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한국불교는 회통, 융합을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한국불교는 선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그 특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통상 한국선은 ‘중국화된 선’의 범주에 속한다고 해도 무방하고, 그중에서도 임제선-간화선의 법맥을 잇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의문이 생긴다.

(중국)선의 초조는 보리달마이다. 따라서 당연히 달마대사의 가르침과 행법이 선종을 관통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다.

한국선은 왜 달마대사의 선, 능가선이 아닐까? 달마로부터 시작된 선은 6조 혜능을 거치면서 큰 변화를 겪었으며, 이후 각각의 특징을 가지는 다양한 분파들을 형성하면서 각기 발전 혹은 소멸해갔다. 그리고 이 와중에 초조 달마의 가르침과 초기 선종의 정신은 사라져버렸다. 따라서 혹은 당연히 후대의 중국선을 받아들인 한국선에서 달마의 가르침을 찾기란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능가경>은 ‘선종의 뿌리’이고, ‘최상승선의 지침서’이며, ‘여래심지의 요문’이다.

달마대사는 2조 혜가에게 <능가경>을 전하면서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이 <능가경> 4권을 너에게 부촉한다. 이 경은 여래심지(如來心地)의 요문(要門)이며, 모든 중생을 개시오입(開示悟入)하게 할 것이니라.” 또한 “내가 보건대 중국에 오직 이 경이 있을 뿐이다. 인자(仁者)가 이에 의지하여 행한다면 스스로 증득證得하고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도 하였다.

송대의 선객 소동파도 <능가경>을 일컬어 “본 경은 앞의 모든 부처님께서 설한 법이며, 미묘제일의 진실료의(眞實了義)인 까닭에 ‘불어심품(佛語心品)’이라고 한다”, “달마조사가 2조에게 부촉하여 말하길 ‘중국에 있는 경교(經敎) 가운데 오직 <능가경> 4권이 인심(印心)할 수 있게 할 것이다’고 한 이래 조사 대대로 이어지며 심법으로 삼았다”라고 밝히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혜가의 제자 10인이 <능가경> 주석서를 저술하였으며, 달마대사도 제자들의 청에 의해 <능가요의>란 책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초기 선종에서 <능가경>은 절대적 중요성을 가졌으며, 따라서 달마 이래의 선종을 ‘능가종(선)’이라 칭하였던 것이다.

원효대사도 <능가경>에 대해 무려 5종의 주석서를 저술하였다고 하니, 그가 능가경을 얼마나 중시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다만 모두 실전되어 아쉬울 뿐이다) 그 저술들이 후대에 전해졌다면 한국불교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능가경>은 중관과 유식 등 거의 모든 교의(敎義)가 곧바로 선지(禪旨)와 선리(禪理)가 되어 자심에서 수증(修證)되도록 자세하고 뚜렷하게 이끌고 있다. 그래서 “교(敎)에 의거하여 종(宗)을 깨닫는다”(<이입사행론>)는 달마선의 뜻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경전이다.

그런데 이렇게 초기 선종의 소의경전이며 그 뿌리가 되는 <능가경>이 후대에는 거의 도외시되고 점점 잊혀져가게 되면서 초기 선종의 선법도 올바로 전승되지 못한 채 왜곡․곡해되어 왔다. 심지어 초기 선법을 열등한 것으로 폄하하기까지 하였다. 이런 인식과 상황 하에서, 선종을 표방하는 한국불교의 강원 과목에 <능가경>이 들어가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능가경>은 4권본, 7권본, 10권본의 세 역본이 전하는데, 이 중 7권본이 맨 나중에 나왔으며, 다른 두 본의 오류나 부족한 부분을 바로잡아 역(譯)한 것이다. 이번에 박건주 씨에 의해 출간된 <능가경 역주>(운주사)는 7권본((대승입능가경>)을 저본으로 하였다. 다만 의미상 다른 두 본이 더 명확할 경우 그에 따랐으며, 티베트본에 대한 일역본(日譯本)도 함께 참조하여 깊이 있고 풍부한 역주본이 되도록 하였다.

경이면서도 논과 같이 세밀한 교의가 치밀하게 펼쳐져 있고, 그 난해함으로 인해 외면받아 왔던 <능가경>의 본 역주본을 통해, 잊혀진 초기 선종의 가르침과 행법의 전모가 올바르게 드러날 것이다.

*역자 원조(元照) 박건주 박사는?

전남 목포 출생. 전남대 사학과, 동 대학원 석사. 성균관대 대학원 사학과 문학박사(동양사). 성균관대, 순천대, 목포대, 조선대에 출강하였고, 현재는 전남대 강사, 동국대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전남대 종교문화연구소와 호남불교문화연구소 연구이사.

저서에 <중국 초기선종 능가선법 연구>, <달마선> 등이, 역서에 <禪과 깨달음: 초기선종 법문 해설>, <集古今佛道論衡>, <능가사자기>, <티베트밀교무상심요법문>, <위없는 깨달음의 길, 금강경>, <하택신회선사 어록>, <북종선법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