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담바라 핀 청계사(2) 

                                                   수원사람 김성채 객원기자

또 다른 세계 

금강역사 석상이 있는 마당에서 계단을 오르면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극락보전 앞에 널찍한 마당을 만들려면 비탈진 산을 많이 깎아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계단식으로 산을 깎아서, 대중들이 아래쪽 마당에서 기도드릴 수 있는 편평한 땅을 마련하였습니다. 깎으며 생긴 산 쪽에 축대를 쌓고, 그 앞면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과 불교 상징 여럿을 부조한 화강암 판석으로 마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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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부처님께서 탄생하시다(비람강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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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밖에서 죽은 사람과 수행자를 보다(사문유관상)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알려주고, 올바른 수행으로 이끌어주는 팔상성도는 여러 사찰의 법당 벽에 그려져 있습니다. 부처님의 팔상도는 언제 어디에서 보더라도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정진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화강암을 큰 양감으로 부조하여, 입체감이 두드러진 까닭에 그림을 보는 것과는 다른 실감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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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 파순의 유혹을 물리치다(수하항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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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야원에서 최초로 법을 설하시다(녹원전법상)
 

계단을 타고 오른 마지막 마당은 수미산의 꼭대기입니다. 그곳에 극락보전을 짓고, 보전 안에 어리석음을 벗어버리고 큰 진리를 깨우치신 부처님을 모실 연화대를 꾸며 놓았습니다. 그 연화대를 상단 또는 수미단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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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과 사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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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과 사천왕
 

여러 불보살님을 초청하여 공양드리는 곳

마침 극락보전에서는 49재가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법당 정면에는 많은 번(幡)이 걸렸습니다. 천도재이니만큼 당연히 망자가 좋은 곳에 태어나도록 자비심을 베풀어 주실 여러 불보살님의 명호(名號)가 쓰여진 번입니다. 바람에 휘날리는 번을 보면서 불보살님 이름에 담긴 깊은 의미와 공덕을 되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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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해주실 불보살과 신장들의 번이 휘날리는 극락보전
 

나무유명교주지장보살       (南無 幽冥敎主 地藏菩薩)

나무원만보신노사나불       (南無 圓滿報身 盧舍那佛)

나무극락도사아미타불       (南無 極樂導師 阿彌陀佛)

나무관음세지대보살         (南無 觀音勢至 大菩薩)

나무당래교주미륵존불       (南無 當來敎主 彌勒尊佛)

나무청정법신비로자나불     (南無 淸淨法身 毗盧遮那佛)

나무접인망령대성인로왕보살 (南無 接引亡靈大聖 引路王菩薩)

나무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   (南無 千百億化身 釋迦牟尼佛)

나무문수보현양대보살       (南無 文殊普賢 兩大菩薩)

너무조양진화도명존자       (南無 助揚眞化 道明尊者)

나무조불양화무독귀왕       (南無 助佛揚化 無毒鬼王)

극락보전에서는 불보살님을 기쁘게 하는 스님들의 염불과 바라춤 작법이 계속되었습니다. 어떤 분인지 모르면서 불보 공양의 덕으로 망자가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빌었습니다. 가까이에서 천도재 지내는 것을 보고 싶었지만, 기웃거리는 게 예의가 아닌 듯해서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삼천대천세계 곳곳에 퍼져나가는 범종 소리

아래 마당과 극락보전 사이에는 보물로 지정된 동종을 걸어놓은 종각이 있습니다.

저 아래 푯돌이 있는 곳을 지나쳐, 부처님을 모신 곳의 중간쯤에 종각을 세우는 까닭은 세상의 중심 수미산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땅 아래부터 하늘에 이르는 모든 공간에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때문입니다. 그 종소리를 듣고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하늘의 모든 중생이 고통을 여의고, 깨달음을 얻어 성불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교화하시는 세계의 크기는 육도뿐만 아니라, 범종 소리가 퍼져나가는 모든 곳입니다. 종각이 비록 한 칸으로 좁고 좁지만, 교화하는 힘은 욕계와 색계, 무색계까지 이르는 삼천대천세계로 무한히 넓습니다.

보물로 지정된 청계사 동종은 우리나라의 범종이건만, 생김새가 우리가 알고 있는 범종과는 상당히 다른 모양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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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좌는 없고, 중간에 쇠시리가 있는 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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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룡의 용뉴와 음통이 없는 천판
 

대부분의 범종은 한 마리 용이 발톱을 세워 종의 지붕(천판)을 움켜쥐었고, 뒤틀어 올린 몸통의 배에 종을 걸 수 있게 용뉴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동종은 서로 다른 쪽을 바라보는 용 두 마리의 몸통을 붙여서 만들었습니다. 

범종은 천판 아래와 종의 밑단에 아름다운 무늬의 띠(상대와 하대)를 둘렀고 몸통을 나누는 선이 없는데, 동종은 몸통 중간에 두 줄의 쇠시리로 모양을 냈습니다. 또 범종은 종을 치는 자리로 두 개의 원형 당좌를 만들고 그 둘레를 연꽃잎으로 장식해 화려함을 이루는데, 동종은 시주자들의 이름만 명문으로 새겼습니다. 범종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잡소리를 제거하여 은은한 여운을 나게 하는 음통이 있는데, 동종은 음통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청계사 동종은 어떤 소리를 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동종과 관련한 또 하나의 궁금증은 안내판 <사인 비구 제작 동종 - 의왕 청계사 동종>에 ‘일제강점기 수탈 정책 실시로 인하여 종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을 때, 서울 봉은사로 옮겨 잠시 감춰 두었고 1975년에 청계사로 돌아왔다.’고 쓰인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청계사는 깊은 산골이어서 숨길 장소가 많았을 터인데, 굳이 보는 눈이 많은 서울로 420Kg이나 되는 무거운 종을 마차에 실어서 옮겼을까요?

보이지 않는 세계의 경계

극락보전 왼쪽에 소대(燒臺)가 있습니다. 생전에 망자가 지녔던 옷이며 유품과 천도재를 치르며 사용한 번과 의장 등을 불태우는 곳입니다. 불사르는 것은 망자가 입었던 옷과 사용했던 물건뿐 아니라 눈 귀 코 입이 지녔던 욕심까지도 태워버리니, 이곳에 더 이상 집착하지 말고 극락세계로 떠나라는 의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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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탑이 연상되는 소대

양회로 쌓은 소대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구워낸 검정 기와를 심어 모양을 냈고, 사각의 모임지붕에 연통을 올렸습니다. 기와는 금색이 칠해졌고, 암막새에는 연꽃 문양이 들었고, 수막새에는 티베트 문자 “옴”자가 들었습니다. 모임지붕이 모이는 곳에 놓는 절병통을 대신할 연통을 놓았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져 티베트의 탑이 연상되었습니다. 어쩌면 막새에 새겨진 문자와 아궁이 위를 장식한 문자 때문에 티베트가 연상되었을 듯싶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죽음과 동시에 육도의 한곳으로 직행하지 않고, 중음 세계로 간다고 합니다. 윤회하기 위한 절차로 중음 세계에서 심판받아야 하는 때문입니다. 망자는 그 세계에 머물면서 일곱 번의 심판을 받는데, 죽은 지 49일째가 되는 날 열리는 심판에서 업장의 무게에 따라서 새로운 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소대를 보면서 중음 세계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소대 앞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유의 세계가 끝나면서 시작된 중음 세계는 천도재를 끝내고 소대에서 욕심과 집착이 불에 타서 사그러져 재가 될 때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때 망자는 여섯 개의 세계 중 어느 한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소대 앞 어딘가에는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중음 세계의 끝을 알려주는 선(線)이 그어져 있을 겁니다. 

이런 게송도 이미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제 천리나 되는 허공 길을 떠나갑니다.

돌아가는 길에 정을 잊어야 정토 세계에 이를 수 있어요.

삼업일랑 던져버리고 삼보에 정성을 다해 예를 올리세요.

부처님이 계신 법궁에서 모두 만납시다.

(이행천리만허공 귀도정망도정방 삼업투성삼보례 성범동회법왕궁

移行千里滿虛空 歸途情忘到淨邦 三業投誠三寶禮 聖凡同會法王宮)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