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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의 마음챙김 행복1

정찬주 | | 2022-11-16 (수) 06:55

                            상생은 자연의 섭리다 


                                                         정찬주(소설가)



삽화 정윤경 



 내 산중처소를 찾는 손님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절골 마을 이장 황씨, 운주사 와불을 십여 년째 그리고 있는 화가, 봉갑사와 쌍봉사 주지스님, 시인, 동화작가, 떡 방앗간 주인 등 여러 직종의 사람들이 온다. 최근에는 내 고향인 보성군 복내면에 사는 두 분이 산방(山房)에 들러 얘기하고 갔다. 

 나는 누구에게나 차를 대접한다. 차 마시는 태도를 보면 대충 그 사람의 인품을 짐작할 수 있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맑고 향기로운 차의 성품을 닮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손님에게는 반가운 마음이 들어 차를 서너 잔 이상 권한다. 내 고향 마을에서 온 두 분도 겸손하게 차를 여러 잔 마셨다. 

 지방공무원의 고뇌를 헤아려볼 수 있는 자리였다. 두 분 중에 한 분을 통해서 군청이 필요한 서류나 발급하는 장소가 아니라 군민의 행복과 문화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자체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읍에 문학관과 음악당을 조성하는 데 애를 썼으며, 군의 문화축제 이름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인 그분의 소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의에서 다수가 반대했지만 그분이 고집한 문화제 이름이 현수막에 쓰여 있는 것을 보고 당시 지자체장이 ‘목을 따버리겠다’고 화를 냈다고 하지만 그분의 목은 아직 건재했다. 

 나는 솔직히 언제 투표했는지도 잊어버렸지만 군민들 사이에 퍼진 불신의 뿌리가 지난 선거에 기인함을 알고 몹시 놀랐다. 내가 사는 군만의 일도 아니었다. 국민을 상대로 정치하는 중앙 무대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선거는 오래전에 끝났지만 긴장구도는 여전하고 백안시하는 관계가 황당하게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선거를 축제로 바꿀 수는 없는지 제도 자체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 사사건건 진영끼리 싸우는 꼴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지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내 산방에 오는 손님들 중에도 진영과 이념에 사로잡혀 얘기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 나는 그런 분들에게는 나이 든 인생 선배로서 쓴소리를 좀 해왔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동조하는 사람만 가려보지 말고 부담스럽더라도 반대자를 인정하라고 충고했다. 내 산방에서 만나 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 전남대 의대를 정년퇴직한 미생물학자 정선식 박사의 말을 빌렸다.

 의학자들은 병균을 죽이는 항생제를 한때는 전지전능한 마법의 탄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 균들은 항생제의 강력한 공격에도 살아남았고, 내성이 키워진 그 균들의 독성은 치명적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 박사는 프랑스에서 귀국한 이후부터 25년째 균을 죽이기보다는 균을 달래서 독성을 순화시키며 공생하는 쪽으로 연구를 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해로운 균이나 이로운 균이나 생명의 가치는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고도 한다. 

 나는 두 손님이 간 뒤, 내 얘기도 할 걸 하고 아쉬워했다. 미생물만 얘기하다가 정작 어느 해 여름 지네에게 시달린 내 경험을 들려주지 못했던 것이다. 집 밖에서 가끔 보았던 지네가 어느새 문틈으로 들어와 밤이 되면 나를 물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지네를 볼 때마다 살충제 같은 약을 뿌려 살생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네도 살고 나도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냈다. 나의 이웃인 쌍봉다원의 주인이 자신의 경험이라며 “지네를 죽이면 더 많은 지네가 나타난다.”고 충고한 적도 있으므로 야행성의 지네를 집게로 집어서 마당에 놓아주는 방식으로 타협했다. 지네가 동면에 든 겨울이 되면 그 효과를 검증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밤중에도 두 다리를 쭉 편 채 잠을 잔다. 나를 오싹케 했던 지네지만 내 집 마당에서 나와 공생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진 덕분이다.

 현재까지 우리 입속에서 발견된 미생물은 750여 개라고 한다. 경이롭게도 입속의 미생물들은 자기 자리에서 옆 공간을 탐하지 않고 조화롭게 살고 있다고 한다. 현미경에서만 볼 수 있는 작은 미생물들도 상생(相生)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은 그러지 못한지 불가사의하기만 하다. 오늘도 전투를 치르듯 임전무퇴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칭 타칭 지도자들을 보면 더욱 안타깝고 답답하다. 노자의 스승 상용(商容)이 자신의 빠진 이와 혀를 보이며 노자에게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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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화엄 2022-11-16 15: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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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뉴스를 보지 않은 지가 오래이다, 그런데도 다른 경로를 통해 위정자들의 언행을 듣게 된다. 국민의 대표자라는 자들이 어느 단체나 정말 실망스럽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요즘 두 분 백낙청선생님과 최동석선생님의 유트브를 통해 강의를 듣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는다.
달마아리랑 2022-11-19 21: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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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한 삽화가 잔잔한 성찰의
울림을 주는 글과 어울려
상생의 이치를 음미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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