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다 죽어라.”

누군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까. 하루의 절반 이상을 책상에 앉아 보내야하는 청소년이라면 학을 뗄 것이고, 출퇴근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숨 가쁜 청년들은 비웃을 것이며, 어느새 인생의 뒤꼍에 서있는 노년은 이제는 시간이 부족하다 자조할지 모른다. 이에 대해 작가 정찬주는 이렇게 일러준다. “그대가, 지금, 하는 일이, 공부다.”

‘공부하다 죽어라’는 한국 선문의 대표적인 선승 혜암 스님이 생전에 승속을 망라한 대중들에게 누누이 강조해온 화두이다. 정찬주 작가는 혜암 스님이 던진 이 벼락같은 화두를 품고 가야산과 오대산, 지리산, 태백산, 영축산을 순례하며 혜암 스님의 자취와 가르침을 더듬었다.

2012년 9월부터 3개월간 총 12회에 걸쳐 교보문고 북로그를 통해 여러 독자들과 화두를 공유해온 작가는 올해 1월, 주옥같은 선승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책의 제목은 여러분이 짐작하듯, <공부하다 죽어라>(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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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다가 죽으면 안 죽어요. 옳은 마음으로 옳은 일 하다가 죽으면 안 죽어요.’ 공부하되 ‘옳은 마음’으로 할 것을 경책하신다. 스님의 말씀을 늘 단순하고 명쾌하시다. 옳은 마음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진짜 죽는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무엇을 하되 대의(大義, 옳은 마음)를 잃어서는 안 된다. 수좌의 공부 끝은 중생제도로 돌아가야 하고, 세상 우리의 공부 끝은 나보다는 남을 이롭게 하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p212

정찬주 작가를 통해 전달되는 혜암 스님의 메시지는 생생하고 단호하다. 어떤 말로도 똑 떨어지는 설명할 수 없는 현대 사회에 이처럼 간결하고 강렬한 문장이 또 있을까. 백 척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지금 하는 일이 곧 공부라는 것. 그것은 혜암 스님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이자 스스로 지독하게 좇았던 이상향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부하다 죽어라’는 화두는 해인사에서의 출가를 시작으로 27세부터 방바닥에 눕지 않는 장좌불와 수행과 하루 한 끼만 먹는 일종식을 평생 실천해온 혜암 스님의 초인적 근기와 끈기를 내포하는 말이기도 하며 지금 이 시간에도 화두를 들고 있을 수행자들의 정신이 번쩍 들게 할 냉수 등목 같은 일갈이기도 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는 일이 공부’라는 말은 수행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묵직한 시사점이 된다. 정찬주 작가의 글을 빌자면 “나는 그것이 참선 공부하는 스님들만의 법문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저잣거리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화두인 것이다. 장사하는 장사꾼은 장사하다 죽어야 할 것이고, 기술자는 기술을 연마하다 죽을 것이고, 나는 글을 쓰다 죽어야 할 거라는 법구法句”라는 것이다.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무게가 더 할 것이다.

시대의 어른을, 스승을 찾아 헤매는 시대이다. 좀처럼 그 맑고 향기로운 이를 찾아보기 힘든 이 때 우리를 다독이고 또 일갈하는 것은 고승의 법어가 담긴 한 권의 책이다. ‘가야산 정진불’ 혜암 스님이 대중에게, 또 정찬주 작가가 독자에게 토스한 화두를 제대로 접수했다면 이 책은 더 이상 수필집이 아닌 자기계발서라 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254쪽, 15,000원

혜암 스님은?

1920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1946년 해인사에서 인곡스님을 은사로 득도했으며 효봉스님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았다. 한국의 대표적인 선승으로서 성철스님 이후에는 종단개혁에 앞장섰다. 해인총림 방장,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등을 거쳐 조계종 제10대 종정에 추대됐으며 2001년 12월 31일 해인사 원당암 미소굴에서 법랍 56세, 세수 82세로 열반했다

작가 정찬주는?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1996년 행원문학상, 2010년 동국문학상, 2011년 화쟁문화대상을 수상했다. 많은 글을 발표해오다가 수십 년 산중에 집을 지어 낙향했다. 법정스님은 재가제자로 받아들여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내렸고, 수불스님은 벽록(檗綠)이란 호를 주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소설 무소유> <산은 산 물은 물> <가야산 정진불><인연> 등 다수와 어른을 위한 동화 <눈부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