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기억은 들춰보기가 싫다. 그 통증이 살아있는 공기와 접하면 아무리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쓰리고 고통스럽다. 개인의 상처이든, 혹은 집단의 피해의식이든 상처가 아프기는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더구나 수백년의 共業이 뭉쳐낸 역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국불교사에 있어서 특히 근현대 연구가 등한시 되고 있는 것을 보면, 가끔 한국불교계가 지난 100여년의 시간을 망각하고 싶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픈 기억일수록 정확한 기억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그 상처를 안은 채 더 깊은 혼동과 왜곡의 국면으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역사를 왜곡한 민족이나 역사를 외면한 그 어떤 왕조도 살아남을 수 없었음이 이를 입증한다.

크게보기최근 『백년 동안 한국불교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라는 제목으로 근현대 120여년 불교사를 풀어쓴 책이 출간됐다. 일제시대 불교사 전공인 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이 법보신문을 통해 3년여의 공을 들여 쓴 역작이다.

이 책은 한국불교의 근대가 시작되는 일본불교계의 별원 설치 시점부터 1998년 조계종 분규까지 약 120년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저자가 근대 한국불교의 시작점을 개항직후 일본불교계가 별원을 설치하고 포교를 시작한 시점으로 보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국권을 노리는 외부세력에 의해 근대를 맞이하고, 근대적 틀을 갖추게 된 한국불교의 근대사는 첫 단추부터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지난 120년의 시간은 그 뒤틀린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한 불교계 나름의 몸부림이었을 지도 모른다. 이후 왜색불교의 타도를 외치며 이루어진 정화운동, 대처승들을 모조리 내쫓고 이룩해낸 조계종의 성공은 사실상 절반의 성공에 불과했다. 이후 돈과 권력을 좇았던 권력형 승려들에 대한 반발은 1994년과 1998년의 종단분규로 이어졌고 조계종은 또다시 커다란 내상을 입게 되었다.

이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사진이 화염에 휩싸인 조계종 총무원 청사라는 점은 저자의 비판의식을 다시금 되짚어보게 한다. 저자의 마지막 결론을 들어보자.

“해방 이후 불교계는 분규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폭력을 동원하고, 승려들이 자해 행위를 하는가 하면, 총무원 청사에 공권력이 투입되고, 화염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았다. 불교계의 이러한 모습은 존경받아야 할 승려들의 위상을 실추시켰고, 불교도들의 가슴을 멍들게 만들었다. 분규의 원인은 승려들이 돈과 권력을 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저변에는 일제 치하에서의 왜색 불교화와 해방 이후 비구·대처승 갈등을 겪으면서 승려들의 자질 향상을 도모하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었다. 그 오랜 세월의 질곡을 하루아침에 벗어날 수는 없다. 불교도들은 이제는 더 이상 불교계가 분열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화합하는 모습이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김순석 연구원은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유교문화박물관장이다. 한마디로 불교계 바깥에서 활동하는 인물이다. 근현대 120년사를 정리하는 작업은 ‘in 불교계’에서는 감히 해낼 수 없는 일일런지도 모른다.

이 책의 출간을 통해서 현대사의 한페이지를 써내려가고 있는 스님들이, 그리고 ‘in 불교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역사적 위치와 사명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길 발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