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망월사(4)

                                                              수원사람 김성채

통천문(通天門)

태흘탑을 지나서 오르는 계단에 통천문이 세워졌습니다. 통천문을 풀이하면 ‘하늘로 통하는 문’입니다. 하늘이란 단어를 사람마다 다르게 풀이하는데, 하늘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질서를 다스리는 곳’이라면, 통천문은 세상을 올바르게 하는 곳으로 가는 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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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문

“천(天)”자를 사람 모양으로 썼습니다. 사람이 하늘입니다.

큰 대(大) 위에 한 획(一)을 긋고, ‘하늘은 큰 것보다 더 큰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통천문 현판에 쓰인 天은 大 위에 동그란 점을 올렸습니다. 그래서 天 자로 보이지 않고, 어린아이들이 그리는 사람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판을 쓰신 분께서 ‘사람은 큰 것보다 더 크고, 하늘과 같은 존재’라는 뜻으로 쓰셨을 것으로 추측하였습니다. 

제 추측이 맞는다면 통천문은 ‘큰 사람의 마음과 통하는 문’으로 풀이되고, ‘큰사람에게 다가서는 문’이 됩니다. 

“天”자를 사람 모양으로 쓰신 분께서 어떤 마음으로 그리 쓰셨는지 오늘부터 두고두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통천문을 들어서면 계단이 가팔라져서 하늘로 통하는 길답게 느껴지고, 오른쪽으로 아름다운 도봉산 중턱에 자리한 천중선원이 내려다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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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의 팔작지붕집이 천중선원, 좌측은 심검당입니다.

천중선원 뒤로 보이는 법당은 고불원, 고불원 좌측에는 칠성각입니다.

영산전(靈山殿)

망월사를 보겠다고 도봉산 오르는 계단을 차곡차곡 밟아서 이른 곳은 영산전으로, 영취산에 있는 법당입니다. 망월사는 도봉산에 있는 사찰이 아니라, 부처님이 계신 영산에 지은 사찰인 것입니다.

이곳에 오기 위해 통과한 마지막 문 “통천문”을 ‘큰사람에게 다가서는 문’으로 풀이하였는데, 영산전에 당도해서야 천(天)이 ‘지혜 자비 계행을 완전하게 갖추셔서 더 높은 존재가 없는 무상사(無上士)를 뜻하고, ‘천상과 사람들의 스승이신 천인사(天人師)를 뜻하는 것임을 알아챘습니다. 

왕사성의 영산은 부처님께서 많은 불법을 펴신 곳으로, 항상 많은 제자와 보살과 제석천과 범천과 용왕 그리고 팔부중과 그 권속들 또 대중이 몰려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수기를 받았고, 일생보처와 지혜를 얻었고, 보리심을 냈습니다. 그렇게 일어났던 사실이 경전에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한량없이 많은 보살과 대중들이 크게 기뻐하며, 예배를 드리고 물러갔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저도 오늘 영산에 왔으니, 2500여년 전에 열렸던 법회에 참석한 것처럼 지혜가 가득해져서 내려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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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

인도 영취산은 독수리처럼 생긴 검은 바위들이 솟아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라는데, 

도봉산에 암벽이 솟아난 모습도 영취산과 비슷할 것입니다.

가파른 산 모양새가 법당을 짓기에는 좋지 않은 때문에, 영산전 짓기에 딱 들어맞을 만큼의 집터만 닦았습니다. 흙을 돋우고 축대를 쌓아서 생긴 낭떠러지를 조심하라고 돌난간을 세웠습니다. 정면에 현판을 걸기는 했지만 법당 전체를 온전히 볼 수 없어서, 측면에도 현판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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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
 

법당 중앙에 석가모니 불상, 좌우 협시는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 불상을 봉안하였습니다. 이렇게 봉안된 삼존불은 현재불인 석가모니불, 미래에 여래로 출현할 미륵보살과 과거에 출현하셨던 정광여래의 보살이던 때 명호인 제화갈라보살로 삼세(三世)에 출현하시는 부처님입니다. 삼세불의 좌우에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입상을 봉안하였습니다. 

후불탱화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비롯한 4대 보살과 8명의 제자가 그려졌습니다. 

수미단은 많은 액자 형태로 짜였고, 각각의 액자는 천녀, 동자, 꽃, 용과 상서로운 동물들이 조각되어 가득 채워졌습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수미산 정상인 도리천에서 법회를 하실 때, 수미산에 출현했던 모두를 본떠 장엄한 것입니다.

수미단 위 중앙에 놓인 안상(眼象)이 장식된 2층 불단에는 삼세불상을, 1층 불단에는 좌우측 각각에 8위의 아라한 좌상을 봉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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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불과 16 아라한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기에 앞서 16 아라한에게 무상법이 사라지지 않도록 보호할 것과 복전으로 중생들이 큰 과보를 얻게 할 것을 부촉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아라한은 지금도 자기의 수명을 늘려가면서 불법을 보호하고, 복전이 되어 중생들이 좋은 업보를 쌓아갈 수 있는 행을 하고 계십니다.

아라한의 이로운 행이 미륵여래께서 세간에 출현하실 때까지 이어질 것이기에, 망월사는 삼세불 좌우측에 아라한 좌상을 봉안하였습니다. 그런 16위의 아라한께서 불단 위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염주를 돌리고 번뇌를 털어내는 불자를 흔들거나 호랑이며 학과 같이 놀거나 희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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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좋은 업을 쌓게 해주시는 아라한의 표정이 이웃에 사는 친근한 분 같습니다.

삼세불의 후불탱 좌우에는 각각 2매씩의 탱화가 걸렸고, 4매의 탱화 각각에는 깊은 산중에서 염주를 굴리고 용이나 호랑이와 놀아주는 네 분의 아라한이 그려졌습니다. 아라한은 그런 산중에 머무시다가 위엄을 갖춘 모습을 감춘 채, 사바세계에 나타나 시주자들이 좋은 과보를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불현듯 아라한은 망월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만나는 곤란한 지경의 사람일 수도 있고, 내게 길을 묻는 사람일 수도 있고, 매일 만나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산전 주련은 16 아라한께서 여기 계시다는 내용입니다.

유산유수승용호  有山有水乘龍虎    

무시무비반송죽  無是無非伴松竹    

증석영산몽수기  曾昔靈山蒙授記

이금회화일당중  而今會花一堂中    

산 있고 물 있으니 범과 용을 타고 놀고

옳음도 그름도 없이 소나무와 대나무와 짝을 이루네.

옛날 오래전에 영산에서 수기를 받았는데

지금 여기 영산전에 모두 모여 계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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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 앞에서 보이는 인간 세상 

왼쪽 아파트 단지는 의정부시 호원동이고, 오른쪽은 서울시 도봉구 도봉동입니다

영산전 앞에서 의정부시 호원동의 아파트 단지가 가깝게 내려다보입니다. 조선왕조 초기 두 차례나 발생한 “왕자의 난”으로 물러났던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한양으로 내려오다가, 호원동에서 신하들과 정사를 논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래서 이 지역이 의정부가 되었다는 야사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1,250명의 큰 비구들과 영취산에 계실 때, 왕사성의 아사세 태자가 부왕인 빈바사라왕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신하들은 물론 어머니인 위제히 부인조차도 접근치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위제히 부인은 부처님 계신 영취산을 향하여 예배하면서 세존 뵙기를 기원합니다. 영취산에 계신 세존께서는 위제희 부인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바를 아시고, 잠깐 사이에 공중으로 날아 왕궁에 나타나십니다.

위제히가 부처님께 아룁니다. ‘제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악한 자식을 낳았습니까？ 부처님이시여, 저에게 청정한 업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보여주소서.’

2500년 전 인도 영취산 아랫자락에서 부자간의 왕권을 두고 이루어졌던 일을 기억하고 계신 부처님께서, 500년 전 조선에서 벌어졌던 형제간의 싸움을 이곳에서 보셨습니다. 예전에 부처님께서 위제히 부인에게 청정한 업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보여주셨던 것처럼, 지금도 이곳에서 극락세계를 보여주시리라 생각합니다.

혜거탑

영산전 왼쪽으로 돌아서 내려가는 비탈길 끄트머리에 혜거국사의 사리를 모신 부도가 있습니다. 이제까지 다니며 보아온 부도 중에 가장 큰 것이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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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거탑

공 모양의 탑신을 제외하고는 기단과 상륜부 모두 팔각형으로 빚어졌습니다. 상륜부는 보주와 복발 그리고 옥개석을 한 개의 돌로 빚어졌는데, 복발과 옥개석 사이에는 구슬을 빙 둘러 새겼습니다. 팔각으로 만들어진 기와지붕은 상당히 두껍고, 내림마루 끝 망와에는 확실하게 알 수 없는 문양이 흐릿하게 남아있습니다. 추녀를 놓아 내림마루를 받쳤고, 옥개석 아랫면엔 두 단의 단차로 옥개 받침을 빚었는데 이것은 한옥 지붕 아래의 겹처마를 보는 듯합니다. 둥근 탑신 위에서 옥개석이 안정될 수 있도록 중앙 부분을 오목하게 파내었습니다. 

둥근 탑신 하단에 연꽃잎을 새겼는데 아래쪽엔 크고 두껍게 앙련을, 그 사이 사이마다 조그만 꽃잎을 옅게 새겨서 탑신의 단조로움을 덜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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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 아래 놓은 여덟 개의 지대석이 세월을 못 견뎌 닳아졌고, 몇 개는 없어졌습니다.

기단은 탑신을 받쳐주는 상대석과 상대석을 받는 하대석 각각을 한 개의 암석으로 조성하였습니다. 하대석은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3단으로 조성하였는데, 맨 윗단은 아래 2단과 다르게 윗면 모서리를 둥글게 마무리했습니다.

상대석은 하대석이 위로 올라가면서 좁아지는 것과 반대로, 올라가면서 넓어지는 모양입니다. 이는 좁아짐과 넓어짐이 반대가 되지만 서로의 모자람을 채워주고, 조화를 이루어 낸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상대석의 윗부분에는 쇠시리를 둘러서 투박한 돌을 장식화하였고, 둥근 탑신석이 고정될 수 있도록 괴임을 파놓았습니다.

오늘에 없어진 몸이 어느 곳에 갔는가? (今日亡身 當在何處)

부도를 세울 당시에 하대석 밖에 사다리꼴 모양의 지대석 8점을 놓아서 팔각형을 이루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지대석은 심하게 풍화되었고, 몇 개는 사라져 없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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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석(臺石)과 간주(竿柱), 화창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옥개석만 남았습니다.

옛적 사람들은 주변에 존재하는 돌이 단단해서 오랫동안 변치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오랫동안 곁에서 모시려는 마음으로 불상과 석탑, 부도를 조성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단단한 돌도 세월이 지나는 동안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비바람과 햇볕과 추위 등에 시달렸습니다. 금이 생겼고, 어느 한쪽이 조각나 떨어져 나갔고, 종래에는 부스러졌습니다. 떨어진 조각들은 크고 작은 알갱이로 분해되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오래되면 대천세계가 무너지고 수미산이며 큰 바다도 없어져서, 어느 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겁니다.

이를 증명하듯 부도 앞에 사각형 옥개석이 덩그러니 놓였는데, 누가 이를 가엽게 보아서 보주가 있을 자리에 굴러다니는 돌을 올려놓았습니다. 부도 앞에 세웠던 석등의 옥개석일 텐데, 불을 밝히고 있던 화창과 그 아래 간주석이며 지대석은 어디로 갔을까요.

망월사에서 많은 것을 보았고, 불자는 없고 공양주만 계신 공양간에서 점심도 해결하였습니다. 경내를 이리저리 둘러보기를 마치고 나와서 “아니 오신 듯 다녀가시옵소서”를 다시 보았습니다. 4시간쯤을 머물다가 나왔는데 “아니온 듯” 하라는 글이 ‘본 척도 하지 말고, 먹은 척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밥을 먹었으니, 밥값을 하지 않으면 ‘오지 않은 것만도 못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밥값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말뿐입니다. 망월사는 곳곳에 부처님의 말씀이 담겨있고, 부처님의 말씀을 아름답게 형상으로 나타낸 절입니다. 생각을 깊게 하는 절이고, 덤으로 도봉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