蓮이를 위하여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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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불고 있다. 일찍 떨어진 낙엽들이 산 전체를 떠돌고 있다.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들, 그 사이로 스며든 푸른 이끼와 햇빛. 천지사방으로 금이 간 바위 하나. 그 바위 너머 오리나무숲에 서는 밤마다 소쩍새가 운다. 전염병처럼 떠도는 굴참나무 숲가의 나뭇잎들, 안개 낀 계곡에서 들리는 떠나는 물들의 아우성. 말을 할 줄 아는 짐승의 침묵……. 

 지난 가을장마 때 죄 없이 벼락을 맞은 개암나무, 수를 헤일 수없이 열려버린 개암나무의 열매들이 후드둑이며 땅으로 떨어지는 밤마다 은하수 꿈을 꾸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 이곳에서 혼자 기쁘게 늙어 가는 꿈을. 밀밭 언덕, 푸른 보리밭과 잡목 숲, 동구 밖 미루나무와 색색의 모자들, 고사리 손……, 아이들과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갈 수 없는 마을. 

 그래서 하늘의 이야기를, 아니면 땅의 이야기를, 아니면 숲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충실한 나의 전령사들, 산새들에게 일과를 맡겼다. 하루도 어김없이 내 곁을 지켜주는 그들의 고마움에 난 새벽마다 떠지지 않는 눈을 뜨곤 하였다. 안경의 고마움. 이 안경은 아내가 마련해 주었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아침노을. 저녁노을. 누구는 이 아침과 저녁의 노을을 한자리에서 열두 번을 바라볼 수 있는 그곳이 바로 자신이 가고 싶은 극락이라고 했지만, 청리산의 아침노을이 하루에 두 번만 있다고 해도 나는 이곳을 극락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곳의 아침저녁은 단 한 번, 그리고 그것도 짧은 순간에 끝이 나고 만다. 

 사라지는 것의 아름다움과 새로 태어나는 것의 아름다움, 내 일과는 아침과 저녁에 찾아오는 이 반가운 ‘노을색시’ 와의 만남이 전부다. 매양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는 이 함초롬한 색시의 수줍은 얼굴과 몸매를 감상하는 것이 유일한 보람이다. 밤이면 아침을 기다렸고, 한낮이면 저녁을 기다린다. 이 세상에서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편으로 불행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운 좋게도, 아니면 운 나쁘게도 더 자랄 수 없이 늙어버린 개암나무. 그 개암나무 사이로 바라다보이는 나의 마을 우리 집……. 멀리 마을이 바라다보이는 전나무 숲길 옆으로는 노오란 들국화 한 철, 피리소리 같은 김천행의 기적소리. 밤이면 밤마다 나를 미치게 하는 경북선의 기적소리. 멍청한 눈물……. 산길보다 가늘게 모락모락 연기가 오르는 초가 위로 황톳빛 서해를 건너온 잠자리 떼들과 계곡 밑 때까치들의 군무. 휘날리는 머리칼. 

혼자 자리에 들고, 혼자 일어나야 하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스스로 이부자리를 깔고, 개어야 하는 쓸쓸함, 그 쓸쓸함을 이기기 위해 눈을 떴다. 불안해서도 아니고, 불편해서도 아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아랫마을을 청산하고, 알 수 없는 병이 내 몸을 찾아왔을 때 나는 비로소 귀를 열 수 있었다. 숲속의 벌레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었고, 청리산 언덕을 밟고 가는 한가로운 해님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알았다. 함께 자리에 들고, 일어나야 되는 것은 얼마나 더 슬픈 일인가. 서로의 이부자리를 깔고, 개어야 하는 쓸쓸함. 

 천 리 밖, 

 만 리 밖의 구름. 

 천 리 밖, 

 만 리 밖의 별들. 

 울고 있는 새의 슬픔, 

 혹은 기쁨. 

 피었다가 지는 꽃의 슬픔, 

 혹은 기쁨. 

 나는 새벽에 일어나면 나날이 야위어 가는 개암나무 그늘 아래를 서성거린다. 움직이지 못하는 생명, 그러나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생명, 땅에 뿌리를 박고 하늘을 향해 숨을 쉬는 정물 옆에서 나는 세상의 끝을 보고 있다. 내가 저와 같은 정물일 수 있다면……. 그러나 나는 개암나무 밑에서 엉뚱하게도 개암나무 가지를 잡고 흔든다. 나는 더 이상 정물일 수 없다. 

차고 맑은 날이 계속되고 있다. 해 질 녘이면 이곳저곳에서 얼굴도 모르는 것들이 울고 있다. 가는 빛이 아쉬워 울고 있는 그것들이 부럽다. 난 소리 내어 울 수도 없다. 마지막에 울지 못하는 목숨들의 슬픔을 알고 있다. 

경묵이는 내가 불쌍한 모양이다. 돌쟁이 영감에게 『동몽선습』을 배우던 시절부터 깨알 같은 내 글씨를 두고 무척이나 놀렸다. 경묵이의 글씨는 항상 함지박만큼 크다. 그래서인지 성격도 확연 다르다. 그러나 그는 내 꽁생원 기질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

 “또 뭘 쓰누?”

 “글쎄.”

 “또 무슨 농사 일기?”

 “농사를 지어야 농사 일기를 쓰지. 다른 사람이 쓴 거 내가 다시 한번 써보는 거지. 그거 아주 재미있거든.”

 “팔자다.”

 “다 써보고 싶은데, 쑥은 언제 나서 언제 죽고, 엉겅퀴는 언제 꽃이 피고 언제 열매를 맺는지. 저 앞 쪽 원추리 좀 봐. 온 산 온 들이 빈 공간 없이 꽉 채워졌어. 흐흐흐!”

 “이 한 가을에 봄꽃들이 피어?”

 어이가 없는지 픽 웃는다. 나도 웃는다.

 “난 저 산언덕을 볼 때마다 수많은 나무들과 꽃으로 뒤덮인 그날을 생각하지.”

 “자넨 좋겠네. 늘 그런 황당무계한 꿈을 갖고 있으니까.”

 “이 사람, 절대 허황한 꿈이 아니야. 앞으로 우리를 살찌게 하는 것은 바로 저것들이야. 길을 넓히고, 집을 새로 짓고, 수로를 따로 정리하고. 그러나 소리 나는 것들은 우리를 복되게 해 주지 못해. 말 없는 저것들이 늘 우리들 편이지.”

 “다 떠나고 있어. 다 떠나!”

 “서울로?”

 “글쎄. 이러다간 조만간 마을이 텅텅 빌지도 몰라. 한 집 두 집, 마른 논에 물 빠지듯 모두 달아나고 있어. 누가 자네 얘기 들으면 배꼽을 삼십 리쯤 늘어놓고 웃을걸. 흐흐흐!”

 “그게 아주 나쁜 건 아니야. 시일이 지나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겠지.”

 “농사를 짓는 내가 세월을 잊을 때가 있어. 흐흐! 어떤 강태공이 매일 마주 앉아 있는 맞은편의 산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말처럼. 그에게는 수면 위에 솟은 찌밖에 보이지 않았던 거야. 지금 내가 그래. 그렇다고 특별히 건사해야 할 식솔도 없는데…….”

 경묵이가 거짓말을 한다. 갓난쟁이 내 아들에 대해서는 영영 이야기하지 않을 모양이다. 하기야 내가 내 아들의 존재를 경묵이를 통해 확인한다면……. 나도 경묵이의 판단을 믿는다.

 “무슨 소리, 나 하나 건사하는 게 열 식구 건사하는 것보다 힘들걸.”

 능청을 뜬다. 그러나 제 목소리가 나지 않는다. 

 “줄줄이 새끼가 딸린 다른 집들이야 말해 뭐해.”

 “일본 놈만 물러가면 저절로 도솔극락이 될 줄 알았지. 흐흐! 우선 부역을 안 해도 되고, 공출을 안 해도 되고, 그렇다고 특별히 시달림 받을 일도 없고, 그저 해방만 되면 안 먹고 안자도 즐거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 난 실망하지 않네.”

 “자네 농사지어 봤나?”

 경묵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다. 그렇지만 고개를 떨어뜨리지 않았다. 

 “직접 농사를 지었다면 십중팔구 흙을 파는 기쁨을 몰랐겠지. 자네와 달리 난 이곳에 있었지만 항상 구경만 했어. 그렇지만 이제 땅을 팔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고통도 감내할 자신이 있어.” 

 경묵이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그런데 자꾸 사라지고 있어.”

 “무슨 소리야?”

 “땔감으로 그 큰 소나무 참나무를 몽땅 베어버리니…….”

 “그게 큰일이라는 소린가?”

 “이제 머지않아 마을 아궁이들이 청리산을 다 파먹고 말 거야. 저기 봐 대공 골에 큰 나무들이 있나?”

 “그렇다고 얼어 죽을 수는 없잖아?”

 “다른 방도를 찾아야지.”

 “지금 나무 걱정하고 있나? 자네 얼굴 좀 봐.”

 “한번 베어버리면 끝이야. 일본 놈 있을 때도 저렇게 하지는 않았는데…….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어.”

 그러나 실상 세상이 거꾸로 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얼마간의 우여곡절은 있지만 세상은 언제나 똑바로만 가고 있다. 우습게도 난 세상이 똑바로 가는데 일조하지 못했다. 오히려 똑바로 가고자 하는 순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