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ㆍ기고 > 꽃으로 읽는 불교

“벗이여, 그대는 향기 도둑이네!”

이 학종 | | 2022-07-22 (금) 06:21

(사진=이학종)
 


연꽃은 붓다 이전의 고대 인도에서도 만물을 탄생시키는 창조력과 생명력을 지닌 꽃으로 여겨졌다. 꽃의 아름다움은 물론 꽃잎이 크고 아름답기 때문에 천상의 보배로운 꽃으로 간주되었다. 

연꽃이 ‘불교 꽃’이 된 데에는 다음의 몇 가지 상징이 주로 거론된다. 첫째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이다. 진흙탕에 살지만 그 더러움을 자신의 꽃이나 잎에 묻히지 않는다. 세속에서 살아도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아름답고 고귀한 삶을 상징한다. 둘째는 화과동시(花果同時)이다. 연꽃은 꽃이 핌과 동시에 열매가 그 속에 자리를 잡는다. 꽃과 열매의 관계는 인과(因果)의 관계인데, 이 인과의 도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셋째는 봉오리가 합장하고 서 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합장하고 경건히 서 있는 불자의 모습은 막 피어오른 한 송이 연꽃과 흡사하다. 

불교 꽃인 연꽃 문양이 사찰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연꽃 모양을 본뜬 문양[연화문]은 전각의 조각이나 기와, 꽃문[전각의 창살문양]에서, 탑이나 부도 등 다양한 석조물에서 자주 등장한다. 금당 안의 불보살상 또한 대부분 연꽃 모양의 좌대 위에 앉아 있다. 연화좌대에서 연꽃잎이 위쪽을 향해 피어 있으면 위를 보는 연꽃이란 뜻으로 앙련(仰蓮), 아래쪽을 향하면 뒤집어진 연꽃이란 뜻으로 복련(覆蓮)이라고 부른다. 


‘연꽃 중에 어떤 색깔 연꽃이 제일 예뻐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조금만 생각해도 참 어리석은 질문임을 알 수 있다. 백련은 백련대로, 홍련은 홍련대로, 청련과 황련은 또 그 나름대로 견줄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색깔이 있어 상대적으로 더 눈길이 가는 연꽃이 있겠지만, 어느 색깔 연꽃이 제일 예쁘다는 객관적 기준은 존재할 수 없다. 

연꽃을 감상하는데 눈으로 보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향기로도 연꽃의 진수를 얼마든지 만끽할 수 있다. 희귀한 황련과 청련의 향기를 맡기는 쉽지 않겠지만, 전국 어디서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백련과 홍련의 향기는 어렵지 않게 맡아볼 수가 있다. 백련의 향기가 그윽하고 청아하다면, 홍련의 향기는 백련의 그윽함에 더해 향기가 짙은 것이 특징이다.     

홍련, 또는 홍련화(紅蓮華, padma)는 붉은 색깔의 연꽃을 말한다. 색깔이 짙은 만큼 그 향기 또한 진하고 화려하다. 

<쌍윳따니까야> 제9장 숲의 쌍윳따 ‘향기 도둑의 경(Gandhatthenasutta, S9:14)’에는 짙은 향기를 지닌 붉은 연꽃과 관련한 흥미롭고 교훈적인 가르침이 있다. 


한때 한 수행승이 꼬쌀라 국의 한 우거진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그 수행승은 탁발에서 돌아와 공양을 한 뒤에 연못으로 들어가서 붉은 연꽃의 향기를 맡곤 했다. 마침 그 우거진 숲에 살고 있던 하늘사람이 그 수행승을 가엾게 여겨 그의 이익을 위해서 수행승을 일깨우고자 그 수행승이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그 수행승에게 시로 말했다.


“그대가 이 연꽃의 향기를 맡을 때

그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네.

이것은 도둑의 한 가지이니,

벗이여, 그대는 향기 도둑이네.”


“나는 연꽃을 취하지도 않았고

꺾지도 않았고 떨어져서 향기만 맡았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그대는 나를 향기 도둑이라고 하는가?

연 줄기를 잡아 뽑고,

연꽃을 꺾고,

그와 같이 거친 행위를 하는 자에게는

왜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어떤 사람이 거칠고 흉폭하고,

하녀의 옷처럼 심하게 더럽혀졌다면,

나는 그에게 말할 것이 없지만,

지금은 그대에게 말하는 것이네.

때 묻지 않은 사람,

언제나 청정함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머리털만큼의 죄악이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는 것이네.”


“참으로 야차여, 그대는 나를 알고

나를 가엾게 여기네.

야차여, 그대가 그러한 행위를

볼 때마다 다시 말해주시오.”


“우리는 그대에 의지해 살지 않고

또한 당신에게 고용된 하인도 아니네.

행복한 세계로 가는 길을,

수행승이여, 그대가 스스로 알아야 하네.”


붓다가 제시한 길을 따라, 열반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연꽃향기를 맡는 것과 같은 미세한 죄악도 구름처럼 크게 보여 경책하는 것이라는 하늘사람[天神]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거룩하다. 반면 거칠고 흉폭하며 더럽혀진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말할 게 없다는 하늘사람의 말 역시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스무 해 넘게 여름이면 가까운 차벗[茶友]들과 함께 연꽃차회를 갖는다. 연꽃 한 송이 따다가 뜨거운 물로 우려내 연향을 만끽한다. 연꽃 향기를 맡는 것조차 참 수행자에게는 죄악이 되거늘, 연꽃 한 송이를 통째로 따 우려내 그 향기를 만끽했다니…. ‘향기 도둑의 경’을 만나고 난 후로는, 연차회가 이전처럼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게다가 이런 행위를 나무라는 하늘사람의 그림자조차 만난 적이 없으니,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이전   다음
Comments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