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근∙현대 비구니 문중의 흐름사를 최초로 총 정리한 쾌거! 한국 비구니 문중 연구의 획기적 계기! 불교언론인 출신 하춘생 박사(사진)의 20년 원력이 드디어 한 권의 묵직한 책으로 결실을 맺었다. <한국의 비구니 문중>(도서출판 해조음)이 출간된 것이다.

출판시장이 불황이라고 하지만 출간되는 책이 제법 많은 시절에, 또 쏟아져 나오는 책들 가운데 공력이 깃든 책을 찾아보기 쉽지 않은 시절에, 내공이 철철 넘쳐흐르는 책을 만나는 기쁨을 하춘생 박사의 역저 <한국의 비구니 문중>이 가져다주었다. 알다시피 그동안 승가의 문중세계(門中世系)는 으레 비구의 전유물로 인식되어왔다. 흔히 법통 내지 법맥관계를 논하는 입실면수(入室面授) 또는 전법게 수수(授受) 등의 사자상승(師資相承) 관계는 오로지 비구에만 해당하는 개념일 뿐이었다. 선맥의 전법계보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강맥전승과 율맥전수 등의 여타 세계(世系)에서도 대체로 같은 현상이 무비판적으로 이어져 왔고, 또 이어져 가고 있다.

근래에 들어 이러한 명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움직임이 있었고, 그 결과 다행히 근래 들어 비구니의 위상이 어느 정도 향상되고 불법전등의 제 분야에서 비구니승가의 독립적 체계가 차츰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은 이런 현실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물론 이러한 불교교단의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승가에서 보이고 있는 비구니에 대한 차별현상은 여전히 부인할 수 없는 현실과제로서 놓여 있지만.

하춘생 박사의 비구니 연구는 사향사과(四向四果)에 도달한 여성수행자에 대한 초기불전의 기록들을 비롯해 시공간을 초월해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적잖은 비구니들의 발자취를 무색하게 만드는 한국교단 내 이러한 모순은 동서고금을 망라한 성차별 현상의 전형을 보여주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하 박사는 비구니승가에 대한 연구가 활발발하게 이뤄져야 하는 당위성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실현하는 일이며, 교단 내 인격 평등성을 구현해 불교의발전적미래를 담보해야 한다는 소명이라고 역설한다.

다 알다시피 출가교단은 금욕주의(禁慾主義)의 계율호지를 근본으로 수행하는 공동체이다. 초기교단에서 여성출가는 비구승가의 순일성에 커다란 도전일 수밖에 없었으며, 비구니승가가 환영받지 못한 상황에서 성립되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교단 내 여성차별은 대승불교를 주창하는 한국불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부처님의 진의를 왜곡하고 있는 ‘비구니팔경계법’ 등에 집착해 비구니를 폄하하거나, ‘종헌’ 등을 위시한 교단내부의 모든규정에서 비구승 우위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비구니를 의도적으로 소외시키고 있는 저간의 사정이 엄연하다.

교단 내 성차별을 조장해온 ‘팔경계법’, ‘여인오장설’, ‘정법기간 500년 감소설’ 등의 왜곡된 불교여성관을 바로잡아주는 교단초기의 객관적 역사기록은 비구니승가의 위대성을 알려주는 좋은 자료이다. 기원전 4세기 말, 인도 마우리아 왕조 찬드라굽타왕의 궁정에 파견된 시리아 대사 메가스테네스(Megasthenes, B.C.350?~B.C.290?)는 그의 인도견문기 <인도지(印度誌)>에서 “인도에는 여성철학자들이 남성철학자들과 어깨를 겨루며 난해한 사유의 세계를 당당하게 논의하고 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일본불교학자 나까무라 하지메(中村元)는 그의 편저 <니승의 고백(テ-リ-ガ-タ-)>의 발문에서“이 여성철학자들이 바로 비구니들이며, 비구니교단의 출현은 세계사상사에서 경탄할만한 일로 당시의 유럽·북아프리카·서아시아·동아시아에는 비구니교단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 최초의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비구니승가가 독립적 위상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그처럼 초기불교 당시 극심한 남녀차별과 편견 등 온갖 장애를 극복하고 일궈낸 여성의 역사적인 출가와, 초기불교에서는 물론 남·북방으로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도 여성수행자가 정진을 통해 남성과 동등하게 사향사과에 도달했던 엄연한 역사성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방불교권 상좌부 전통에서는 비구니승가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여전히 배제되고 있는 현실이고 보면 한국불교교단이 그나마 여성출가에 대한 부처님의 진의를 일정하게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 비구니승가의 독립적 위상을 말해주는 실제적인 모습은 작금의 교단현실에 잘 나타나 있다. 근·현대기에 들어와 비구니 스스로 지율(持律)·지선(持禪)·지혜자(持慧者)로서의 위의를 확보하고 세계형성의 주체인 문도를 결집해 비구니문중을 확립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구니문중의 확립은 역사 속에서 그동안 비구만의 전유물로 각인된 사자상승의 법맥구도가 비구니에게도 엄연히 존재해왔음을 시방에 드러낸 기념비적인 일로서, 부처님 재세시 비구니승가의 성립과 견줄 정도로 교단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남·북방의 불교권을 통틀어 비구니의 독립적 세계를 이어오고 있는 승가체계를 갖추고 있는 곳은 한국불교교단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비구니승가를 형성하고 있는 문중은 10여 개로서, 청해·계민·법기·삼현·수정·봉래·육화·실상·보운·일엽문중과 보문종문중이 그것이다. 이들 문중은 각각 초조 내지 개창조를 세워 문중계보를 정리하고 세계를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이밖에 문보 형성으로 보기에는 미흡하나 대표인물 내지 단위사찰 중심의 독립적 계보

를 잇고 있는 두옥문중·봉완문중·청량사문중·미타사 탑골문중(서울 보문동) 등 몇몇의 기타문중도 산재한다.

이처럼 비구니의 독립적인 세계형성과 문중성립이 지니는 교단사적 의의와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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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금의 교단현실은 사회적 변화는 물론 내적변화를 진전시킬 수 있는 여건마저 미흡한 실정이다. 비구니들을 단순히 ‘여성’의 틀과 ‘한계성’에 묶어버리는 정서가 아직도 강하다. 저자 하춘생 박사는 이 책에서 비구니승가에게 다음과 같은 요구를 하고 있다.

첫째, 스스로의 의식구조 개선을 하라는 것이다. 비구니는 위상정립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의식개혁의 대상이다. 성차별제도가 여전히 만연해 있는 교단의 구조적인 모순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비구니 스스로의 정당하고도 당당한 목소리가 조직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비구니가 득도수계할 때 이부승수계의식으로 진행하는 수계절차를 비구니계단으로 일원화하라는 것이다. 비구니계단에서 수계의식을 치른 후 비구계단에서 다시 수계절차를 밟는 의식 자체가 성차별의 전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비구니의 교단참정권을 확대하거나 비구와의 형평성을 이루라는 것이다. 비구니도 비구와 동일하게 제반 종무직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법계품수도 제한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소소계(小小戒)는 폐지해도 무방하다’는 부처님의 유훈에 의거해 불조혜명에 방해가 되는 ‘팔경계법’ 등을 위시한 성차별적 계율을 과감히 폐기시키라는 것이다.

다섯째, 비구가 갖지 못한 비구니만의 고유한 자질과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복지·문화·교육(특히 유아·어린이·청소년) 등의 분야에서 최소한 1(사찰):1(시설) 시스템을 갖춤으로써 비구니만의 사회적 기능을 확대해 상구보리 하화중생으로 상징되는 구세이념을 현실 속에 구현하라는 요구다.

여섯째, 비구니총림을 설립하고, 현재의 교구본사와 사격을 같이하는 비구니본사를 확보하라는 것이다.

일곱째, 전국비구니회의 조직력을 강화해 비구승가 또는 총무원과 동등한 교섭관계를 형성하라는 것다.

여덟째, 전국비구니회의 독립기구로서 ‘승가여성차별개선위원회’(가칭)를 구성해 비구니에 대한 연구시스템을 상설 가동하라는 것이다.

이 책은 먼저 초기 비구니승가의 성립과정과 삼국시대 불교수용 이후 근·현대기에 이르기까지 한국 비구니승가의 전통과 계승을 정리하고 있다. 연구의 핵심주제를 구명해가는 과정에서 근대기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비구니 세계(世系)의 보편적 전개방식인 △은상좌연과 문중 형성 △강백출현과 강학전등 △수선전통과 선풍호지 △계율수학과 전계의식 등의 실제를 조망하고, 문중 형성과정과 계보현황을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아울러 연구주제의 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본문에서 기술한 문중 계보현황의 전거자료로서 문중별「세계도(世系圖)」를 권말부록에 수록했다. 이 세계도는 비구니 문중의 세계와 계통-계열의 분파현황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서, 본 연구의 취지와 가치를 더욱 상승시키는 역할을 해준다. 이와 함께 문중 형성이 지니는 의의와 한계 등을 고찰해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고, 이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비구니의 현재 위상과 역할 등을 살펴 비구니 승가의 재정립방안을 구명함으로써 연구의 가치와 의의 등을 거듭 천명하고 있다.

하춘생 박사의 역저 <한국의 비구니문중>은 그동안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한국의 비구니문중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비구니승가의 자존과 위상정립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하춘생 박사는 “비구니는 위상정립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의식개혁의 대상이라는 자조 섞인 조언을 귀담아 들어야 하며, 비구니 스스로의 정당하고도 당당한 목소리가 조직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하고 “이 책이 주는 가치와 교훈을 예서 찾을 수 있다면 큰 보람이겠다”고 출간의 의미를 밝혔다.

*저자 하춘생(河春生)은?

법명은 우성(宇晟), 전남 곡성 태안사에서 청화(淸華)스님께 수지했다.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한국의 비구니 문중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대학 외래교수로 있으며, (사)한국불교학회 법인이사와 동국대 불교학과동문회 감사를 맡고 있다. 최근 뜻을 같이하는 지인들과 ‘우성불교학콘텐츠연구소’를 개설하여 불교학 발전과 불교문화 콘텐츠 연구개발에 진력하고 있다.

논문으로 ‘한국 근·현대 비구니의 문중 형성과 그 의의’, ‘근·현대 비구니사의 전개와 문중확립’, ‘비구니 본공의 선풍진작과 법맥상승’, ‘한국 근·현대 비구니의 강맥전승과 그 의의’ 등이 있고, 저서에 <깨달음의 꽃: 한국불교를 빛낸 근세 비구니>(전 2권), <현대불교사의 이해와 실천사상>, <한국불교현대사>(공저), <불교상식백>(전 2권/공저) 등이 있다.

수상 경력으로는 (사)한국불교학회 공로패, 조계종 전국비구니회 감사패, 동국대 석림동문회 감사패, 한국불교기자협회 공로패, 문화관광부장관 표창 등이 있다.

그동안 (사)한국불교학회 총무이사, 한국불교기자협회 회장, 동국대 총동창회 편집위원, 한국종교언론인협의회 대표의장,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PR)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