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너에게는 분명 죄가 있다. 네 죄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다. 그것은 인생을 낭비한 죄다.”

영화 빠삐용의 한 장면에 나오는 대사다. 무죄임을 항변하던 빠삐용이 재판관의 이 말에 그만 맥이 풀린다. 자신의 죄를 시인한다. 이 장면은 영화 빠삐용을 본 사람들에게 지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

인생을 낭비한 죄, 이 책의 저자 박원자 보살은 빠삐용에서 만난 이 말을 몇 해 전 충주 석종사에서 정진을 하던 중 도반들과 함께 석종사의 선원장이자 한국 선문의 선지식인 혜국 선사로부터 듣는다. 혜국 선사가 빠삐용에 나오는 이 말을 언급하면서 던진 “나는 불교에서 금하는 살생을 저지른 죄보다 인생을 낭비한 죄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라는 한마디에 저자는 여름날 얼음우박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때의 충격이 아마도 ‘인생을 낭비한 죄’라는 제목의 이 책을 출간하게 한 인연이었을 것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 책 내내 이 물음을 던진다. 자신에게 던지고, 또 이 책을 읽을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도 던지는 말이다. 그리고 내리는 결론은 ‘이제부터라도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책에는 26인의 수행자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의 행자시절>이라는 좋은 책을 출간했던 저자인 박원자 씨가 이십여 년 가까이 취재하며 수행자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몇 권의 책을 만들면서 만났던 스님들과 나눈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들려주는 출가와 수행에 관한 이야기에는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롭게 사는 것인가,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한 다양한 대답이 담겨 있다. 한국불교사에 한 획을 그은 큰스님에서부터 스님들 사이에서도 회자될 만큼 독하게 수행하는 은둔 독종수행자까지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는 인생의 주인공인 우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일깨워주며,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지금보다 삶을 더 정성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전해주는 것이다.

고뇌를 화두로 좌절을 희망으로 바꾸는 금과옥조와 같은 교훈들이 저자의 아름답고 힘 있는 필치로 절절하게 드러난다. 내 안에서 무엇이 나를 움직이고 있는지를 먼저 알고, 그것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면,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음을 여러 스승들과의 대화를 통해 저자는 자연스럽데 전달한다.

“영원한 행복은 자기 자신을 확실히 아는 것에 있으며, 그것은 수행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수행은 자신이 누군인가를 수시로 묻는 것입니다. 자신을 아는 것이 확실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수행이란 길을 꾸준히 걸어보세요. 오래하다 보면 틀림없이 들어가는 곳이 있습니다.” -법전 스님(현 조계종 종정).

“인생의 시나리오는 가지고 태어나죠. 보통 사람은 각본대로 연출하고 살다가 갑니다. 그러나 불교는 시나리오를 새로 쓸 수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혹시 여건이 어렵다 하더라도 수행을 하려는 마음만은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얼마나 지극하고 간절하게 하느냐에 따라 쉽게 이뤄질 수 있습니다. 수행이 참으로 내 것이 될 수 있도록, 뼈에 사무치도록 노력해서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무여 스님(축서사)

저자가 만난 선지식들이 공통적으로 내놓는 행복해지는 비결은 간절함과 사무침이다. 수행에 대한 간절함, 삶을 잘 살아야 한다는 사무침이 있으면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저자가 26명의 스승들을 만나면서 얻은 뼈저린 교훈은 아마도 이 책의 제목처럼 지금까지의 ‘인생을 낭비한 죄’를 알았으니 앞으로는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인지는 몰라도 저자는 이 책의 띠지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발췌해 적어 놓았다. 읽어보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잤다. 이제 그 무엇 때문에도 남은 인생을 낭비할 수 없다!”

*저자 박원자는?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인생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했던 스물세 살 때 불교와 처음 만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고 있다. 동국대학교 역경원 역경위원을 역임했으며, 그동안 많은 수행자들을 만나 취재하고 그분들의 삶을 그린 글을 월간 <해인>에 기고했다. ‘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를 슬로건으로 한 인터넷 사이버 도량 금강카페(cafe.daum.net/vajra) 운영자로 활동하며 수행에 대한 글을 쓰고 도반들과 함께 정진하고 있다. 그동안 쓴 글로는 스님들의 행자시절을 엮은 <나의 행자시절>과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의 수행기, 전 종정 혜암 스님의 유고법문집, 비구니 역사의 산증인이라 불리는 인홍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길 찾아 길 떠나다>, 동국제강 창업주이자 이 시대 유마거사로 불린 장경호 거사의 평전 <대원 장경호 거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