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종
2024-01-19 (금) 08:59크게보기
진관사 소나무(사진=미디어붓다)
어리석은 자가
어리석은 줄 알면
그로써 현명한 이가 되고,
어리석은 자가
현명하다고 착각하면
더 어리석은 자가 되네.
어리석은 자는
평생 현명한 이를 섬겨도
국자가 국 맛을 모르듯이
끝내 진리를 알지 못하네.
“잠 못 이루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 피곤한 사람에게 길은 멀듯이 / 올바른 가르침을 모르는 / 어리석은 사람에게 / 아아 생사의 밤길은 길고 멀어라.”라는 시가 있다. <법구경>에 있는 이 시는 빼어난 시적 표현 덕에 찬불가의 가사로도, 책의 제목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자에게 밤의 길이는 서너 배 이상 길게 느껴진다. 주석에 따르면, 그런데 해가 중천에 이를 때까지 뒤척이며 잠자는 게으름뱅이나 잘 먹고 호화로운 침대에서 자는 관능주의자들은 결코 그 길이를 알 수가 없다. 오직 명상수행으로 밤을 지새우며 정진하는 자,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설법자, 그에게 가까이 앉아 설법을 듣는 자, 머리 등에 통증이 있는 자, 손발 등에 고통을 겪는 자, 밤을 길에서 지새우는 여행자는 밤의 길이를 알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이란, 이 세상과 저 세상에 유익한 것을 모르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종식시킬 수 없고, 윤회를 끝내는 데 도움이 되는 수행의 길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어리석은 줄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일 것이다. 어느 때 한 저명한 작가가 한 정치인의 무모하고 무지한 행태에 대해 “자신이 어리석은 줄 모를 정도로 어리석다”고 비평해 장안의 화제가 된 적도 있지만, 어리석음은 삼독심 가운데 하나로 윤회전생의 근원에 해당한다. 어리석음은 탐욕심과 분노를 일으키는 바탕이기도 하고, 탐욕심과 분노가 일어날 때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시는 <법구경- 담마파다> ‘어리석은 자의 품(Bālavagga, 愚闇品)’에 등장한다. 부처님은 이 품에서 어리석음과 관련하여 갖가지 비유로써 그 폐해를 설파하신다. ‘어리석은 자와의 우정은 없다.’는 가르침, ‘자기도 자기 것이 아닌데, 어리석은 자는 실로 내 자식, 내 재산이라고 괴로워한다.’고 강조하고 계신다. 어리석은 자와 함께 사느니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나누어주지 않은 부자가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그에게 재산과 자식이 죽음의 고통을 가져가고 평안을 가져올 수 있는가?라고 설법하신다. 이 시는 ‘어리석은 자의 품’의 4, 5번째에 등장한다. 1~3번째 시를 통해 어리석음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부처님은 4, 5번째 시를 통해 어리석음의 본질과 허점을 설파하신다.
- 시구 ‘어리석은 자가 / 어리석은 줄 알면’은 어리석은 자가 ‘나는 어리석은 자이다’라고 아는 것은 무지한 자가 자신이 무지한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다른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아주 무지한 자는 자신이 무지한 것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시구 ‘그로써 현명한 이가 되고’는 이미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아는 자는 그 때문에 현명한 자이거나 그와 같은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나는 어리석다’라고 아는 자는 다른 현명한 이를 찾아가서 그와 사귀면서 가르침을 받고 충고를 받아 현명한 이가 되기 때문이다.
- ‘어리석은 자가 / 현명하다고 착각하면 / 더 어리석은 자가 되네.’는 어리석은 자가 자신이 현명하다고 여겨 다른 현명한 이에게 가지 않고, 그와 사귀지 않고, 가르침을 공부하지 않고 명상수행을 실천하지 않으므로 마치 소매치기하는 도둑처럼 결정적인 어리석음에 이른다는 뜻이다.
- 시구 ‘국자가 국 맛을 모르듯이’는 이 시에서 가장 멋진 비유에 해당한다. 국자는 다양하게 요리된 음식의 맛, 예컨대 짜고 짜지 않고, 쓰고 쓰지 않고, 아리고 아리지 않고, 맵고 맵지 않고, 시고 시지 않고, 떫고 떫지 않고 등을 구분하지 못한다. 국자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는 평생을 현자와 같이 지내도 가르침을 식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 시구 ‘끝내 진리를 알지 못하네.’는 부처님이 장로 우다인을 교화한 인연담에서 비롯된 내용이다. 부처님께서 제따 숲에 머물고 계실 때 장로 우다인은 대장로들이 법당을 떠나면 그곳에 들어가 법상에 앉곤 했다. 어느 날 객승들이 그가 법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이 분은 박학한 대장로임에 틀림이 없다’라고 생각하여 그에게 존재의 다발 등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러나 그런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본 객승들은 ‘어찌 부처님과 함께 살면서 존재의 다발과 인식의 세계, 감각의 영역에 대해 알지 못할 수가 있는가!’라고 꾸짖고는 이 사실을 부처님께 알렸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객승들에게 관련된 설법을 하고 이어 시로서 ‘어리석은 자는 평생을 현명한 님을 섬겨도 국자가 국맛을 모르듯, 진리를 알지 못한다.’라고 가르쳤다. 이 가르침이 끝나자 객승들은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