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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선 굵은 서사 속에서도 세조와 한명회, 신숙주, 김시습 등 역사적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을 입체적으로 되살려낸다.

절을 짓고 동자상을 만들며 몸과 마음의 병을 다스리려 했던 세조를 통해 작가는 진정한 용서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되새긴다.

“임금의 마음이 신체를 용서하게끔 돕고 싶었을 뿐이다. 임금의 의지에서 벗어나 날뛰는 그의 마음을 달래야만 임금은 살아날 수 있다. (중략) 그러나 스스로 용서하려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다. 먼저 그들로부터 용서를 받아야 한다.”(235쪽)

기상청 주무관이기도 한 작가는 후기에서 “용서는 이해를 전제로, 이해는 앎(知)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전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전부 이해할 수 없고 인간은 마음속 깊이 용서할 능력이 애당초부터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설은 안개, 비 등 자연 현상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다른 어느 작품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자연현상 바라보기가 아니면 나오기 어려운 표현들이다. 인간의 보이는 대로 보지 못하고, 믿는 대로 보는 태도를 콕콕 집어낸다. 역시 기상청에서 근무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묘사들이다. 물. 불. 구름. 안개. 비의 과학적 원리를 작품 속에 훌륭하게 녹여 놓았다기 때문이다.

현대문학 장편소설상 심사에서 이 작품을 놓고 소설가 이동하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거기서 무슨 짓을 했는가? 역사(실록)는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오직 소설(허구)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역사와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 의미 있는 인물과 문제적 상황에 적실한 내면성과 구체성을 부여할 수 있는 풍성한 상상력, 그리고 신선하고 설득력 있는 문체 등 두루 서사능력을 갖춘 작가만이 역사가 말하지 못하는 진실을 감동적으로 들려주는 것- 그것이 소설의 세계라면 이 작품은 그런 소설의 진면목을 새롭고 놀라운 솜씨로 보여주고 있다. …정사와 야사와 픽션이 신선한 문체 속에 녹아들어 마침내 이 작가만의 특이한 소설미학을 극적으로 드러낸 결구는 가히 압권이다. 오랜만에 남성적 힘을 느끼게 하는 장편소설을 만난 기분이다.” 288쪽. 1만3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