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으로 읽는 불교
“우씨라 향을 찾아 비라나 풀을 파내듯…”
이 학종 2023-02-03 (금) 07:49
‘오유지족(吾唯知足)’을 가훈 삼아 살아가고 있다. 오유지족이 가훈이 된 것은 아주 오래전 결혼주례를 청하러 칠보사로 석주 큰스님을 찾아뵙을 때, “부자 되는 부적 한 장 주마.”라며 직접 써주신 글이 ‘오유지족’이어서였다. 스님의 ‘부적’은 네 글자에 모두 들어가 있는 입구(口)자를 중심에 놓고 네 글자가 좌우상하로 쓰인 일종의 합성글자였다.
이후 거실 벽에 액자로 걸린 이 글자는 우리 집의 가훈이자 삶의 지침이 되었다. 지금까지 빠듯한 삶을 살아오면서도 그런대로 견뎌온 것도 이 부적 덕분일지도 모른다. ‘풍족한 줄 알고 살라’는 가르침이 삶의 일부가 되자, 정말로 부자로 살 수가 있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현재의 조건에 맞춰 살아가다보니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도, 만족도, 즐거움도 제법 느낄 수 있었다. 은퇴하고 귀촌을 한 이후, 주위에 ‘고정수입 없이 산골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에게는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답으로 건넨다. 넉넉지 않은 생활에서도 그에 구속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도(道)를 즐기는 삶, 사실 이것은 옛 선비들의 생활신조이기도 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는 삼계(三界) 중 욕계(欲界)에 해당한다. 욕계는 기본적으로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따라서 욕계 중생은 욕망의 노예가 되어 윤회의 고통을 겪으며 살고 죽기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욕망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세속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다. 이 욕망이 커지고 쌓이면 갈애(渴愛)가 된다.
갈애는 어떤 사람에게 쉽게 일어날까? 붓다는 방일(放逸)하게 지내는 사람에게 갈애는 걷잡을 수 없이 자란다고 말씀하셨다. 알아차림이 부족하고, 사띠 없이 선정도, 통찰도, 길도, 경지도 없이 사는 사람에게 갈애의 넝쿨은 번성하고, 끝내 그를 파멸로 이끈다고 역설하셨다.
갈애를 성장시키는 기반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다. 욕망은 충족이 없다. 충족이 없으므로 저절로 극복되는 일도 없다. 붓다는 욕망의 속성을 나무 열매를 먹고 싶어 하는 원숭이에 비유해 설명하셨다. 열매를 먹기 위해 원숭이는 나뭇가지를 잡고 새로운 열매를 찾아 가지를 튕겨서 다른 나뭇가지를 붙잡는다. 그렇게 원숭이는 온 숲을 떠다닌다. 여기서 원숭이가 붙잡을 나뭇가지가 없어서 주저앉는 경우는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상을 얻지 못해 갈애가 끊어졌다’는 상태는 존재할 수가 없다. 스스로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때까지 갈애는 멈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갈애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은 원숭이가 나무와 나무를 옮겨 다니듯 이 생에서 저 생으로 떠다닌다. 그 생이 4악도(四惡道)일 것임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수행은 갈애를 줄이고 줄여 마침내 극복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수행은 쉬울 수가 없다. 수행은 참고 견디는 것이다. 또한 수행으로 갈애를 극복한다는 것은 열반으로 향하는 길과 다르지 않다.
비라나(bīraṇaṃ)라는 풀이 있다. 이 풀은 비를 맞으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자란다. <법구경-담마파다> ‘갈애의 품’에서 붓다는 비라나 풀을 비유로 들어 갈애의 위험성을 이렇게 설파하셨다.
세상에 저열한 뒤얽힌 갈애에
정복당한 사람,
비를 맞은 비라나 풀이 자라듯,
그에게 근심이 자란다.
여섯 가지 출구가 있는 갈애는 유치하거나 어리석기 때문에 저열하다고 불리고, 독이 든 음식과 같고, 독이 든 꽃과 열매와 같고, 형상·소리·냄새·맛·감촉·사실에 얽혀있기 때문에 ‘위쌋티까(visattikā)’라고 불린다. 위쌋티까는 ‘뒤얽히거나 독이 든’이란 의미의 말이다. 이런 갈애에 정복당한 사람에게는 숲속에서 거듭해 떨어지는 비를 맞고 비라나 풀이 자라듯, 윤회의 뿌리가 되는 슬픔이 자란다는 게송이다. 붓다는 이어 수행승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나는 그대들에게 말한다.
‘여기 모여 있는 그대들에게 행복이 있기를!
우씨라 향을 찾아 비라나 풀을 파내듯
갈애의 뿌리를 파내라.’
우씨라(usīra)는 비라나의 다른 이름이다. 갠지스 강 유역에서 자생하는 풀로, 우씨라의 뿌리는 인도에서는 예로부터 열병 치료약으로 사용됐다. 특히 향기가 좋고 품질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추출된 오일은 평안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비라나 향은 촉촉함을 머금은 흙 내음과 같은 분위기의 향을 제공해 편안한 느낌을 주어 당시 인도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은 것 같다. 그래서 향채(香菜)·향릉(香菱)이라 번역되었는데, 특히 뿌리에 집중적으로 향기가 배어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비라나, 즉 우씨라를 대표적 향기로운 풀(A fragrant grass)로 번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붓다께서는 사람들이 향기를 찾아 비라나 풀의 뿌리를 파내는 것에 비유해 수행승들에게 갈애의 뿌리를 파내라고 역설하셨다. 또 여섯 가지 감관을 지닌 갈애의 뿌리는 오직 거룩한 길, 사성제(四聖諦)의 실천으로 파낼 수 있다고 일관되게 가르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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