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망월사(3)

                                                              수원사람 김성채

낙가보전

선재동자는 깨달음으로 이끌어줄 스승을 찾기 위해 여행을 계속하던 중, 낙가산으로 관세음보살을 찾아갑니다. 관세음보살께서 상주하시며 불법을 펴는 곳이 낙가산 관세음궁전 백화도량입니다. 도봉산 낙가보전은 낙가산의 백화도량을 본떠 지은 법당입니다.

크게보기
무위당을 나와서 여여문을 지나면, 낙가보전에 이릅니다.

낙가보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전통 한옥 짓는 방식으로 지은 2층짜리 법당입니다. 아래층엔 “낙가보전”, 위층에는 “적광전” 현판이 걸렸습니다. 2층집이라고 부르지만, 집 안에 들어가서 올려다보면 1층 천장이 없는 중층 건축물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아미타여래가 법을 설하는 서쪽 극락세계에 관세음보살이 있다’라고 말씀하신 후, 극락세계를 사바세계 녹야원에 나타나게 하십니다. 녹야원에 모인 보살과 대중들이 눈 앞에 펼쳐진 극락세계의 장엄과 미묘한 일에 감탄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 모든 것이 관세음보살의 신통력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어서 ‘아미타불께서 열반하시고 아미타불의 정법이 멸한 뒤, 관세음보살이 무상정등각을 이루고 만들어진 불국토는 극락 국토보다 천만 배도 넘게 장엄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크게보기
낙가보전(아래층), 적광전(위층)

관세음보살이 성취한 불국토의 장엄을 나타내려 하였는지, 낙가보전은 화려한 단청을 빈틈없이 입혔습니다. 포벽마다 부처님을, 그 아래 평방에는 연이어 꽃을 그린 소슬금 단청을, 그 아래 창방에는 하늘에서 법당을 호위하는 청룡과 황룡을 그렸고, 그 아래 교창은 투각한 극락조와 봉황으로 채워졌습니다. 그 아래 보전에 들어가는 격자 교살문도 나무를 파내고 뚫어서 조각한 꽃과 새들로 장식하였습니다. 단청의 색이 많이 바랬는데도 아름다우니 처음에는 얼마나 화려했을지 경전에 나오는 불국토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낙가보전 상단에는 계율을 지키고 열심히 수행한 사람이 태어날 수 있다는 중품중생 수인을 취한 관세음보살 좌상을 봉안하였습니다. 그 좌우에는 관세음보살을 뵈러 낙가산을 찾아온 선재동자 입상과 관세음보살의 명을 받아 중생을 돕는 용왕이 협시하였습니다.

관세음보살의 보관 중심에는 아미타불이 새겨져 있어서 관세음보살이 아미타불의 화신임을 보여줍니다.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고통을 낱낱이 보고 계시다는 것을 나타내는 천 개의 눈이 보관을 빙 둘러 장식되었습니다.

크게보기
관세음보살 좌상과 십일면 관음보살(후불탱)

후불탱화는 목각으로 제작된 목탱으로, 중앙에는 중생의 근기에 맞춰 구제할 수 있도록 몸을 변화시킨 십일면 관음보살이 결가부좌 하였습니다. 십일면관음보살의 손은 법륜, 여의주, 금강저, 정병, 염주 등을 들었습니다. 관세음보살의 많은 손은 ‘장차 일체중생을 이익되게 할 수 있다면 천수천안의 몸을 갖춰주시라’라는 서원을 이루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들고 계신 지물은 중생의 소망을 해결하고 구제하시는 다양한 지혜와 방편을 상징합니다.

적광전

“적광전” 현판을 보았기 때문에, 낙가보전 위층에는 당연히 비로자나불상이 봉안되었을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그래서 법당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위층을 올라가는 계단은 찾지 못했고, 비로자나불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상은 예배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 경전에 쓰여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형상을 본떠 빚어냅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 많은 세월이 흐르자, 부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부처님을 가시적인 형태로 모셔놓고 숭배하려는 마음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비로자나불은 법신불로 불교의 진리 자체를 상징합니다. 눈으로는 볼 수 없고, 마음으로 믿고 받드는 신앙의 대상입니다. 법신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인 가르침이지만, 불심(佛心)을 북돋기 위해 어느 때인가부터 비로자나 부처님도 불상을 빚어 봉안했다고 합니다.

비로자나불상을 찾아 법당 안을 한 바퀴 돌다가 ‘나를 모양으로 찾지 말라’는 금강경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만약 모양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찾으면

이 사람은 그릇된 길을 가는 것이기에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로다.

‘아! 그래서 불상을 봉안하지 않았나 보다’를 되뇌며, 반배를 올리고 법당을 나왔습니다.

법당 밖으로 나와 여섯 개의 기둥에 걸린 주련을 봅니다. 망월사 주련은 큰 글씨의 아래쪽에 뜻을 풀어 놓아서 고마웠습니다. 그래도 어려워서 제 나름으로 쉽게 읽었습니다.

증어관음여래회상  曾於觀音如來會上

문훈문수금강삼매  聞勳聞修金剛三昧

잉호관음적거보타  仍號觀音跡居寶陀

시현차토구화무방  示現此土漚和無方

욕식대성감응유실  欲識大聖感應有實

도봉산정추월춘화  道峰山頂秋月春花

아주 오래전 항하사 겁에 관세음부처님을 뵌 관세음보살은  

듣고 생각하고 수행하라는 가르침을 좇아 금강삼매를 이루셨네.

이런 때문에 관음이라 불리는 관세음보살은 보타락가산에 계시면서

중생들의 부름에 맞춰 32가지 응신으로 펴내시는 방편은 끝이 없네.

일체중생을 제도하겠다는 관세음보살의 마음을 느끼고 싶은가?

도봉산 꼭대기에 가을 달과 봄에 핀 꽃을 보게나.

월조문(月釣門)과 심검당(尋劍堂) 그리고 천중선원(天中禪院)

월조문은 ‘달을 낚는 곳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불법과 낚시를 뜻하는 “조(釣)”자는 참으로 어색한 조합인데, “월조문”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생명을 낚지 않고, 달을 낚는다는 시적인 표현입니다.

크게보기
월조문

달을 낚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달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면서 잠시도 같은 모양일 때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보이기만 커지고 작아지는 것이지, 실제는 언제나 동그랗고 같은 크기입니다. 밤의 어둠을 제치고, 밝은 빛을 드러내는 그런 달을 낚아채는 곳이 월조문 안에 있습니다. 

크게보기
심검당과 천중선원

월조문을 들어섰을 때, 정면으로 보이는 집은 “심검당”입니다. 글자만으로 풀이하면 ‘칼을 찾는 집’입니다. 심검당에서 찾는 칼은 신체를 상하게 하거나 살생하는 칼이 아니라, 번뇌와 무명을 끊어내는 부처님의 지혜를 말합니다. 

번뇌는 무섭도록 생겨나고, 거침없이 자라서 저절로는 사그라지지 않기 때문에 끊어낼 수 있는 칼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번뇌와 무명 끊어내기를 반복하면서 무뎌진 칼날은 수시로 예리하게 갈아야 합니다. 천중선원은 하늘에 있는 선원입니다. 삼계를 이루고 있는 여러 하늘 중에 어떤 하늘인지는 모르지만, 그 하늘에서 깨달음을 찾고자 수행하시는 스님들이 참선하시는 곳입니다. 

스님들의 수행에 지장을 주는 방해꾼의 접근을 막기 위해 월조문 앞에 “이곳은 선원이오니 출입을 삼가주세요.”라는 알림판이 놓였습니다. 망월사에 많은 문이 위쪽은 푸른색으로, 아래쪽은 팥죽색인 상록하단(上綠下丹)으로 칠해져서 사찰의 검소함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월조문만은 문짝에 힘이 장사이면서 지혜가 가득한 인왕을 그렸습니다. 알림판의 글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었는지, 문짝에 꽉 차는 거대하고 위압적인 인왕을 그려놓고 인왕까지 나서서 지켜주는 곳임을 나타냈습니다.

해탈문

평평하게 고른 터에 지어진 사찰은 반듯하고 곧바른 길로 이어져서, 가고자 하는 법당을 쉽게 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파른 비탈에 지은 망월사는 앞에 보이는 법당도 구부러지고 얽혀진 계단 길로 이어져서 찾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때문에 온 길을 되돌아서 절 밖으로 나왔습니다. 

다시 망월사로 들어가기 위해, 이번에는 공양간 왼쪽으로 돌아 오르는 계단에서 해탈문을 만났습니다. 해탈문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일어나는 번뇌와 사바세계를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고통을 벗어나게 해주는 문입니다. 

크게보기
해탈문

해탈문을 보면서, ‘해탈문이 사찰의 진정한 정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불교 수행에 도달하려는 목표가 “해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얽매고 있는 것을 깨닫게 하고, 번뇌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려 함이 “해탈”이라면, 사찰로 들어가는 해탈문이 첫 번째 문 이름으로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탈문으로 들어서면 집채만큼 큰 돌덩어리 밑에 약수터가 있습니다. 언제 생겨났는지 모르는 돌덩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비바람을 맞으며 닳고 닳았습니다. 한참 높은 곳에서 샘솟는 물도 신기하지만, 온통 돌로 이루어진 틈에서 약수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 더 신기합니다.

돌덩이 크기가 엄청나기는 하지만, 긴 세월을 겪으며 조금씩 깎여서 각진 모서리가 동그스름하게 다듬어져서 위험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행동하여야 큰 돌덩이처럼 마주치는 사람을 편하게 해줄 수 있을까요? 자기 몸을 깎아서 모난 데를 없애고, 청정한 약수를 끊임없이 베풀어 갈증을 없애주는 돌덩이를 보면서 “보시”의 뜻을 다시 생각하였습니다.

천봉당 태흘지탑

약수터를 지나고 계단을 오르는 곳에 “천봉당태흘지탑”이 세워졌습니다. 사리탑은 예전에 ‘어떤 큰 스님께서 이 사찰에서 정진하시다가 입적하셨다’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탑 정면에 “서산오세손 천봉당태흘지탑(西山五世孫 天峯堂泰屹之塔)”이 새겨져 있어 법명은 “태흘”, 호는 “천봉”, 선종 계보는 서산대사의 법맥을 다섯 번째로 이어받은 스님의 부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옆면에는 “숭정기원후 삼갑인 모춘하완립(崇禎紀元後 三甲寅暮春下浣立)”이 새겨져 있어, 중국 명나라 숭정제가 섭정을 시작한 1628년부터 세 번째 갑인년(甲寅年)을 맞게 된 1794년 늦은 봄 하순에 세워진 탑입니다.

크게보기
태흘탑

탑을 세운 때는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건립된 1644년으로부터 150년이나 지난 1794년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천봉선사께서 입적하신 연도가 1794년인데도 사찰에서 청나라를‘오랑캐가 세운 나라’라고 낮잡아보아, 청나라 연호(건륭)를 쓰지 않고 명나라 연호 “숭정”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망월사 무위당 퇴칸에는 조선 후기에 청나라에서 주한사자로 파견된 원세개가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망월사 광서신묘중추지월 주한사자 원세개(望月寺 光緖辛卯中秋之月 駐韓使者 袁世凱)”라고 쓰여 있어서, 청나라 11대 황제인 광서제가 통치한 1891년 추석에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세개는 조선의 정치와 사회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횡포를 일삼던 사람인데, 어떻게 이곳까지 올라와서 망원사 현판을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크게보기
원세개가 쓴 “망월사”현판이 무위당 툇마루에 걸려 있습니다.

망월사는 명나라가 멸망하고 세월이 한참 지났는데도 명나라가 그리워, 태흘탑 세운 시기를 명나라 연호로 새겨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받드는 나라를 멸망시킨 청나라에서 파견되어, 고종을 퇴위케 하는 등 횡포를 부리는 사람의 글자를 현판으로 걸 때의 심정을 생각해 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자신의 조국 가비라국이 멸망할 때의 심정을 떠올립니다. 가비라국을 정벌하기 위하여 코살라국 유리왕이 쳐들어오자, 부처님께서 석가족의 멸망을 막아보려고 침략해 오는 길목의 메마른 나무 밑에 가부좌하고 앉습니다. 예로부터 군사를 일으켜 출정할 때, 사문을 만나면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리왕이 부처님께 ‘잎이 무성한 좋은 나무도 많은데, 왜 메마른 나무 밑에 앉아 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부처님께서 ‘친족의 그늘이 그래도 바깥사람보다 낫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유리왕이 회군을 합니다. 신통 제일 목건련이 여러 가지 신통으로 가비라국을 보호하려 하자, 부처님께서는 ‘석가족의 전생 인연은 바꿀 수도, 덮을 수도 없다. ’라고 하십니다. 끝내 가비라국 석가족은 참혹하게 멸망합니다. 

숭유억불 정책을 추진한 유교 국가 조선에서 탄압을 받으면서도 간신히 명맥을 유지한 불교입니다. 그렇게 탄압을 받으면서도 조국을 침략한 ‘청나라는 오랑캐 나라’라며 거부하는 마음을 드러냈건만, 청나라의 혹독한 정치가가 쓴 글씨를 현판으로 걸을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태흘탑 기단 상대석은 한 덩이의 화강암을 팔각형으로 깎고, 각 면은 액자 형태로 다듬었습니다. 상대석의 각 면이 만나 만들어진 모서리는 다섯 개의 구슬을 늘어뜨린 형태로 장식화하였고, 팔각형 윗부분은 갑석을 올려놓은 듯 넓어졌습니다.

몸돌 역시 팔각형이지만 원통에 가깝고, 아래쪽에는 작은 연꽃잎을 앙련으로 새겼고, 위쪽에는 큰 연꽃잎을 복련으로 둘렀습니다. 

몸돌을 덮은 지붕도 몸돌이 그렇듯 한 덩이의 돌로 이루어졌습니다. 지붕은 몸돌의 형태에 따라 팔모지붕을 이루었고, 지붕이 두툼한 것만큼 추녀마루도 두툼하고 높아서 안정감을 이루고 있습니다. 상륜부는 한옥 모임지붕집에 절병통을 올려놓듯, 연꽃을 새긴 둥근 돌 위에 꽃봉오리를 얹은 모양으로 장식하였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