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문윤정의 실크로드 여행기가 나왔다. 책의 이름은 <걷는 자의 꿈, 실크로드>(바움)이다. 혈혈단신 23일 배낭여행을 하며 보고, 느끼고, 공부하고, 감동한 것을 기록한 생생한 기록들이다. 그러나 이 책은 오로지 작가 문윤정만의 느낌을 풀어놓은 책이 아니다. 작가는 무려 100여 권에 이르는 실크로드 관련서를 탐독했고, 그 내용을 자신의 안목으로 소화하고 녹인 후 그만의 오감을 통해 들어온 실크로드의 감동에 비벼 한 권의 소중한 기행에세이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것이 실크로드와 관련해 출간된 다른 여러 책들과 다른 점이다.

아는 이는 다 아는 것이지만, 실크로드는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처음 사용한 말이다. 흔히 고대 중국과 서역 각국 간에 비단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무역을 하면서 정치·경제·문화·종교를 이어준 교통로를 일컫는다. 더 큰 얼개로는 중국 장안에서 타클라마칸 사막, 파미르고원, 중앙아시아 초원, 이란고원, 터키 이스탄불을 지나 로마에 이르는 길을 지칭한다. 정수일 박사는 실크로드의 동쪽 끝은 중국 장안이 아니라 신라의 경주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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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문윤정. 배낭을 메고 문명, 사람, 역사, 삶을 찾아 오지여행을 즐기는 그녀는 천생 노마드의 피를 타고 난 순례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크로드는 부처님과 그분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불자들에게는 종교의 길로 더 친숙하다. 실크로드는 동서문화의 교류를 가능하게 한 길이며, 특히 종교적 교류가 적잖이 이루어졌던 길이다. 그러나 실크로드는 이런 문명, 즉 종교와 문화가 서로 충돌한 길이 아니라 교류와 융합을 통해 상생과 융섭을 이뤄낸 길이며, 동서남북을 소통시키고 인류 역사의 어제를 오늘로 이어준 길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크다.

작가 문윤정. 그의 내공에 대해서는 이전의 책 소개에서도 거론했거니와 특유의 부지런함과 숨겨진 방랑벽, 글쓰기에 대한 멈추지 않는 분출의 끝이 어디쯤일까 궁금해진다. 이미 그녀는 인도·네팔의 기행기인 <신들의 땅에서 찾은 행복 한 줌>을 상재한 바 있다. 그 책에서 붓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구도순례를 했다면, 이번 책은 구도 순례를 넘어 문명의 순례, 다양한 인종들의 삶에 대한 천착기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의 실크로드 여행은 파키스탄의 저 유명한 ‘부처님 고행상’이 있는 라호르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하여 이슬라마바드, 탁실라, 카라코람하이웨이, 길기트, 소스트를 경유하여 중국으로 넘어가 다시 탁스쿠르칸, 키슈가르, 우루무치, 타클라마칸 사막, 투루판, 돈황, 란주, 천수, 그리고 시안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터키와 이란고원을 경유하는 길이 제외되어 있긴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실크로드(오아시스로)의 여로를 과거 그대로 충실하게 재현해가고 있다. 실크로드의 여로를 직접 밟아가면서 자신의 감정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보고 느끼고 체험한 사실들을 꼼꼼하게 서술한다. 단순한 이론적 접근이 아니라 살아 펄펄 움직이는 실크로드의 진면목을 전달해준다.

크게보기이 길을 걸으며 저자는 철저히 과거에 머문다. 아니 애써 머물려고 한다. 이 책은 그래서 모래와 바람이 쓸고 간 세월의 나이를 셀 수도 없을 만큼 노회한 구조물이 들려주는 노래, 기쁨과 슬픔과 사랑과 즐거움과 회한이 주름마다 새겨져 있는 수천 년 전의 미라, 그리고 여행자 자신이 간직한 추억과 과거를 다 드러내기도 벅찬 그 무엇인가에 대한 시간여행의 기록들이기도 하다.

문윤정의 육근을 통해 드러난 실크로드는 더 이상 사물이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운명 같은 것으로 승화한다.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기쁨과 눈물이 깊게 드리워 있고, 또 과거와 현재의 영욕이 무수히 교차하고 있고, 결국 우리는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내던져진 존재라는 것과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무상 무아의 깨침이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 여행기를 유적과 삶의 순례기를 넘어선 구도적 순례기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장을 펼쳐 가만히 읽어보라. 멀리 떨어져 있는 길이 문득 피부로 다가와 살아 꿈틀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없이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시나브로 나의 이야기로 느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리라. 이런 느낌을 공감할 수 있는 독자가 있다면 그는 이미 실크로드를 반쯤은 다녀온 것과 진배가 없다.

*문윤정은?

유서깊은 도시 경주에서 태어났다.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자라면서 삶에 대한 의문을 가졌고,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인도, 네팔, 캄보디아, 파키스탄, 중국, 터키 등을 배낭을 짊어지고 순례했다. 카메라를 들고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기록한 족적들을 불교계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으며, 그 사이에 수필가로 문단에 데뷔해 여러 책들을 펴내기도 했다. 늘 공부하고 여행하고 쓰고 찍는 일을 즐기고 있는 천생 타고난 글쟁이이자 여행자이다.

저서로 <당신의 아침을 위하여>, <마음의 눈>, <신들의 땅에서 찾은 행복 한 줌>, <잣나무는 언제 부처가 되나>, <선재야 선재야>, <마음이 마음에게 묻다>, <답일소>, <외로운 존재는 자신을 즐긴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