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종
2025-03-21 (금) 05:57마치 허공 가운데
여러 가지 바람이 불 듯
동풍이나 서풍이나
북풍이나 남풍처럼,
먼지 바람이나 먼지 없는 바람이나
차가운 바람이나 더운 바람이나
큰 바람이나 작은 바람
여러 가지 바람이 분다.
이처럼 이 몸에
여러 가지 느낌이 생겨난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생겨나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것도.
수행승이 참으로 성실하여
알아차림을 버리지 않으면,
그 현명한 사람은
모든 느낌을 완전히 알게 되리.
가르침에 기초하여
모든 느낌을 완전히 알아
현세에 번뇌를 여의고 지혜에 정통한 자는
몸이 파괴된 후에 헤아려질 수 없다.
-전재성님 옮김
(ⓒ장명확)
춘래불사춘이라더니! 비교적 따뜻한 지역인 충청남도에도 3월 중순에 폭설이 내렸다. 막 꽃망울을 터뜨릴 태세였던 뜰 앞 생강나무와 매화몽우리들이 화들짝 놀라 한껏 움츠렸다. 눈 그치고 나니 바람이 거세게 분다. 봄을 시샘하는 동장군의 입김이라도 실렸는지 제법 맵찬 바람이다. 여름두릅 종근을 심기 위해 밭을 만든 후 덮어놓은 부직포가 거친 파도마냥 겁나게 흔들린다.
그러고 보면 바람에도 종류가 참 많다. 계절별로는 봄바람, 가을바람, 겨울바람이 있고, 계절풍으로는 여름계절품, 겨울계절풍이 있다. 방위별로는 북풍, 서풍, 동풍, 남풍이 있고, 대기 대순환으로는 편서풍과 무역풍, 극동풍이 있다. 이밖에도 태풍, 토네이도, 활강바람, 태양풍 등이 있다.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을 가진 바람의 종류도 엄청나게 많다.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고온건조한 높새바람, 여름이나 가을에 서쪽에서 불어오는 하늬바람, 초가을에 동쪽에서 세게 불어오는 강쇠바람, 뱃사람들이 일컫는 서남쪽에서 불어오는 갈마바람, 뱃사람들이 일컫는 동남풍 된마바람, 북쪽에서 불어오는 큰바람인 댓바람, 북쪽에서 불어오는 뒤울이, 북쪽 높은 데서 부는 높바람, 산에서 내리부는 재넘이, 골짜기에서 산꼭대기로 부는 골바람, 양쪽에서 마주 불어오는 맞바람, 뒤쪽에서 불어오는 꽁무니바람, 이른 봄 가늘게 솔솔 불어오는 실바람, 봄철 꽃이 필 무렵에 부는 꽃샘바람, 이른 봄에 제법 차갑게 살 속으로 기어드는 음산하고 매운 소소리바람, 모내기철 지속적으로 부는 아침 동풍과 저녁 서북풍 피죽바람, 여름이나 가을에 남쪽에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마파람, 초가을에 잔잔하고 선선하게 부는 색바람, 가을에 쓸쓸한 느낌으로 으스스하고 쓸쓸하게 부는 소슬바람, 가볍고 시원하게 부는 산들바람, 선들바람, 부드럽고 화창한 명지바람, 부드럽고 가볍게 부는 솔솔바람, 소나무 사이를 스쳐 부는 솔바람, 서리 내린 날 아침에 부는 서릿바람, 초겨울에 선들선들 부는 건들마(건들바람), 눈과 함께 또는 눈 위로 불어오는 차가운 눈바람, 이른 아침 동틀 무렵 가볍게 불어오는 동풍 샛바람(동부새), 저녁 늦게 부는 늦바람, 음력 5월에 배를 빨리 달리게 하는 박초바람, 음력 시월 스무날께 손을 호호 불 정도로 차갑고 센 손돌바람, 문이나 문틈으로 불어오는 문바람, 작은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살바람, 겨울에 방 천장이나 벽틈으로 들어오는 윗바람, 바깥공기 또는 바깥에서 부는 바깥바람, 쓸데없이 부는 또는 허황된 일에 공연히 들뜬 마음을 비유하는 헛바람, 도리깨질할 때 일어나는 도리깨바람, 가마를 타고 가며 쐬는 가맛바람, 좁은 곳으로 가늘게 불어오지만 매우 춥게 느껴지는 황소바람, 높은 고원에서 갑자기 산 밑으로 내리 부는 차갑고 세찬 보라바람, 살을 파고드는 듯 사납고 매서운 고추바람, 육지의 모든 것을 싹 쓸어 갈 만큼 세차고, 바다의 배가 뒤집힐 정도로 세게 부는 싹쓸바람, 아주 세차게 부는 왕바람, 칼로 살을 베듯이 세차고 날카롭게 부는 칼바람, 정해진 방향 없이 두서없이 부는 왜바람, 바다와 섬 혹은 육지가 맞닿은 곳에서 일어나는 회오리바람을 이르는 말로 마치 용이 올라가는 듯한 용오름바람, 흙가루를 날리며 부는 흙바람, 비를 몰고 오는 흘레바람, 빠르고 세차게 부는 된바람, 빠르게 부는 결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는 날파람, 용수철 모양으로 뱅뱅 돌면서 하늘로 치솟는 용수바람, 주변의 공기가 한꺼번에 모여들어 나사꼴로 빙빙 돌며 올라가는(공기의 선회운동으로 갑자기 한 곳의 기압이 낮아질 때 부는)돌개바람(회리바람, 회오리바람), 갑자기 휘몰아치는 벼락바람 등등. 바람의 종류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이 숱한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살아간다. 바람이 사람들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므로 예로부터 이처럼 다양한 명칭이 바람에 붙여졌을 것이다. 이런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어떤 생각을 일으킬까. 춥다거나, 시원하다거나, 무섭다거나, 흔들린다거나, 스산한 기분이 든다거나 등등 매우 다양할 것이다.
부처님은 바람에 대해 어떤 생각을 일으키셨을까. 분명한 것은 세상의 모든 사물, 대상들을 설법의 소재로 삼았던 부처님께서 바람을 그냥 흘려보냈을 리 없다는 점이다.
<쌍윳따니까야>36:12 ‘허공의 경(Paṭhamakasālāsutta)’에 나오는 부처님의 이 시는 바람을 소재로 한 부처님의 허공을 주제로 한 설법에서 등장한다.
부처님께서 사왓티 시의 제따와나 숲에 있는 기원정사에 머물 어느 때, 부처님은 제자들을 불러 모으셨다. 아마도 이때 기원정사에는 바람이 불어왔던 모양이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을 두고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허공에 여러 가지 바람이 분다. 동풍도 불고 서풍도 불고 북풍도 불고 남풍도 불고 먼지 있는 바람도 불고 먼지 없는 바람도 불고 찬바람도 불고 더운 바람도 불고 작은 바람도 불고 큰 바람도 분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 몸에는 여러 가지 느낌이 일어난다. 즐거운 느낌도 일어나고 괴로운 느낌도 일어나며,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난다.”
그러니까 이 시는 바람을 소재로 법문하면서 제자들이 모두 완전한 열반에 이르기를 바랐던 부처님의 간곡한 마음이 깃든 시이다.
부처님은 이 시에서 수행승이 알아차림, 즉 사띠를 놓치지 않으면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느낌을 완전히 파악하고, 마침내 번뇌를 여의고 통찰지혜를 얻어 열반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해탈언덕에 이르러 윤회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났으므로 몸이 파괴된 후 헤아려질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