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있는 풍경 때문인지 산중락(山中樂)은 겨울에 더 깊어진다. 장작 한 더미로 군불을 지피고 나서 간경이나 좌선을 하노라면 공부가 절로 된다. 그래서 겨울 안거는 무사(無事)를 배우는 기간이 아닐까 싶다. 일을 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돌이키는 일을 한다는 뜻이다.

20년 전, 그때만 해도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절집과 선방의 이야기들을 잔잔하게 소개해 독자들의 큰 호기심을 채워준 현진 스님의 <삭발하는 날>이 재출간됐다.

오래전 문투로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는 몇 바꾸고 조금 지루한 문장은 가볍게 첨삭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글 사이의 행간 읽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흥미롭게 다가온다.

지금이야 각 사찰마다 템플스테이를 실시하고 또 많은 수행 프로그램을 진행해 절집 생활이며 하루 수행이며 선방 정진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지만 <삭발하는 날>이 처음 출간될 때만 하더라도 산중의 절집 이야기는 알려진 바가 적었다. 책은 절집과 선방에서의 잔잔한 일상을 다섯 장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젊은 구도자의 수행담에 일상의 번민과 갈등이 현진 스님 특유의 필력으로 잘 녹아들어 있어 행간을 읽는 재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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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한철 정진 잘합시다’는 선방에서 초참(初參)을 지내던 때의 이야기를 담았다. ‘선방’이란 말에서 느낄 수 있듯 한철 정진과 방부 들이는 일, 소임 이야기, 치열한 용맹정진 이야기, 그리고 해제날에 느끼는 그 시원함과 허탈함의 감정까지 읽을 수 있다. 정말 그랬을까 할 만큼 치열한 용맹정진과 수행 이야기 사이사이에서 우리는 젊은 수행자의 구도 심리를 읽는다.

제2장 ‘햇출가 햇스님’은 현진 스님이 송광사에서 직접 밭일을 하면서 살던 율원 시절의 이야기이다. 김장 담그기, 감자 울력, 두견주 담그기, 원두 일기 등 대중생활의 즐거움이 물씬 드러나며 그 틈틈이 ‘나’를 돌아보는 수행 역시 빠지지 않는다. 따라서 읽는 독자들도 ‘나’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제3장. ‘치문리 일기’는 현진 스님이 막 출가해 햇스님이던 학인 시절의 이야기이다. “삭발은 놓을 수 없는 수행의 한 부분이며 늘 챙겨야 하는 화두 같은 것이다. 얼렁뚱땅 살고 싶을 때마다 한번씩 내 머리를 만지면서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저자.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묵動靜)이 모두 수행이 된다.

제4장은 ‘혼자 하는 삭발’이다. 수행 생활 중에 느낀 여러 감상들과 절집의 차 생활에 관한 글들이다. 일종의 수행일지가 되는 셈인데 이는 저자의 수행 이력임과 동시에 여느 스님들의 일반적인 생활상이기도 하다. 짧은 단상은 긴 여운을 안고 있다.

제5장 ‘지대방 이야기’는 지대방에서 듣던 여러 스님들의 수행상이나 무용담을 엮어 냈다. 고준한 수행자의 모습, 꼭 그대로 닮고 싶은 노스님의 모습, 웃음과 깨침을 동시에 전하는 괴짜 스님들의 무용담은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진 스님의 글은 무겁지 않다. 글은 잔잔하면서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고 가벼우면서 무게감이 있다. “요즘 ‘힐링’ ‘힐링’ 말하는데, 그 어려운 말 할 것 뭐 있어. 그냥 헐렁하게 살면 될 일이지. 헐렁. 얼마나 좋아”라고 하는 현진 스님의 책을 읽다보면 빡빡한 ‘내’가 조금은 헐렁해질 것이다.

현진 스님은?

<월간 해인>편집위원과 불교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며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절집의 소소한 일상과 불교의 지혜와 교훈들을 독자들에게 꾸준히 전달해 왔다. 현재 충북 청원 마야사에서 정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잼있는 스님이야기>, <산문, 치인리 십번지>, <두 번째 출가>, <오늘이 전부다>, <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 <언젠가는 지나간다>, <번뇌를 껴안아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