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불교계를 대표할만한 선(禪) 논쟁의 생생한 현장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백파 스님의 <선문수경(禪文手鏡)>과 초의 스님의 <선문사변만어(禪文四辨漫語)>가 완역됐다.

조선의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오랜 정체기를 헤치며 조선 후기 불교를 일으키려 했던 화엄의 종주 백파 스님이 당대 선불교의 정통성(조사선, 간화선)을 추구하고자 내놓은 <선문수경>과 이에 맞서 반박논리를 편 초의 스님의 저서가 동국대출판부의 한국불교전서 한글화사업의 일환으로 새롭게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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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파 스님의 삼종선 이론은 임제선의 정통성을 이론적으로 객관화해 내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당시 기존의 선 이론은 이종선, 즉 의리선=여래선, 격외선=조사선의 선 분류법인 데 반해 백파 스님는 의리선-여래선-조사선의 삼종선 구도를 세워 깨닫고 수행해야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의리선, 중근기의 중생이 본분과 향상을 깨닫는 것인 여래선, 상근기의 중생이 진공과 묘유를 향상함을 깨닫는 것인 조사선으로 분류했다.

이에 대해 초의 스님은 교(敎)와 선(禪)은 다른 것이 아니라며 <선문사변만어>를 통해 반박했다. 초의 스님은 의리선과 격외선을 방법상의 분류라는 점에서는 받아들이지만 차별의 관점에서는 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조사선과 여래선에 대해서도 법을 전하는 주체의 차이가 있을 뿐이며, 이들 두 선(二禪) 사이에 차등이나 우열은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조사선을 최고의 선법(禪法)으로 본 백파의 설을 비판한다.

삼종선과 이종선으로 대표되는 조선시대에 임제선의 위상을 두고 벌어진 두 고승 백파 긍선(1767~1852)과 초의 의순(1786~1866) 간의 선 수행 논변은 조선 후기 지성사의 한 면을 크게 장식한 일대 사건이었으며, 시간상으로도 1790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약 1세기 반에 걸친 대논쟁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이번에 간행된 책들은 원문을 철저히 교감한 후 원문 주를 따로 달고 표점 작업까지 마쳐 번역문과 함께 수록함으로써 학술적인 가치를 높임과 동시에, 번역문과 원문을 즉시 대조해 볼 수 있어 학자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도 원문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했다.

방편의 언어를 긍정하는 방법을 통해서 자신의 선론(禪論)을 분명하게 전개하고 조선 후기 불교학계에 활력을 불어넣은 초의 스님의 공적과는 별도로, 그가 백파 스님의 논점을 제대로 격파했는가는 문제로 남아 있다. 흙덩이를 던진 사람을 좇지 않고 흙덩이를 좇아간 격인지, 죽은 뱀을 잘 가지고 놀아 살려 놓은 격인지 초의와 백파의 논지를 함께 면밀히 살펴본다면 비판의 허와 실을 짚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선문수경>과 <선문사변만어>를 통해 우리는 조선 승려들이 선 문헌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했는지 주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