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길을 인도하는 길잡이

                                                          정찬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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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정윤경 

 마중물 생각

 가야산 해인사 원각 방장스님을 뵀다. 용건은 아내의 도예전이 1주일 동안 서울 인사동에 소재한 갤러리 마루아트센터 신관 1층에서 열린다고 알려드리기 위해서였다. 도예전의 주제는 '연꽃의 빛'이다. 전화로 말씀드릴 수도 있으나 그건 결례라는 생각이 들어 직접 찾아가 친견했다. 방장스님은 원당암의 둥그런 식탁에서 점심공양을 함께해 주셨고, 식후에는 퇴설당 다실로 옮겨 오래된 보이차를 직접 우려주시면서 격려해 주셨다. 

 방장스님을 뵐 때마다 나는 자비무적(慈悲無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곤 한다. 동행해 준 각안스님도 성품이 자애로운 분이다. 두 분은 혜암스님의 제자로서 사형사제 간이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자비를 이길 자는 없지 않을까. 방장스님은 당신이 합격하면 누군가가 불합격할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대학입시를 포기하신 분이고, 각안스님은 고등학교 사춘기 시절 스님인 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해 출가하신 분이다. <삼국유사>에나 나올 법한 희유한 일화이다. 자비 앞에서는 총칼도, 권력도, 지식도, 부(富)도 햇살에 녹아버리는 봄눈(春雪) 같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방장스님은 당신이 계시는 퇴설당 입구에 차단기를 설치해 불편하다고 하소연하신다. 무례한 관광객 때문에 절 소임자가 차단기를 설치해 주었다고 하지만 정작 손님이 찾아오면 나가서 차단기를 올려야 하니 번거롭다고 하신다. 부처님 당시에 사원은 어느 곳이나 해방구였다. 절 경내에 금지구역을 설정하는 것은 내 생각에도 조금 문제가 있다고 느껴진다. 

 방장스님께서 도예전을 갖게 될 아내에게 격려를 하신다. 직접 가지 못하지만 도예전이 원만하게 끝나기를 바란다고 거듭 말씀하신다. 아내가 스님의 덕담을 듣고 용기를 얻은 것 같다. 방장스님의 자비로운 말씀에 나까지 마음이 충만해진다. 자비가 무엇인지 다시 절감한다. 퇴설당을 나서는 순간 빗방울이 쏟아졌다. 내 산방으로 돌아오는 내내 차창에 빗방울이 흘렀다. 내 가슴을 촉촉하게 적셨다. 해인사의 법향(法香)이 이불재에 도착한 아직까지도 내 영혼을 맑게 헹구어 주고 있다.

 부처님 말씀과 침묵

한결같은 마음으로 방일하지 마라. 

게으르고 나태한 마음일랑 원수와 도둑을 멀리하듯 하라. 

여래의 가르침은 지극한 것이니 너희들은 부지런히 행해야 한다. 

산 속이나 늪 가나 나무 밑에서, 

혹은 고요한 방에 한가히 있을 때, 들은 법을 잘 생각해서 

잃어버리지 말고 스스로 힘써 부지런히 수행하라. 

아무것도 해놓은 일 없이 헛되이 죽으면 

뒷날 반드시 뉘우침이 클 것이다. 

나는 의사와 같아 병을 알고 약을 말하는 것이니, 

먹고 안 먹는 것은 의사의 허물이 아니다. 

나는 길잡이와 같아 좋은 길로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니, 

듣고서 가지 않더라도 그것은 길잡이의 허물이 아니다.

                                                   ― 『유교경遺敎經』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익을 구하기 때문에 번뇌도 많지만, 

욕심이 적은 사람은 이익을 구하지 않아 근심 걱정이 없다. 

욕심을 적게 하기 위해서라도 힘써 닦아야 할 텐데, 

하물며 그것이 온갖 공덕을 낳게 함에 있어 서랴. 

욕심이 적은 사람은 남의 마음을 사기 위해 아첨하지 않고 

모든 감관에 이끌리지 않는다.

또 욕심을 없애려는 사람은 마음이 편안해서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고, 하는 일에 여유가 있어 부족함이 없다. 

열반의 경지에 들게 되는 이것을 가리켜 소욕(小欲)이라 한다.

만약 모든 고뇌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넉넉함을 아는 것은 부유하고 즐거우며 안온하다. 

그런 사람은 비록 맨땅 위에 누워 있을지라도 편안하고 즐겁다. 

그러나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설사 천상에 있을지라도 흡족하지 않을 것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한듯하지만 사실은 가난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한듯하지만 사실은 부유하다. 

만족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오욕(五欲)에 이끌려 

만족을 아는 사람들이 불쌍하게 여긴다. 

만족을 아는 것을 가리켜 지족(知足)이라 한다.

                                                    ― 『유교경遺敎經』

 갈무리 생각

 가을비가 원왕생 원왕생 내리고 있다. 벌써 단풍이 든 이파리도 보인다. 단풍이란 오는 가을의 훈장이 아니라 가는 여름의 잔해인지도 모르겠다. 단풍 이파리 하나에서 생성과 소멸이라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도리를 본다.

 비가 오면 아궁이가 축축해지기 때문에 군불을 지펴줘야 한다. 그래야 방바닥이 고실고실해진다. 둘째 딸이 와서 머무는 동안 그림을 그리곤 했던 사랑방 무염산방(無染山房)이다. 무염산방 글씨는 법정스님 친필인데, 낙관은 없다. 방 밖에 거는 편액에 낙관을 찍는 것은 자기 글씨 자랑하는 짓이라며 말씀하신바 칼날 같은 스님의 자기 절제를 다시금 느낀다. 

 수행이란 자기를 정련(精練)하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고온의 장작가마 속에서 도자기 기물들이 환골탈태하듯. 선객들이 암자나 선방에서 치열한 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듯. 붉은 꽃무릇이 가을에 오겠다는 나와 했던 약속대로 고개를 쑥 내민 이른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