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는 종교를 과학적 연구 대상으로 하는 종교학이 태동되면서 종교 체험 그 자체에 대한 연구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러나 체험이라는 요소가 가지는 주관적 특성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설명과 기준 제시의 불명료성 때문에 연구가 그리 활발하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다.

윌리엄 제임스나 루돌프 옷토 등은 종교체험의 체계적 연구에 관심을 가졌고, 특히 윌리엄 제임스는 그의 저서 <종교체험의 다양성>에서 종교경험이 단순한 뇌의 물리-화학적 결과물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인가의 특수성과 고유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들의 연구는 주로 문헌탐구와 임상사례, 그리고 심리분석 등에 치우쳤다. 실증적 자료를 확보하기에는 종교 체험이 갖는 주관성의 제약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종교 체험 혹은 선 체험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20세기 후반 들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뇌 영상 촬영 기술이 급속도도 발전을 이루면서 뇌과학, 혹은 신경과학 분야에서 종교적 신비체험, 선 체험 등을 하는 인간의 뇌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수량화된 연구가 신속히 활성화되고 그 연구성과가 축적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종교체험 역시 뇌 활동의 부산물의 하나로 단순히 해석하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인간 정신의 고유하고 독특한 작용의 하나로 해석하는 연구들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선과 뇌의 향연(Zen-Brain Reflections)>(대숲바람)이라는 이름의 묵직한 책이 출간됐다. ‘선 수행을 하는 뇌과학자의 시선’이라는 부제를 단, 선의 탈신비화를 위해 선에 관한 오래된 역사적 문헌과 뇌과학의 최첨단 연구 결과물을 종합하여 ‘선과 뇌’의 상호관계를 조명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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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제임스 오스틴은 하버드대학교 메디컬 스쿨 출신으로 신경과 임상 의사이며 선불교 수행자이다. 저자 오스틴은 달라이라마가 고대의 종교적 지혜와 현대과학이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친절하게 답변한 세 가지 가운데, 세 번째 답변인 ‘종교적 체험을 포함한 신념체계나 형이상학적 현상에 관한 것, 즉 과학자 스스로가 종교적 체험을 하고 종교인들도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게 된다면 의미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차원에서 연구와 수행을 병행하고 있는 학자에 속한다. 그는 일본에서 임제종의 선사인 코보리 스님을 만나 명상 수행을 하며 스스로 체험한 견성의 순간을 평생의 화두로 삼아 꾸준히 선, 불교, 뇌과학, 의식과 정신세계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이 책은 ‘뇌 영상 검사 기법은 자아 개념의 발생 장소를 국재화(localize)할 수 있는가?’ ‘명상을 하는 동안 찍은 뇌 영상은 실제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가?’ ‘일원성 체험(모든 것은 하나라고 깨닫는 체험)은 모두 동일한 것인가, 아니면 여러 종류의 일원성 체험이 있는가?’ ‘순간적인 깨달음과 수십 년 간의 명상 수행은 뇌의 생리적 측면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등에 대한 저자의 천착이 담겨 있다.

오스틴은 이 책의 제목에 향연, 즉 Reflections라는 단어를 붙인 것은 견성에 대한 성찰과 개인적 그리고 신경학적 측면을 대폭 담았다는 점, 개인적으로 겪었던 초창기의 선 체험을 새롭게 음미하고 최신의 신경학적 연구 결과를 고찰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또 과거에는 선이라고 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수수께끼 이상의 것이었지만, 자신은 선에 관한 문제를 명확하게 정리하고, 신비화된 부분을 탈신비화하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 책의 제1부에서는 선의 중요한 문제, 즉 우리의 내면적인 개별 자아(self)를 다시 생각하고 우리의 내면적 자아는 자아/타자 경계의 ‘바깥’에 놓여 있는 타자와 사물을 어떻게 나의 자아와 연관 짓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제2부에서는 명상에 대한 몇 가지 예비적인 연구에 초점을 맞춰 연구방식과 일반적 뇌 영상 연구가 갖는 한계를 검토하고 있다.

제3부에서는 뇌에 대한 최신 지식을 기술하지만, 오래된 변연계(old limbic system)의 편도체와 그 외의 다른 부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제4부에서는 의식을 탐구하고 있고, 제5부에서는 의식의 변화에 대한 몇 가지 기초적 이론에 대해 언급한다.

제6부에서는 몰입(absorption)이라고 불리는 다소 깊지 않은 상태에 대해 언급하고 이어 7부에서는 피상적 단계 다음인 핵심적 통찰에 대해 다시 언급한다. 핵심적 통찰을 선에서 견성과 깨달음에 해당한다. 제8부에서는 존재(being) 그 자체를 실현한 경지, 즉 대각의 경지에 대해 언급한다.

마지막으로 제9부에서는 새로운 내용, 즉 ‘달빛’이 견성과 어떤 관련성을 갖는지에 대해 그 오래된 역사적 맥락을 정리해 살펴본다. 달빛에 대한 저자의 서술이 자못 흥미롭다.

명상, 깨달음, 의식은 복잡한 주체이다. 선의 길과, 선과 뇌과학의 관계는 아주 복잡하므로 때로는 일시적으로 약간의 단순화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저자는 이런 실제적인 작업에 당면하여 단순화된 그림, 표, 네 가지 정리된 질문과 답변들, 용어집을 실어 놓았다.

한편, 이 책을 번역한 정신의학자이며 임상가인 이성동 선생은 서울 아산병원에서 정신과 수련과정을 밟아 정신과 전문의가 된 이후 정신질환 환자들을 치료하며 얻은 임상경험과 정신 현상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정신 현상, 의식, 명상, 선, 종교성에 대해 공부를 지속하는 이 분야의 전문가이다. 추천사를 쓴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성윤 교수는 오스틴의 방대한 저서 <선과 뇌의 향연>을 번역할 최고의 번역자는 단 한 사람, 이성동 선생이라고 극찬한다.
868쪽, 62,800원.

*저자 제임스 H. 오스틴은?

하버드대 메디컬 스쿨 출신의 신경과 임상 의사로서 일본의 선불교를 만난 이래로 오랫동안 선수행을 해오고 있는 과학자이다.
1998년 출간된 <선과 뇌>는 저자 자신의 견성 체험을 바탕으로 선과 뇌의 통합을 시도했던 책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번에 출간한 <선과 뇌의 향연>은 그 후속 편으로, 이 책에서도 오스틴 박사는 선과 뇌의 연관성에 대해 폭넓게 다루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