불교사에 있어 거사들의 역할을 출가 고승들의 업적에 가려져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해 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런 사정은 한국불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책은 먼저 서론에서 ‘거사’의 개념 및 거사불교와 관련된 자료들을 정리하고 나서, 중국의 거사불교가 담당해온 역할들을 호법활동, 사찰의 건립과 유지 보수 등의 재물 보시, 교학적인 활동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어서 본문을 7장으로 나누어 구체적인 거사들의 행적과 사상, 역할을 통하여 중국 거사들의 불교인생과 거사불교의 역사를 고찰하고 있다.

제1장에서는 먼저 중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에서 유교와 도교의 반발, 그리고 배타적 중화사상에 직면하여 삼교융합에 힘쓴 모융으로부터 시작하여, 중국 초기불경 번역의 선구자인 안현과 지겸, 그리고 중국 최초의 결사 모임인 백련결사에 참여한 사령운, 유유민 등의 행적과 수행을 자세히 수록하였다.

제2장에서는 양무제와 방거사 등 남북조 시대에 활약한 거사들을, 제3장에서는 수문제와 이사겸, 이통현 등을, 제4장에서는 장상영, 왕일휴 등을, 제5장에서는 이순보, 야율초재, 유밀 등을 다뤘다. 제6장에서는 명·청대의 거사들로 도연 요광효, 원굉도, 팽제청 등을 다뤘고, 제7장에서는 근대 중국불교에서 활약한 양문회, 구양경무, 천재여징, 탕용동 등을 소개했다.

중국불교사의 한 축을 담당했으나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겨온 거사들의 삶과 행적, 사상을 본격적으로 다뤘다는 것 자체로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이 책이 한국불교사에서 그늘에 갇혀 있는 이한상, 이희익, 장경호, 서경수, 이기영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재가불자들을 재조명하고 정당하게 평가하는 계기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370쪽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