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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업을 짓고 있는가

인행 스님 | | 2023-07-24 (월) 06:58

(ⓒ장명확)  



“어떤 것이 바른 견해인가. 보시도 있으며, 재(齋)도 있고 또한 주설도 있으며, 

선악의 업도 있고 선악의 업의 과보도 있으며.”  

<중아함 189경 성도경(聖道經)>   


모든 중생들이 존재하기 위해서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행동하고 말하는 모든 것을 업이라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업의 종류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선업과 악업이다. 


선한 업이라는 것은 나도 좋고 상대방도 좋은 경우이다. 

즉 나와 남이 같이 좋고 만족스러운 경우에는 선업이라 할 수 있다. 


나만 좋고 남은 괴로운 업이라면 이는 악업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부처님은 명확하게 열 가지의 나쁜 업을 말씀하신다.

살생은 나쁜 업이다.

도둑질은 나쁜 업이다. 

사음은 나쁜 업이다. 

거짓말은 나쁜 업이다.

이간질은 나쁜 업이다.

교묘히 속이는 말은 나쁜 업이다.

욕하는 말은 나쁜 업이다. 

탐냄은 나쁜 업이다.

화냄은 나쁜 업이다.

어리석음은 나쁜 업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쁜 업을 하지 않으면 선한 업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선악의 구분을 해 주시는 이유는 

부처님의 본 마음은 중생들의 괴로움을 없애 주시려고 하는데 

이러한 나쁜 업은 중생들을 괴롭게 만들기 때문에 

선악업을 구분해 주셔서 행복을 만들어낼 선업을 짓도록 가르치신다.

   

나쁜 업을 행하면 그러한 나쁜 업의 반작용으로  

인해서 자신에게 비슷한 일이 생긴다. 


살생의 과보로 죽임을 당한다든가 

거짓말의 과보로 속는다든가 

도둑질의 과보로 도둑질을 당한다든가 하는 일이다.


이러한 십악업의 결과 십악업을 원인으로 하는 

업의 반작용 결과는 누구나 자신이 당하기를 원치 않는 결과이다.


다른 생류의 목숨을 끊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지만 

자신의 목숨이 끊기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남이 고생하여서 일 년 또는 수십 년 모은 재물을 순간에 훔쳐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자신이 일 년 또는 평생을 모은 재산을 

누군가가 한순간에 가져가 버린다면 견디기 어려워할 것이다. 

 

선악업인의 과보가 인과법칙의 도리에 따라서 

업의 원인과 비슷한 결과가 일어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검은색의 업에는 검은색의 과보가  

하얀색의 업에는 하얀색의 과보가 나타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선악의 기준을 부정하고 

또 그에 따른 업의 과보를 부정하는 경우가 많다 

업인 과보의 법칙을 망각하거나 거부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원인과 그에 대한 결과가 반드시 

시간적으로 밀접하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살생의 과보로 당장 살생한 사람의 건강이나 목숨이 위험해져야 하는데 

살생업을 지은 사람이 건강히 잘 사는 경우도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살생의 과보를 즉시 받는 경우 역시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호랑이 사냥을 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경우처럼 말이다.  


이처럼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업인과보의 인과법칙에 따라 일어나지만  

업인 과보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아 보이는 많은 경우를 보고 

중생들은 업인과보의 법칙을 믿지 않고 살아간다 


업인에 과보가 따른다는 법칙이 

적용되기도 하고 적용되지 않기도 하다면 법칙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은 업인과보를 법칙이 아니라고 무시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업은 반드시 과보를 받는다. 현세에서 받거나 내세에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시간적으로 업의 결과는 늦춰질 수도 있다고 하신다.   


요즘은 온 지구가 이상 기후와 이로 인한 

수해 산불 바람의 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수십 년 전부터 과학자들이 경고해 왔던 바이다. 

예고한 재난이 닥쳐온 것이다. 

그리고 그 재난의 원인을 만든 것은 

재난을 몸으로 받고 있는 현인류와 그 인류의 조상들이다.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려면 

근본 원인인 기후온난화와 이의 원인인 

탄소 배출을 조장하는 과소비라는 일상적인 업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모든 인류와 생류의 존재를 위태롭게 하는 과소비, 

이는 눈·귀·코·혀·몸을 조금 편하게 만들려는 소박한 업의 결과인 것이다.

자신의 업을 모두가 되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내가 무슨 업을 짓고 있는가를 

선업을 짓는가, 악업을 짓는가 

오늘과 미래의 나와 모든 중생을 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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