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를 위하여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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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란 어디에 있는가. 

이웃의 주름살 하나도 낯익고, 

오솔길의 돌부리조차 눈에 훤한. 

내 눈앞에 보이는 

저 마을이 정말로 내 고향인가. 

위험한 곳이다. 

촘촘 쇠 그물이 둘러 처진 곳이다. 

솔밭도 봉우리도, 

구름도 바람도 

마을의 정중앙 돌다리 밑 

미나리꽝 하나를 통과하지 못하는 

철면(鐵面)이다.  

내가 친 진면목(眞面目)이다.

 여섯 살 아들이 있었다. 스물다섯 살의 어머니가 있었다. 산촌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가난 때문에 나들이옷 한 번 해 입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날 처음으로 약초를 캐 팔아 모은 돈으로 아들에게 새 옷과 신발을 사주었고, 자신은 옥색 치마저고리 차림이었다. 어머니는 고향 잣나무 골을 떠나 외설리에 온 지 7년 만에 찾아가는 가슴 설레는 친정 나들이였다. 그러나 그들 모자가 가는 길에 눈이 내렸다.

 눈은 자꾸 쌓였다. 사람들은 몇 년 만에 있는 폭설이라고 입을 모았다. 곳곳에서 눈사태가 났다. 그러나 어머니는 잣나무 골행을 주저할 수 없었다. 어머니와 아들은 천신만고 끝에 알량 고개를 넘었다. 눈발은 그들 모자가 옥산으로 가는 알량 고개를 넘었을 때도 계속 날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잣나무 골로 가기 위해서는 알량 고개보다 몇 배나 높은 칠팔령을 넘어야 했다. 그곳을 넘어가면 어머니의 친정집이 있었다. 어머니에게는 4년 만에 대하는 친정어머니가 있었고, 중풍으로 누워 있는 하나밖에 없는 오라버니가 있었다. 장녀였던 어머니는 오라버니를 살리기 위해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을 전달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었다. 알량 고개를 넘은 모자는 칠팔령 밑 내서면 개운리, 속칭 안개 골로 향했다.

 어머니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안개 골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 계속 내리는 눈발 때문에 저녁 짓느라 토해내는 산촌의 굴뚝 연기도 하늘 높이 피어오르지 못하고 납작한 집들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눈은 계속해서 내렸다. 도저히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병석에 누운 오라버니에게 약 한 첩이라도 빨리 쓰고 싶었다. 어머니는 전에도 그렇게 눈 내리는 날 여러 번 칠팔령을 넘어본 경험이 있었다. 미룰 수가 없었다. 구름도 숨이 가빠 쉬어간다는 칠팔령을 향해 발을 떼었다. 

 그러나 어두워지는 칠팔령의 고갯길은 눈빛 때문에 시야는 흐리지 않았지만, 등에 업은 어린 아들로 하여 속도가 붙지 않았다. 혼자 칠팔령을 넘을 때보다 몇 배나 힘이 들었다. 앞에서 몰아치는 눈발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것도 힘겨웠다. 더구나 때때로 몰아치는 눈보라 때문에 평소에 낯익었던 언덕이나 골짜기의 높이나 깊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도록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되돌아갈 마음을 내지 못했다. 시동생 집이 근처에 있었다. 웬만하면 시동생 집에서 하룻밤 묵어갈 수도 있었으나, 빨리 친정집으로 가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만 있었다. 어머님은 얼마나 늙으셨을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업고 칠팔령을 오르는 어머니의 마음은 한없이 설레고 두근거렸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라곤 오로지 늙으신 어머님과 병석에 누운 오라버니 생각뿐이었다. 어머니는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산길을 오를 때는 아들을 등에 업고 마치 산짐승처럼 기었다. 그러나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가기를 수차례나 반복했다. 자정이 넘었을 때야 어머니와 아들은 가까스로 칠팔령을 넘었다. 그러나 허기와 추위로 지친 어머니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낼 수 없었다. 정신이 먼 눈발처럼 아득해지자 졸음을 쫓기 위해 오른 손등을 물어뜯었다. 조금 가다가 왼 손등도 물어뜯었다. 손등에서 피가 흘러 눈을 적셨다. 자꾸만 몽롱해져가는 의식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드디어는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손가락은 마치 얼음과 같다. 이미 감각이 없었다.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느새 죽음의 문턱까지 와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아들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검은 외투를 벗어 아들을 몸을 꽁꽁 싸맸다. 버선도 벗어 아들의 발을 싸맸다. 있는 힘을 다해 아들을 껴안았다. 자신의 모든 체온으로 아들에게 다가오는 추위를 막아보려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팔 힘은 차츰 맥없이 풀리고 자신도 모르게 아들을 배 위에 올려놓은 채 눈 위에 드러눕고 말았다. 눈발은 초저녁보다 다소 성기게 뿌렸으나 여전히 어머니의 얼굴을 때리며 떨어졌다. 아들은 엄마가 잠시 잠이 든 줄로 생각했다. 눈은 내리고 또 내렸다. 아들은 고요한 산속이 무서웠다.

 “엄마아!”

 “엄마아!”

 아들이 그렇게 몇 번을 소리치자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 아들의 이마를 힘껏 깨물었다. 아들은 아픈 이마를 어루만지다가 어머니의 배 위에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잣나무 골의 한 청년이 칠팔령을 넘어가려고 집을 나섰다. 눈은 정강이 이상 내렸으나 새벽부터 눈발은 멎고 맑고 차가운 햇빛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백설 위에 검정 천 조각들과 그 아래 바람에 날리는 여인의 머리칼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눈밭에 나타나서 사람을 홀리는 유령인 듯싶어 도망치듯 오던 길을 향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서면 지서에 신고했다. 즉시 경찰관이 달려왔다. 그러나 뒤엉킨 어머니와 아들의 몸은 얼음덩어리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가까이 다가갔을 때 어머니의 배 위에서 잠이 들었던 아들이 고개를 들었다.

 “엄마, 이제 일어나.”

 “엄마, 빨리 가아!”

 아들은 어머니를 흔들며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의 따스한 체온으로 아들은 살아 있었던 것이다. 눈보라 속에서 겉옷과 버선을 벗어 아들에게 준 어머니는 눈을 하늘로 치켜뜬 채 얼어 죽은 것이다. 아들의 손등과 이마에는 어머니가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아들을 살리려고 물어뜯은 상처가 수없이 나 있었다. 어머니도 스스로 의식을 회복하기 위해 손가락을 깨물어 상처가 심했고, 오른쪽 엄지손가락은 잘려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난생처음 새로 산 옥색 치마저고리와 검은색 두루마기에는 고드름까지 주렁주렁 매달려 간밤의 매서운 추위를 실감케 하였다. 어머니가 숨진 곳은 조금만 더 가면 칠팔령 밑 첫 집이 나오며, 다시 조금만 더 가면 어머니가 그렇게 그리던 친정집이어서 더욱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게 했다.

 여기 눈보라 몰아치던 칠팔령 고갯길, 어린 아들을 살리고 

 숨져간 거룩한 어머니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

 어머니가 숨진 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신작로에 어머니를 기리는 표목이 세워졌다. 물론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 어린 아들이 바로 나고, 그 눈보라 속에 하늘로 올라간 어머니가 내 어머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