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정암사 (4) 

적멸궁

세상에 없는 진리를 찾고자 간절히 수행하던 설산동자는 “모든 것은 덧없이 흘러가니, 태어나 죽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다네(諸行無常 是生滅法).”라는 소리에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다음 게송은 이미 알고 계신 “나고 죽는 그 일마저 사라져버리면, 거기에 고요한 즐거움이 있네(生滅滅已 寂滅爲樂)”라는 구절입니다.

동자는 다음 게송을 듣자마자 깨달음을 얻었고, 적멸의 기쁨을 가진 채 배고픈 나찰에게 자신의 몸을 던집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고, 처음 설법하신 곳은 마갈다국 적멸도량(寂滅道場)입니다. 그곳은 ‘청정함을 갖추었고, 금강과 한량없는 묘한 빛깔의 갖가지 장엄이 그 주위를 둘러쌌다’ 고 쓰였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전각 적멸궁은 태어남과 죽음과 번뇌가 없는 곳이고, 깨달음을 이룬 곳입니다. 그래서 중생들은 이곳을 찾아 부처님을 뵙고, 자신의 흐트러짐을 바로 잡아서 진실한 마음으로 정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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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궁은 막돌 기단에 덤벙주초를 놓았고,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인 팔작지붕 집입니다. 칸 사이가 넓지 않아 작은 전각이지만 전각의 위엄을 드높이려 익공을 놓았고, 기둥에 얹은 창방과 대들보도 굵어 보입니다.

어간에는 두 짝씩 접어 바깥으로 열리는 쌍여닫이문을 달았는데, 가로 길이에 비해 세로가 길어 날씬합니다. 좌우 칸에는 상인방과 중인방 사이에 바깥으로 열리는 광창을 두 짝씩 달았고, 중인방과 하인방 사이는 벽을 쳤습니다. 문살은 출입문과 창 모두에 아무런 치장 없이 촘촘한 정자살로 짰습니다.

단청은 최고급 비단에 들인 어떠한 무늬도 범접할 수 없는 화려한 금단청을 올렸습니다. 모든 서까래 마구리와 부연 착고막이에는 ‘부처님이 계신 곳은 칠보로 된 땅 위에 팔만 사천 개의 연꽃이 있다’는 경전 구절을 보여주려 했는지, 마다마다에 활짝 핀 연꽃을 그렸습니다.

기둥과 벽체부는 팥죽색으로, 창호는 양록색의 가칠단청으로 마감하였는데, 이러한 창방 아래쪽의 단출한 색상이 금단청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열 개의 전각 기둥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게송 열두 구절이 주련으로 걸렸습니다. 

 위도중생고  방편현열반  이실불멸도  상주차설법

 아상주어차  이제신통력  영전도중생  수근이불견

 중견아멸도  광공양사리  함개회연모  이생갈앙심

(爲度衆生故  方便現涅槃  而實不滅度  常住此說法

 我常住於此  以諸神通力  令顚倒衆生  雖近而不見

 衆見我滅度  廣供養舍利  咸皆懷戀慕  而生渴仰心)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수명이 한량없어 멸하지 아니함에도 열반을 나타내었으니

이는 방편일 뿐 실제로는 입멸한 것이 아니고 

항상 이곳에 머무르며 법을 설하고 있느니라

이곳에 머무르며

중생들에게 가지가지 방편으로 미묘한 법을 설하여 

스스로 환희한 마음을 일으키게 하면서도   

내가 자신들의 곁에 있음은 보지 못하게 하느니라

멸하지 않고 항상 있으면 나를 만나기 어렵다는 마음을 내지 아니할 것이기에

나의 멸도를 봄으로써 사리에 널리 공양하게 하고

간절하게 그리워하는 마음을 품게 될 것이니

이는 목마르게 법을 찾고 선근을 심게 하려는 방편이니라

(의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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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련은 열두 개 구(句)로 끝났지만, 경전에는 게송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중생들이 신명을 아끼지 않고 나 보기를 원하면, 그때 영취산(靈鷲山)에서 나와 중생들에게 멸(滅)과 또한 불멸을 나타내어 보이고, 무상법(無上法)을 설할 것이니라’

이곳이 부처님께서 계신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적멸궁 용마루 끝에는 독수리 머리모양을 한 취두(鷲頭) 기와가 올려졌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느 때에는 ‘나 보기를 원한다면 영취산에서 나오겠다’고 하셨고, 어떤 때는 ‘여래라고 하는 것은 어디로부터 온 데가 없고,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라 하시기도 한 때문입니다. 궁 밖에서 취두를 보았는데, 궁 안에 들어오니 불상은 없고, 부처님을 모시는 불단만 조성되었습니다. 불단만 보이는 저 같은 중생도 있지만, 많은 분께서는 부처님의 진신을 뵙고 사리에 공양드릴 것입니다.

불상을 봉안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후불탱화도 걸지 않는 대신, 전각 뒤쪽을 향한 곳에 창을 만들어 금빛의 수마노탑을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불자들은 궁 안에서 수마노탑에 모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향해 경배합니다. 우측에는 붉은 바탕에 금물로 선만 그린 홍탱화가 걸렸는데, 불상이 봉안되지 않았고 후불탱화도 없이 신중탱화만 걸려있어서 유달리 돋보였습니다. 

궁에서는 스님과 불자들의 금강경 염송이 이어졌습니다. 일심으로 정진하는 분들께 기웃거리는 저의 모습이 볼썽사나울까 싶어서 부지런히 절을 올리고 나왔습니다.

적멸궁을 나오면서 ‘사구게 만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준다면 가장 높고 으뜸가는 경지를 성취할 것이고, 이 경전이 있는 곳은 부처님이 계신 것과 같으니라‘ 는 경구(經句)가 떠올랐고, 그곳에서 경전을 염송하는 불자님들이 부러웠습니다.

수마노탑

수마노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탑입니다. 자장스님은 당나라에서 수행하던 중, 범승에게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입으셨던 가사를 받아 신라로 돌아옵니다. 그때 서해 용왕이 스님께 사리탑 건립을 부탁하면서 마노석을 주었고, 바다를 건너온 그 마노석으로 탑을 쌓아서 “수마노탑”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합니다.

수마노탑으로 가는 길은 적멸궁 뒤쪽 급하게 뻗어 내린 산비탈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암반에서 떼어낸 거친 막돌로 쌓은 계단길입니다. 계단 끝에는 수직에 가까운 축대를 쌓아 탑을 세울 수 있을 만큼의 평평한 터를 닦았습니다. 그렇지만 탑을 세우고 남은 땅은 불자 두세 명이 부딪히지 않고 탑돌이를 할 정도의 공간밖에 안 됩니다. 산의 경사가 급하다 보니 평지를 조성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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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노탑은 돌을 잘라내고 다듬어서 벽돌처럼 만든 후 쌓아 올린 모전석탑입니다. 석회석을 반듯하게 자르고 표면을 다듬었는데, 흙을 빚어 구워낸 기와 벽돌보다도 매끈하고 깨끗합니다. 

돌의 색은 옅은 연두색 회색 청색 등 각기 달라서 여러 암반에서 떼어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벽돌의 길이는 한 뼘 반부터 두 뼘 정도로 서로 달라도 두께는 일정했습니다. 길이가 다른 벽돌을 쌓으면서 (두부를 자른 듯) 폭을 같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석회석이 화강암보다 강도가 낮은 때문인지 지대석은 화강암으로 쌓았고, 단이 높아질수록 좁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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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층 지붕돌은 넓어지고 좁아지면서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귀퉁이가 되는 벽돌(전각)은 아래쪽을 살짝 깎아 올려서 한옥의 추녀 모양을 연출했고, 그 자리에 풍경을 달았습니다.

탑의 1층에는 사리를 모신 감실 문을 적멸궁 쪽으로 만들었는데, 인방과 문선을 세우고 그 안쪽에 한 장의 문짝(판석)이 걸렸습니다. 문 중앙에는 세로로 볼록하게 쇠스리를 새겨서 두 짝의 문처럼 보이게 장식했습니다. 

진신사리는 중생들이 법을 찾는 계기가 되고, 선근을 심게 하려는 방편으로 열반을 택하시어 나온 부처님의 분신입니다. 따라서 사리탑에 참배함은 그런 부처님의 큰 뜻을 헤아려 존경하는 예(禮)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를 올림으로써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정진할 것을 다짐하고, 신심을 더욱 굳히게 됩니다. 

수마노탑은 국보로 지정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유물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수마노탑은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을 넘어 부처님 그 자체이고, 부처님의 말씀이며, 가르침 전부를 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일심교

탑돌이를 하고 계단을 내려오며 극락교와 마찬가지로 계곡을 건너는 또 다른 다리를 건넜습니다. 다리의 이름은 “일심교(一心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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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노탑을 향할 때 건넜던 극락교는 준공 시기를 “응화”로 표기하였다고 전번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일심교는 준공 시기를 “불기(佛紀)”로 표기하여 새겨졌습니다(불기 2553년. 서기 2009년). 불기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해를 기원 원년으로 삼는 연도 표기 방법입니다.

극락교와 일심교는 관음전과 문수전 등이 있는 북쪽과 적멸궁과 수마노탑이 있는 남쪽을 오고 가는 다리입니다. 어느 다리는 시작의 뜻을 담았고, 어느 다리는 끝남의 뜻을 담았다는 생각으로 방금 건넌 다리를 다시 돌아봤습니다. 

그리고 방금 보았던 적멸궁 주련으로 걸린 게송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수명이 한량없어 멸하지 아니함에도 열반을 나타내었으니, 이는 방편일 뿐 실제로는 입멸한 것이 아니고 항상 이곳에 머무르며 법을 설하고 있느니라’를 떠올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설법하셨고, 중생 모두가 깨달을 때가 언제까지인지 모를 그때까지 설법해 주실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일이든 시작과 끝이 있다’고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개구리를 보살핀 자장스님의 자비 그리고 공생

다리 바로 옆에 개구리 석상이 놓였고, ‘지구 온난화와 수질오염으로 양서류가 사라지면서 생태계가 흔들린다’는 내용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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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스님께서 정암사보다 먼저 창건하신 통도사에는 자장스님과 개구리에 관한 설화가 있습니다. 

통도사 샘터에서 개구리가 놀고 있기에 겨울에도 살아갈 수 있도록 스님이 손가락으로 암벽에 구멍을 뚫고 넣어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신심이 깊은 불자에게는 금개구리가 보여서, 지금도 ‘누가 보았다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석상을 보면서 자장스님의 자비심을 떠올렸고, 정암사 계곡 근처가 열목어가 살아가는 좋은 환경으로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음을 생각하였습니다.

정암사는 큰 절이 아닙니다. 그러나 큰 뜻이 담겨진 절입니다. 곳곳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남아있고,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절입니다.(끝.)

※ 덧붙이는 글

정암사를 방문하여 찍은 사진을 컴퓨터 장애로 모두 잃었습니다. 할 수 없이 찍었던 사진과 비슷한 사진을 네이버와 구글에서 빌렸습니다. 57회와 이번 58회에 올린 사진을 빌려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