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의 제자들 또한 경허와 필적한다. 그들은 수월(水月)과 혜월(慧月), 그리고 만공(滿空)과 한암(漢岩)이다. 이들 모두 한국 불교사의 거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들은 모두 자기 나름대로의 향기(香氣)가 있다. 선기(禪氣)가 있다.

수월과 혜월은 남긴 문장은 없다고 하나 그 끝없는 선화(禪話)와 가화(佳話)로 이 나라 제일의 구도자로 후세의 첨앙(瞻仰) 대상이 되어 왔다. 만공과 한암 또한 문장과 덕행을 아울러 남긴 이 나라 제일의 수행자들이었다. 경허는 살아생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정진력은 수월을 능가할 자가 없고 

 지혜는 혜월을 당할 자가 없으며 

 만공은 복이 많아 대중을 많이 거느릴 테고 

 한암은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을 것이다. 

수월(水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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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의 수법제자 맏이가 수월이다. 수월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나 좌선화두를 타파해 견성한 것이 아니라 천수주(千手呪)를 통해 불망염지(不忘念智)를 얻었다. 즉 수월은 천수경을 외는 독경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수월은 밤낮으로 항상 천수경을 외웠는데 스승 경허로부터 짚신 삼기를 배워 짚신을 삼거나 땔감을 하면서도 한시도 천수경을 외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오대산 월정사 상원암에서 주석하고 있을 때는 대중들이 조실로 모시려 하였으나 사양하고, 항상 땔감을 하고 장작을 패고 잡초를 뽑는 부목의 역할을 벗어나지 않았다.

수월은 오대산을 떠나 북간도로 갔는데 처음에는 승복을 벗고 백두산 근처 농가에서 머슴 노릇을 했다. 나중에는 화엄사라는 작은 암자를 고갯마루에 짓고 혼자 지내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예불을 마치고 짚신을 수십 켤레 삼아 집 앞 처마에 매달아 놓았다. 또 수십 명이 먹을 밥을 지어 부엌에 두었는데 오가는 사람이 있으면 불러다 자기가 삼은 짚신을 신겨주고 부엌으로 데려가 밥을 먹였다. 조실부모하고 어려서부터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며 자랐다는 그의 성품은 단순하고 맑았으며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자기 몸처럼 여겨 모기나 빈대 같은 벌레라도 함부로 괴롭히거나 죽이지 않았다.

수월이 동진출가(童眞出家)했다는 설도 있으나 발심하여 불문에 귀의할 생각을 한 것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서른이 다 되었을 무렵이다. 그리고 그가 출가 본사로 천장암을 택한 것은 단지 그 절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는 지리적 접근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천장암에서 늦깎이로 행자생활을 시작했다. 나무를 해오는 것은 물론 밥까지 지어야 하는 행자생활은 머슴살이보다 나을 것이 없는 고단한 것이었지만, 그는 일체 불평을 하지 않고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해나갔다. 

당시 천장암의 주지는 경허의 친형인 태허 성원(性圓) 스님이었다. 따라서 수월에게 처음으로 머리를 깎아 준 은사는 태허 스님이다. 나중에 경허가 이곳에서 보임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수월이 경허의 법통을 잇게 되는 인연의 고리로 작용한 것이다. 수월의 뒤를 이어 훗날 천진도인(天眞道人)으로 이름을 날리는 혜월이 찾아와 밭일을 하며 수심결(修心訣)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수월, 혜월과 더불어 경허 선사의 세 달(三月)로 꼽히는 만공은 14세 소년의 몸으로 세 달 중 가장 늦게 천장암 식구가 되었다. 이 무렵 수월은 천수경을 좋아해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천수경을 외웠다. 천수경의 원이름은 <천수천안관자재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계청>이라는 긴 이름인데, 뜻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진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와 공덕은 광대무변하고 원만 구족하여 걸림이 없고 자유자재한 큰 힘으로 일체 중생의 고뇌를 건져주시는 다라니’다. 여기서 천수(千手)는 자비의 관대함을, 천안(天眼)은 지혜의 원만 자재함을 나타내며 천 개의 눈으로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보고 그 손으로 구제한다는 염원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다라니’는 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을 말하며 이 긴 이름을 줄인 것이 천수경이다.

1887년 겨울 어느 날, 수월이 절 아래 있는 물레방앗간에 내려가 방아를 찧고 있었다. 그날도 수월은 천수다라니를 지극 정성으로 외우며 일을 했다. 밤늦게 절로 돌아오던 태허 스님이 물레방앗간 앞을 지나다 돌확 속에 머리를 박고 아기처럼 잠들어 있는 수월을 발견하게 되었다. 급히 수월을 밀치자 그 직후 공이는 다시 쿵 소리를 내며 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이때 수월의 여법한 수행력을 목격한 태허 스님은 바로 다음날 법명과 사미계를 내리는 수계식을 거행한 다음 경허를 법사로 정해주었다.

이후 수월은 스승 경허의 가르침을 받으며 종일 일하면서 죽기 살기로 천수대비주를 외웠다. 그는 자고 일어나면 나무를 하러 산에 올랐고, 밥과 빨래를 하며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다. 그리고도 틈이 생기면 짚신을 삼아 남의 발에 신겨 주었다. 그는 기꺼이 낮게 몸을 낮추었다. 나무를 하든 빨래를 하든 짚신을 삼든 그의 입에서는 천수경을 외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만공은 훗날 수월을 이렇게 회상했다.

“수월 형님은 절에 손님이 오면 발 감싸게인 감발을 벗겨 손수 빨아 불에 말렸다가는 아침에 신도록 하고, 밤새 몸소 만든 짚신 서너 켤레를 바랑 뒤에 걸어주었다. 그런 형님만 생각하면 난 늘 가슴이 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