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로 시작하는 가수 최성원의 곡을 나지막이 흥얼거리다보면 밤과 바다가 같은 빛깔로 저무는, 가깝고도 먼 땅, 제주의 풍경이 선연히 떠오른다.

10년차 제주 여행생활자 이담이 한가롭고 평화로운 제주 여행을 돕는 일러스트 여행 책을 출간했다. 여행자로 하여금 느린 호흡과 느린 발걸음으로 제주에 다가가게 하는, <제주 버킷 리스트 67>(대숲바람 펴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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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관광특구로 한라산 등반이며 올레길, 수목원, 박물관 등 여행자가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도처에 널려있다. 그래서일까. ‘찍고 떠나기’ 식의 제주 여행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바다 건너 제주까지 가서 쫓기듯 찍고 떠나는 것으로는 제주의 깊은 속살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음이다.

저자 이담은 제주 여행자들 사이에서 고수로 통하는 산천단 바람카페의 주인장이다. 제주의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과 치유력에 이끌려 제주에 머물게 된 그는 제주, 여행, 커피, 삶에 대한 이야기와 생활자로서 여행한 제주를 책에다 풀어놓았다.

이담은 <제주 버킷 리스트 67>에 ‘한라산 윗세오름 휴게소에서 사발면 먹기’, ‘돌담 밑 야생화 찾아보기’, ‘밤바다 바라보며 한치회 먹기’,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하기’와 같이 소박하고 주관적인 여행 법 67가지를 소개한다.

어떤 여행 책도 독자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 이담은 낯선 공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홀로 있는 순간에만 발견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남들의 욕망을 쫓는 여행이 아닌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 속에서 온전한 자신을 마주하는 여행에 대해 일러준다.

왜 제주까지 와서 바쁘게 살아야 하지? 잠시 쉬려고, 자기를 놓으려고, 현실에서 잠시 떨어져 있으려고 제주에 온 거 아니었나? 계획을 세우지 말아보자. 가만히 멍하니 있다가 배고프면 밥을 먹고 배가 고파지지 않으면 그냥 건너뛰는 것도 좋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하는 것. 그것도 제주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243p

저자는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 안내자의 역할을 할 뿐 여행의 여백은 여행자 스스로 채우게 한다. 이 책에 나오는 버킷 리스트는 ‘이담’의 버킷 리스트이지 독자의 버킷 리스트가 아니다. 유독 많은 책의 여백 또한 독자가 독자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바라는 저자의 뜻이다.

<제주 버킷 리스트 67>은 또 독특한 그림책이기도 하다. 제주의 속살을 뛰어난 감수성으로 잘 포착해낸 정가애 작가의 일러스트는 과감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위트가 넘친다. 제주를 여행할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 한 권으로 제주를 색다르게 여행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맹렬히 타오르던 더위가 수그러드는 계절이다. 다가오는 가을, 이담의 조언대로 월정 바다를 맨발로 걷고, 민속 오일장에도 나가보고, 다랑쉬오름에서 보름달을 구경하는 건 어떨까. 그곳에서 마주친 ‘나’와 사이좋게, 손을 잡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