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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잎에서 물방울 떨어지듯 욕망에 매달리지 말라”

이 학종 | | 2022-07-29 (금) 23:26

(사진=이병욱)



청련화(靑蓮華)의 빠알리어 이름은 웁빨라(Uppalā)이다. 한역경전에서는 웁빨라를 우발화, 우발라화로 음사해 번역하고 있다. 홍련화, 백련화에 비해 청련화는 매우 희귀하다. 우리나라에서 청련화를 만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경전에서는 청련화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청련화만 언급하는 경우는 없고, 홍련, 백련과 더불어 언급된다. 쌍윳따니까야 ‘하느님의 청원에 대한 경(brahmāyācanasutta, S6.1)’에 등장하는 내용은 이렇다.   


“마치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의 연못에서 어떤 무리의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는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물속에서 나오지 않고 수중에 잠겨 자라고, 어떤 무리의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는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수면에까지 나와 있으며, 어떤 무리의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는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수면을 벗어나 물에 젖지 않는 것처럼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깨달은 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조금밖에 오염되지 않은 뭇삶, 많이 오염된 뭇삶, 예리한 감각능력을 지닌 뭇삶, 둔한 감각능력을 지닌 뭇삶, 아름다운 모습의 뭇삶, 추한 모습의 뭇삶, 가르치기 쉬운 뭇삶, 가르치기 어려운 뭇삶, 그리고 내세와 죄악을 두려워하는 무리의 뭇삶들을 보았다.” (전재성 옮김)


붓다가 깨달은 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갖가지 성향의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았고, 이를 연꽃에 비유한 것이다. 

아무려나. ‘청련화’라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인물이 장로니 웁빨라완나(Uppalavaṇṇā)이다. 케마와 함께 고따마 붓다의 비구니 상수제자가 된 웁빨라완나(Uppalavaṇṇā)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오랜 전생을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주 오랜 전생 동안 그녀가 살아온 드라마틱한 생에서 연꽃과 맺은 인연은 놀라울 만큼 다양하다. 

과거불인 빠두뭇따라(Padumuttara) 당시부터 신통이 뛰어난 사람이 되기를 서원했던 웁빨라완나는 살아 있는 동안 청정한 삶을 살고 상가를 위하여 방사를 지어 보시한 공덕으로 천상에서 오랜 기간을 살았다. 거기서 생을 다한 후 다시 인간계에 태어났다. 어느 날 아침 그녀는 밭에 있는 움막으로 가다가 도중에 한 호수 위에 피어 있는 연꽃을 보고 호수 안으로 들어가서 볶은 곡식을 덮을 연꽃잎을 땄다. 그녀는 ‘홀로 깨달은 님’[Pacceka(벽지불)]에게 볶은 곡식을 넣고 연꽃잎으로 잘 덮은 뒤에 보시하면서, ‘이 볶은 곡식을 드린 결과로 제게 그 알갱이만큼의 아들이 생겨나고, 이 연꽃을 드린 결과로 태어나는 각각의 장소에 걸음마다 연꽃이 솟아나길 바랍니다.’라는 서원을 세웠다. 이어 천상계에 태어난 그녀가 걷는 발걸음마다 커다란 연꽃이 솟아올랐다. 이렇게 선처를 오가며 공덕을 쌓은 웁빨라완나는 고따마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할 무렵 천상에서 죽어 사왓티 시의 한 은행가의 딸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 그녀는 푸른 연꽃의 씨방과 같은 색깔의 용모를 지녔기 때문에 웁빨라완나(푸른 연꽃)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녀의 미모에 반해 여러 명이 청혼을 해오자 번민을 거듭하던 그녀의 아버지가 어느 날 딸을 불러 ‘출가할 생각이 없는가?’를 물었다. 

아버지의 말을 듣는 순간 웁빨라완나는 머리가 수백 번 정제한 기름을 뿌리는 것처럼 맑아졌다. 딸이 출가를 흔쾌하게 받아들이자 아버지는 고마움을 표하고, 딸의 출가를 축하해 주기 위해 비구니들에게 올릴 많은 선물을 준비했다. 그러고는 그녀를 비구니 사원으로 데리고 가서 출가시켰다. 

비구니가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웁빨라완나는 포살당에 들어가 등불을 켜고 청소를 한 후 등불의 불꽃에 주의를 기울였다. 등불에 피어오르는 불꽃의 인상을 취하여 거듭 바라보면서 불 까시나(kasina)를 소연으로 삼는 사마타 수행을 통해 선정을 얻었다. 그녀는 선정을 성취하고 그것을 토대로 위빠사나 수행으로 전환해 거룩한 경지를 얻고, 거룩한 경지와 더불어 막힘없이 명료하게 이해하고 말하는 네 가지 능력[사무애해], 즉 가르침을 표현한 글귀나 문장을 막힘없이 명료하게 이해하고 말하는 법무애해(法無礙解), 귀나 문장으로 표현된 가르침의 의미를 막힘없이 명료하게 이해하고 말하는 의무애해(義無礙解), 여러 가지 언어를 막힘없이 명료하게 이해하고 말하는 사무애해(詞無礙解), 바른 이치에 따라 막힘없이 가르침을 설하는 변무애해(辯無礙解)와 신통력을 갖추었다. 

웁빨라완나 장로니는 특히 신통과 신변에서 자재한 능력을 갖추었다. 붓다께서 이적대결을 제안하며 붓다와 붓다의 상가를 비난하던 이교도의 도적에 응하기로 결심했을 때, 허락을 받아 신통신변을 시현한 계기로 스승으로부터 비구니 중에서 신통제일이라는 별칭을 받았다. 이후 많은 여성 수행자들이 웁빨라완나를 은사로 비구니계를 받았다. 웁빨라완나는 ‘비구니 지혜제일’ 케마와 더불어 부처님의 비구니 상수제자로 손꼽힌다. 

웁빨라완나에게 이런 일도 있었다. 그녀가 여러 마을로 유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면서 안다와나 숲에 들어가 머물렀을 때, 흑심을 품고 그녀의 꾸띠에 숨어 있던 젊은 사촌에게 겁탈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젊은 사촌은 강제로 자신의 욕구를 채운 뒤 꾸띠를 빠져나갔는데, 그 순간 대지가 그의 사악함을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두 쪽으로 쫙 갈라지면서 그를 삼켜버렸다. 웁빨리완나는 이때의 황당한 심경과 자신의 경계를 표현한 게송을 냉철한 표정과 음성으로 읊었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창칼과 같고

존재의 다발은 그 형틀과 같다. 

그대가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라 부르는 것, 

이제 나에게는 불쾌한 것이다. 


모든 곳에서 환락은 파괴되고

어둠의 다발은 부수어졌으니,

악마여, 이와 같이 알라.

사신(死神)이여, 그대는 패배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웁빨라완나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숨기지 않고 주위에 이야기했고, 비구니들은 비구들에게 이 사건을 알렸다. 비구들은 또 이 사실을 붓다께 말씀드렸다. 그런데 이 일이 일어난 뒤 얼마 후 대중들이 법당에 모여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대화는 아무리 번뇌가 사라진 아라한이라도 사랑의 기쁨을 좋아하고 쾌감을 느끼려고 했을 것이라는 것을 비롯해, 말라비틀어진 꼴랍빠 나무도 아니고, 개미집 언덕도 아닌, 젖은 살로 된 몸을 가진 살아 있는 생명이므로 아라한도 사랑의 기쁨을 즐기려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때 비구들이 나눈 이야기를 들은 붓다가 비구들에게 말했다. 


“그렇지 않다. 비구들이여. 번뇌를 완전히 제거한 사람은 사랑의 기쁨도 즐기지 않고 애욕도 느끼지 않는다. 마치 연잎에 떨어진 물방울이 달라붙지 못하고 굴러떨어지듯이, 겨자씨가 송곳 끝에 머물지 못하고 굴러떨어지듯이, 번뇌에서 벗어난 사람의 마음에 사랑의 감정은 일어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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