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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으로 원한이 그쳐지지 않네”

이 학종 | | 2024-02-08 (목)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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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도림사(사진=미디어붓다)



한꺼번에 시끌벅적 떠들어대며

아무도 스스로 어리석다 생각하지 않는다. 

참모임이 파괴되고 있는데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는다. 


슬기로운 대화는 잊혀지고

언어는 말의 영역에서만 맴돈다.

입 벌려 마음대로 소리 지르니

누구에 이끌리는지조차 모른다. 


‘그가 나를 비방했다, 때렸다, 이겼다, 약탈했다.’

이와 같은 적의를 품은 자,

그들에게 원한이 그쳐지지 않네. 


‘그는 나를 비방했다, 때렸다, 이겼다, 약탈했다.’

이와 같은 적의를 품지 않은 자,

그들에게만 원한이 그쳐 지네. 


원한으로 원한이

결코 그쳐지지 않네.

원한은 떠나야만 그쳐질 수 있네. 

이것이야말로 영겁의 진리이네.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 리가 없네. 

사람들이 이것을 안다면

바로 거기서 다툼은 끝나네. 


뼈를 부수고 목숨을 빼앗고

소, 말, 재산을 약탈하고

나라를 도둑질하는 자, 

그들에게도 화합이 있는데,

어찌 그대들은 그럴 수조차 없는가?


선하게 지내고 또한 흔들림 없는

현명한 벗을 그대들이 얻으면,

모든 위험의 공포를 극복하고

새김을 확립하고 만족하며 그와 함께 유행하라. 


선하게 지내고 또한 흔들림 없는

현명한 벗을 그대들이 얻지 못하면

왕이 정복한 국토를 버리는 것과 같이

숲 속에 코끼리처럼 혼자서 가라.


어리석은 자와 벗하기보다는

차라리 홀로 가는 것이 낫다.

악을 짓지 말고 홀로 가라. 

숲 속 코끼리처럼 편히 가라.  


부처님의 시에 반드시 감흥 어린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께서 꼬쌈비 시에 있는 고씨따 승원에 계실 때, 꼬쌈비 시의 한 승원에서 수행하는 수행승들이 두 패로 갈려 서로 다투고, 언쟁을 하고, 논쟁하고, 입에 칼을 물고 서로를 찌르는 독설을 퍼붓는 일이 벌어졌다. 

수행승들이 다투게 된 사건의 발단은 사소했다. 화장실을 사용하고 물통에 물을 버리지 않은 강사를 보고 율사가 ‘사용 후 물을 비우지 않으면 계율에 어긋난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다면 파계가 아닐 수도 있다.’고 지적한 것이 분쟁의 시작이었다. 율사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무심코 강사가 자신이 화장실에서 행한 행위가 계를 파한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더라는 이야기를 했고, 율사의 제자들은 강사의 제자들에게 ‘너희 스승은 사소한 계율도 모른다.’라고 비난하면서 사태가 커졌다. 이 말을 전해 들은 강사는 ‘율사가 그때는 계를 파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니 이제는 파한 것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거짓말쟁이다.’라고 분개했다. 이렇게 오가는 말에 살이 붙어서 두 스승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제자들 간에 비난이 지속되며 증폭되었다. 급기야 율사를 따르는 대중들이 대중공사를 통해서 강사에게 징계를 내리자 양쪽의 대립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개인들의 다툼이 징계를 내린 쪽과 징계가 부당하다고 항의하는 쪽의, 집단 분쟁으로 확대된 것이다. 

그때 부처님은 한 수행승으로부터 꼬쌈비의 수행승들이 갈려 서로를 헐뜯으며 싸우고 있으니,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찾아주시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고, 수행승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부처님은 수행승들에게 다가가 “그만하라. 다투지 말고 언쟁하지 말고 논쟁하지 말고 분쟁을 일으키지 말라.”고 타일렀다. 그러자 한 수행승이 다가와 “진리의 주인이신 세존께서는 기다리십시오. 세존께서는 관심을 갖지 마시고 지금 여기에서의 안락한 삶을 영위하십시오. 우리가 이 다툼과 언쟁과 논쟁과 분쟁을 진정시킬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부처님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부처님이 세 번에 걸쳐 다툼을 그치라고 간곡히 당부했지만 그들은 ‘스스로 해결하겠다.’며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시는 부처님께서 스승의 간곡한 당부도 듣지 않는 꼬쌈비의 수행승들을 보고 안타까움과 실망을 담아 읊은 시로, <맛지마니까야> 공의 품 ‘오염에 대한 경(Upakkilesasutta)’에 나온다.   

부처님이 수행정진을 통해 이뤄낸 경지를 감흥 어린 시구로 읊고 있는 다른 시들과는 달리 이 시에는 스승의 명령조차 거부하는 제자들에 대한 부처님의 실망감과 분노가 잔잔히 배어있다. 부처님은 당신의 당부마저 저버리는 제자들을 보고, 쓸쓸히 거처 고씨따 승원으로 돌아왔다. 부처님은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꼬쌈비 시로 탁발하러 들어갔다. 부처님은 탁발을 하며 유행을 하시다가 식후에 탁발에서 돌아와 처소를 거두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서서 안쓰러운 표정으로 이 시를 읊으신 것이다. 부처님은 이 시를 읊은 후 처소를 떠나 존자 바구(Bhagu)가 정진하고 있는 발라까로나까라 마을로 떠났다. 이곳에서 부처님은 존자 바구에게 “나는 그대가 잘 지내기를 바란다. 나는 그대가 편안하길 바란다. 나는 그대가 탁발하며 지내는데 결코 어려움이 없기를 바란다.”고 격려하고 고무하고 기쁘게 한 후, 존자 아누룻다(Anuruddha), 난디야(Nandiya), 낌빌라(Kimbila)가 있는 빠찌나방싸 공원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부처님은 세 존자에게 “아누룻다와 존자들이여, 그대들은 화합하고 서로 감사하고 다투지 않고 우유와 물처럼 융화하며 서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지내기를 바란다.”고 당부하고, 그들로부터 그렇게 지내고 있다는 대답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그들에게 법을 설했다.    


한편, 꼬쌈비 수행들의 갈등 및 대립 문제는 뜻밖의 상황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분열 초기에는 재가의 신자들까지 강사 쪽을 지지하는 쪽과 율사 쪽을 지지하는 쪽으로 나누어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처님을 보고 싶어 하는 시민들이 부처님이 다시 돌아오시기까지는 분쟁하는 수행승들에게 공양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수행승들은 공양을 다시 얻으려면 부처님을 모셔 와야 했고 부처님을 모셔오려면 누가 정당한 주장을 하고 있었는지 아닌지를 떠나서 당장 싸움을 그만두어야 했다. 부처님이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던 수행승들이 재가자들의 공양거부에 손을 든 것이다.


기대하지는 않지만, 부처님께서 읊어주신 이 시가 걸핏하면 이권과 자리를 놓고 쟁투를 서슴지 않는 오늘의 명리승(名利僧)들에게 작은 경종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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