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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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장명확)

두루 알다시피 불교에서 귀의의 대상은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함께 상가(Saṅgha)가 있다. 불가에서는 이를 불·법·승 삼보(三寶)라고 부르는데, 삼보 가운데 ‘승’으로 번역된 상가는 오늘날 한국 불교계에서 그 정확한 해석을 놓고 논란과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승을 ‘스님’ 또는 ‘스님네’로 번역해 상가의 참 의미가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운허스님의 아름다운 한글 번역문을 그대로 인용하기로 했으므로, 스님의 번역을 따라 ‘승’을 ‘스님네’로 표기했지만, 솔직히 이는 정확한 번역이라고 볼 수가 없다.      

아무려나, 상가에 대한 잘못된 번역은 한국불교에 많은 문제점을 만들고 있다. 승가는 공동체인데, 승으로 번역되면서 염불승, 탁발승, 동자승 등 개인을 의미하는 말로 왜곡 변질되었다. 특히 대표적인 왜곡 사례로 삼귀의의 세 번째 문장 귀의승의 가사번역 문장을 들 수 있다. 불교의 각종 의식에서 불리는 ‘삼귀의’ 곡의 가사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는 삼보의 의미를 거스르는 내용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상가가 지닌 적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부처님은 재세시(在世時) 인도에서 깨달은 사람들의 집단, 일반사람들의 규범이 되는 집단, 즉 상가를 만들었다. 그래서 상가는 무집착·무차별·화합 세계를 말한다. 무조건적으로 자비를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계이기도 하다. 

특히 의지할 대상으로서의 상가의 자격은 ‘진지하게 노력하고, 정확하게 도의 길을 따라가고, 해탈을 향해 올바르게 나아가고, 여법하게 실천하여 해야 할 일을 다 마친 사람들’이다. 더 정확하게는 사쌍팔배(四雙八輩), 즉 예류도, 예류과, 일래도, 일래과, 불환도, 불환과, 아라한도, 아라한과의 여덟 개의 깨달음 단계 중 어떤 한 곳에 들어가 있는 성자들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의지하는 행위는, 신을 믿는 종교들의 신앙과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의지는 부처님·가르침·상가를 목표로 해서 자기 자신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은 제도할 대상들에게 늘 ‘나와 같은 자가 되십시오, 노력해서 여기까지 올라오십시오.’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당신을 스스로 중생들을 열반의 세계로 인도하는 ‘선한 친구’라고 지칭했다. 

상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서, 그 가르침이 진실한 것임을 세상에 나타내고, 그 가르침을 차세대에게 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상가가 소멸해 버리면, 불교도 소멸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 맑고 깨끗한 사람들의 집단이 있다면 모두가 안심할 수 있고, 흔쾌한 마음으로 의지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상가라고 하는 이상적인 시스템을 가진 모임은 어느 사회에나 있는 것이 좋다. 

테라와다 불교권에는 부처님 제자들의 특징에 대해 밝힌 ‘상가 예경(Saṅgha Vandanā - 상가의 9덕 : Saṅgha guṇa)’이 있다. 원래는 하늘사람들[천인들]이 삼보, 즉 붓다·담마·상가에 대해 찬탄한 것인데, 이것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좋다고 생각했으므로 삼보를 찬탄할 때 사용했다. ‘상가 예경문’의 뼈대는 다음과 같다. 

“진지하게 수행하는 부처님의 제자들인 상가, 정확하게 수행하는 부처님의 제자들인 상가, 올바르게 수행하는 부처님의 제자들인 상가, 여법하게 수행하는 붓다의 제자들인 상가, 이분들은 네 쌍의 대장부요, 여덟 무리의 성자들, 이분들은 붓다의 제자들인 상가이니, 공양 올릴 가치 있는 분들, 환영할 가치 있는 분들, 보시 올릴 가치 있는 분들, 합장 공경할 가치 있는 분들이며, 이 세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복을 심는 대상입니다. 저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상가를 의지하여 나아가겠습니다.” 

상가에는 아홉 가지의 특별한 특성이 있다. 첫째, 좋은 길을 진지하게 실천하는 모임이라는 특성이다. 둘째, 정확하게 열반으로 인도하는 올곧은 길을 걷는 모임이라는 특성이다. 셋째, 올바르게 진리의(즉 열반에의) 길을 걷는 모임이라는 특성이다. 넷째, 존경받기에 적당한 길을 걷는 모임이라는 특성이다. 다섯째, 덕이 높은 분으로 멀리서 가져온 귀한 공양물을 받기에 적당한 모임이라는 특성이다. 여섯째, 환영이나 접대를 받기에 적당한 존경할 가치가 있는 모임이라는 특성이다. 일곱째, 공덕을 믿고 공양 올리기에 적당한 모임이라는 특성이다. 여덟째, 합장과 예를 올리기에 적당한 모임이라는 특성이다. 아홉째, 사람들이 공덕을 얻기 위한 논 또는 밭과 같은 모임이라는 특성이다.  

불연이 없거나 희미한 이가 삼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삼보 가운데에서 그래도 범부들이 다가가기 쉬운 것은 상가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은 공덕이 없으면 친견할 수 없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해하여 실천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상가의 존재는 과거전생에 큰 공덕을 짓지 못한 중생들에게 그 자체로 더없이 소중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적은 양으로도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고, 힘들 때 사람들이 용이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상가이다. 또한 상가를 통하여 부처님을 만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여, 궁극적으로는 부처님과 가르침에 다가갈 수가 있다. 

이렇게 상가의 아홉 가지 특성과 공덕을 거듭거듭 생각하면, 탐·진·치 삼독으로 인해 마음이 괴로움을 당하지 않게 된다. 또한 상가의 공덕을 생각하면 마음이 반듯해지고, 장애가 사라지고, 선정의 힘이 생겨난다. 생각만으로 깊은 선정까지 이르지는 못하겠지만, 이것이 바탕이 되어 위빠싸나 지혜가 일어난다. 

결론적으로 상가란 부처님 입멸 후의 세상에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을 실천해 나가는 출가자의 모임을 가리킨다. 또 부처님을 대신하여 세상 사람들을 이끄는 의지처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계속 전하는 배와 같으므로 당당하게 공양을 받을만한 모임을 뜻한다. 

상가에는 이처럼 엄청난 공덕이 있으므로, 출·재가를 막론하고 불자들이라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상가를 의지하여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나아가겠다는 간절한 서원을 하는 것이다. 

이산혜연 선사는 발원문에서 삼보 중 상가를 ‘삼승사과해탈승(三乘四果解脫僧)’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여기서 삼승(三乘)이란, 성문·연각·보살을 말한다. 보살은 보시·지계·인욕 등의 바라밀을 통하여 중생들을 제도하고 불과(佛果)를 얻고자 수행하는 이들이고, 성문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존해 번뇌를 끊고 아라한의 경지를 얻고자 수행하는 이들이며, 연각은 스승의 가르침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연기의 이치를 발견하여 번뇌를 끊고 아라한의 지위에 오르고자 수행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사과(四果)는 금강경에 나오는 수다원과·사다함과·아나함과·아라한과를 뜻한다.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만 四果를 논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승불교에서도 사과가 사용되고 있다. 사과는 성문들과 연각들이 지관(止觀) 수행을 통해 얻게 되는 네 단계의 과위를 말하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중생은 번뇌에 속박된 존재이다. 번뇌는 중생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존재이며 중생을 묶는 존재이다. 이 번뇌를 경전에서는 묶는다는 뜻으로 결(結)이라 하고 크게 열 가지로 나누어 십결(十結)로 표현한다.

십결은 첫째 몸과 마음을 자아라고 여기는 유신견, 둘째 그릇 된 관습이나 계율에 대해 집착하는 계금취견, 셋째 법에 대한 의심, 넷째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탐욕, 다섯째 악의와 분노인 진애이다. 여섯 번째 물질과 형상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대해 애착하는 유색애, 일곱 번째 물질을 초월한 고귀한 정신세계에 대해 애착하는 무색애, 여덟 번째 수행에 의해 얻어진 기쁨에 들뜨는 도거, 아홉 번째 번뇌 없는 경지인 줄 만족하여 안주하는 만, 열 번째 근원적 어리석음인 무명이다.

이 열 가지 중에 앞의 세 가지인 유신견, 계금치견, 법에 대한 의심이 끊어지면 수다원으로 성인의 흐름에 들어 일곱 생 안에 해탈을 이룬다. 그리고 다음의 두 가지인 탐욕과 진애가 현저히 약화되면 사다함으로 한 번만 이 인간 세상에 오게 되어 한 생으로 해탈을 이룬다. 이어서 앞의 탐욕과 진애가 완전히 끊어지면 아나함으로 다시는 이 세상에 오지 않고 물질로 이루어진 색계천에 태어나 해탈을 이룬다. 마지막으로 뒤의 나머지 유색애, 무색애, 도거, 만, 무명이 끊어지면 아라한으로 삼계 어디에도 태어나지 않게 되고 해탈을 이룬다.

부처님과 더불어 보살과 성문과 연각, 그리고 이들에 포함되는 수다원을 비롯한 네 종류의 성자들은 중생들에 복전(福田)이 되어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 분들이며, 마땅히 귀의의 대상으로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된다.

이산혜연 선사는 삼보를 찬탄한 후, “지성귀의 하옵나니 자비하신 원력으로 굽어살펴주옵소서.”라고 발원한다. 여기에서 ‘지성귀의’는 ‘목숨을 바쳐 귀의한다[歸命]는 뜻을 의미한 것이며, ‘자비하신 원력으로’는 ‘부디 대자대비를 베풀어[願賜慈悲]’라는 뜻이다. ‘굽어살펴 주옵소서.’는 가엾고 애틋하게 보셔서[哀] 자비로운 마음으로 거두어 보살펴 달라[攝受]는 간절한 요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