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한국 사람의 성정을 대표하는 말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말이다. 해외의 유명 관광지에서도 “빨리빨리”라는 말을 알아들을 정도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였을까,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하다 보니’ 그리 됐을까. 이유를 한 가지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우리네 삶이 무척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에 이견을 보일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질주하던 경주마도 어느 순간 멈춰서 숨을 고르듯, 현대인들도 빠른 보폭을 조금씩 줄여가려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 치유하는, 이른바 힐링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힐링 열풍을 반영하듯 템플스테이가 인기다. 하지만 짧은 휴일, 사찰에서 얻는 평안을 위하여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니 이 또한 간단하지가 않다.

이런 중생들의 고민을 어찌 알아챘는지, 서산 부석사에서 네 명의 동자들과 함께 사는 주경 스님이 근본적인 힐링 방법을 한 권으로 책으로 펴냈다. 책의 이름은 <마음을 천천히 쓰는 법>(마음의숲)이다. 이 책에서 주경 스님은 ‘특별한’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단지 내 마음 하나를 어떻게 쓰냐에 따라 삶이 변화할 수 있다고 조곤조곤 일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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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비우기, 담담하고 당당하기, 애정과 관심 갖기, 추억하고 소중히 여기기. 책의 챕터 제목이기도 한 이 네 가지는 평소 생활신조나 좌우명으로 삼아도 부족하지 않을 감각적이고 통찰력 있는 주제들이다.

1장 ‘버리고 비우기’에서는 덜 먹기, 필요 없는 물건 버리기 등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버림과 비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온갖 ‘스마트’한 기기들에 둘러싸여 정작 나나 우리를 들여다볼 시간이 없는 현대인들을 꼬집는다. 물론 문명의 이기가 사람을 옭아매므로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말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잘’ 버려야 한다”는 스님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는다.

2장 ‘담담하고 당당하기’에서는 삶의 본질은 견딤이기에 담담하라 말하며, 나의 생각이 내 인생을 만들어가므로 항시 당당한 마음을 잃지 말라 한다. <마음을 천천히 쓰는 법>에서는 두루뭉술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실생활에서 한 번쯤 느꼈을법한 우리의 일을 말한다. 여러 형태의 삶,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단 하나의 키워드, ‘마음’. 주경 스님은 급하고 격하고 화난 세상을 담담하고 당당한 태도로 마주하라고 권한다.

3장 ‘애정과 관심 갖기’는 부석사 동자들이 등장한다. 10년 가까이 한 지붕 아래에 살면서 아이들의 마음이 자라는 과정을 지켜본 스님의 솔직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이의 문제는 비단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경 스님은 점점 더 심각해지는 학교 폭력이나 왕따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아이들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라고 경험적 사실을 예로 든다.

4장 ‘추억하고 소중히 여기기’에서는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주위의 사소한 것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소나기 뒤의 여름 화단, 20년 만에 멘 지게, 고염 열매, 창호지 덧바르는 가을… 마음을 천천히 쓰면 이토록 작고 아름다운 것들이 온 세상에 넘쳐남을, 스님은 넌지시 알려준다.

한가로움 속에서 오히려 불안을 느끼는 현대인이 적지 않다. 바쁘고 빠른 것에 길들여져 그 굴레에서 벗어나면 마음 둘 곳을 모른다. 그런 모든 것들이 ‘마음을 쓰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주경 스님의 이야기에 눈과 귀를 기울이다보면 “내 마음은 어디쯤 있나?” 돌아보게 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주경 스님은?

크게보기‘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1년여 동안 동남아 불교국 성지순례 만행, 미국 달라스 포교당에서 해외포교를 했다. 조계종 포교원 포교국장, 템플스테이 사무국장, 불교문화사업단 사무국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교육위원장이자 역삼동 청소년 수련관 관장으로 있으면서 청소년 문제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1999년부터 서산 부석사 주지소임을 맡아 아이들 넷을 키우며 이름 없는 사찰이었던 부석사를 이 지역의 명소로 탈바꿈시켰다.

저서로는 <미안하지만 다음 생에 계속됩니다>, <지혜의 길>, <나도 때론 울고 싶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