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아난다를 위로한 부처님

                                                           정찬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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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정윤경

 마중물 생각

 사랑채인 무염산방은 아궁이가 있는 5평 크기의 작은 집이다. 폭우가 쏟아지면 아궁이에 빗물이 스며들어 찬다. 불일암도  장마철만 되면 아궁이에 물이 찬다고 생전의 법정스님께서 애쓰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물이 차는 족족 퍼냈으나 나중에는 물은 찰 만큼  차면 더 이상 불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내버려 두었다고 말씀하셨다. 번뇌 망상도 아궁이에 차오르는 물 같은 것일까?

 나도 산중생활 초보 때는 소형 양수기를 구입해서 설치하는 등 소란을 피웠으나 지금은 느긋해졌다. 다만 방이 눅눅해질까 봐 선제적으로 아궁이에 군불을 한번 지필뿐이다. 복숭아 빈 박스 같은 것으로 군불을 피우고 나니 빗속의 연기가 스멀스멀 꼼지락거리며 자못 선경(仙景)을 연출한다. 

 사랑방에는 나의 스승 법정스님 사진이 모셔져 있다. 제자로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행복지수 1위라는 부탄에 가서 속으로 놀란 것이 하나 있다. 국민 모두가 스님을 한 분씩 스승으로 모시고 산다는 것이었다. 스승이 없다고 하는 시대에 부탄만큼은 예외였다. 이런 사실도 그들에게 행복지수를 높여준 요소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국(佛國)이 서방정토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부처님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바로 그 자리가 불국토일 것이다.

  부처님 말씀과 침묵

 아난다는 살라나무 숲 저편에 있는 작은 정사로 가 몸을 숨겼다. 자신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다른 비구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부처님의 여러 제자들에게 자신의 우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아난다는 비탄에 빠진 채 중얼거렸다.

 ‘아! 나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고, 성취해야 할 것이 많은데 자애로운 부처님께서 지금 가시려 하다니!’

 아난다는 아무도 정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고리를 잡고 흐느끼다가 잠시 후에는 소리 내어 울었다. 울음소리가 안으로 삼켜지지 않았다.

 그때 부처님은 머리맡에 아난다가 없자 허전해했다. 자신의 그림자가 갑자기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부처님은 감았던 눈을 뜨고 합장한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여러 비구들을 향해 물었다.

 “비구들이여, 아난다가 보이지 않는구나.”

 그제야 한 비구가 아난다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부처님 앞에는 마하깟사빠만 보이지 않을 뿐, 부처님에게 아라한과를 얻은 제자들과 한 무리의 비구들이 모두 와 있었다. 그들 중에는 슬픈 얼굴로 부처님의 열반을 기다리고 있는 비구와 비구니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선정에 들어 슬픔을 이겨내고 있었다. 잠시 후 한 비구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 비구는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려 하는 것에 슬픔을 참지 못하고 잠시 자리를 피해 울고 있습니다.”

 “어디 있느냐?”

 “정사로 가 문고리를 부여잡고 울고 있습니다.”

 “비구여, 지금 아난다가 울고 있는 정사로 가서 여래가 아난다를 부른다고 전하여라.”

 한 비구가 즉시 아난다가 있는 정사로 갔다. 할 수 없이 비구는 문밖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아난다 비구여, 세존께서 부르십니다. 어서 나와 세존께 가보시오.” 

 문을 열고 나오는 아난다의 뺨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막 떠오른 보름달빛에 뺨이 번들거렸다. 살라나무 숲 위로 뜬 보름달이 침통한 표정으로 아난다를 내려다보았다. 공기는 벌써 밤안개에 젖어 촉촉했다. 아난다는 침통한 보름달을 보면서 부처님이 누워 있는 살라나무 숲으로 돌아왔다. 아난다가 부처님의 머리맡에 소리 없이 앉자 부처님이 말했다.

 “아난다여, 너는 여래의 열반을 한탄하거나 슬퍼해서는 안 되느니라. 아난다여, 여래가 항상 말하지 않았더냐. 아무리 사랑하고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침내는 헤어져야 할 때가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것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 아난다여,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생로병사를 영원히 피할 수는 없으니라. 헤어지는 것이 슬프고 안타까워 ‘헤어지지 말자’고 만류하는 것은 순리에 맞지 않는 일이니라.

 아난다여, 너는 참으로 오랫동안 사려 깊은 행동으로 여래를 옆에서 도왔고 무슨 일이든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나를 시봉하였느니라. 아난다여, 너는 참으로 많은 복덕을 지었느니라. 앞으로 여래가 없더라도 방일하지 말도 부지런히 정진하여 번뇌 없는 경지에 빨리 도달함이 좋으리라.”

 아난다는 입술을 깨물었다. 부처님이 55세가 되었을 때에 만나 25년 동안 시봉하였지만 아직도 자신은 아라한과를 얻지 못하고 ‘번뇌 없는 경지’에 오르지 못했던 것이다. 부처님의 법문을 누구보다 많이 들었다고 자만하여 방일에 빠져 힘써 정진하지 않은 탓이었다. 부처님은 아난다로부터 그러한 면을 보았기 때문에 ‘방일하지 말 것’과 ‘부지런히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아난다는 슬픈 감정과 자책의 감정이 뒤엉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 소설 『굿바이 붓다』,『대반열반경』

 갈무리 생각

 입추가 2주일 지났다. 낮에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지만 오후 6시쯤 산책을 나가 보면 산바람에 서늘한 기운이 배어 있다. 한여름을 지나면서 벼들의 키가 부쩍 자라 있다. 요즈음 가장 측은한 곤충은 매미이다. 매미는 새벽부터 마당가 벚나무와 단풍나무에 붙어 울기 시작한다. 매미는 울 수밖에 없다. 알 형태로 나무껍질에서 1년을 보내다가 유충이 되어 땅속으로 들어가 7년을 칩거한 뒤 땅 밖으로 나와서 매미가 됐는데 불과 1달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 1달을 살자고 7년 동안 땅속에서 칩거했으므로 짧은 생을 눈앞에 두고 울 수밖에 없는 매미인 것이다. 

 그런데 생이 짧은 존재가 매미뿐인가? 그렇지 않다. 하루살이도 있다. 사람도 한정된 시간밖에 살지 못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집착하고 욕심을 부리지만 생은 유한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자신의 짧은 생을 절감하고 저렇게 처절하게 우는 매미보다 사람이 아둔한 것 같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라틴어인데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정도의 뜻이다. 

 하루살이처럼 오늘이 마지막 날이듯 내게 주어진 시간을 100% 연소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마지막으로 설하시듯이 방일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살 일이다. 그것도 주체적으로 주인공으로 살 일이다. 무엇이 주체적인 것인가? 그것은 각자 하는 일을 몰입해서 하는 것이다. 농부는 농사일에 진력하고, 나 같은 작가는 글 쓰는 일에 진력하고, 사업가는 자기 사업에 진력하는 것이다. 다만 하는 일에는 우열이 있을 수 없다. 각자 하는 일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