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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종, 선암사를 면모일신하라
이 학종 2022-07-19 (화) 08:32
이학종 칼럼19
순천 선암사 소유권을 놓고 벌인 조계-태고 두 종단 간의 재판에서 태고종이 승소했다. 광주고등법원은 지난 7월 7일, 한국불교태고종 선암사가 대한불교조계종 선암사 등을 상대로 제기한 ‘등기명의인표시변경등기말소’ 소송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선암사는 선암사에 당사자능력이 없다. 선암사 등기명의를 한국불교태고종으로 변경하라”는 취지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형식은 조계종의 승소지만, 내용은 패소인 절묘한 판결이었다. 대법원은 이 소송의 결론을 독립된 실체를 가진 사찰로서 당사자능력이 있는지 여부에서 찾았다.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조계종 측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가능성을 없어 보인다. 아마도 그동안 제시해온 주장들을, 상대적으로 우세한 힘[勢]을 바탕으로 어떻게든 관철시키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는 조계종이 이미 언급했던 ‘물리적 행사’가 동원될 개연성도 있다. 이런 상황은 지금부터 태고종의 움직임이 더 중요해진 이유이다. 태고종은 선암사를 명실상부한 수행도량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어쩌면 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명칭은 태고총림이지만, 총림의 격을 제대로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두루 알다시피 선암사는 태고총림, 즉 수행도량이 아닌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사찰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진입로부터 한국관광공사에 의해 ‘아름답고 운치 있는 길’로 선정되었고, 최고의 포토존으로 유명한 승선교는 물론이고, 소설가 조정래의 아버지가 이곳의 스님이었으며, 강수연을 월드스타로 만들어준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 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명성을 더하고 있기도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국의 절들 중 가장 특이할 것으로 보이는 해우소(뒷간)로, 선암매 등 경내 여기저기에 산재한 아름다운 꽃나무들로 입소문이 난 절이다.
정작 선암사를 백제 아도화상이 창건한 이래, 고려 대각국사 의천 등이 중창한 ‘적막하고 고요한 수행의 사찰’이었음을 아는 이는 드물다. 조선 말기에는 호남을 대표하는 함명태선(涵溟太先)-경붕익운(景鵬益運)-경운원기(景雲元奇)-금봉기림(錦峯基林) 등 4대 명강백을 배출하였고, 송광사와 함께 우리나라 불교에서 선과 교를 대표하는 수행처였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분규가 해결되지 않는 사찰이었기 때문에 명성에 걸맞는 사격을 갖출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었다. 여기에 1995년 당시 주지에 의해 조선시대에 제작한 문화재급 관음보살상이 모조품으로 뒤바뀌는 사건이 벌어져 큰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한마디로 태고종이 점유해온 지난 수십 년 동안 선암사는 아름다운 경관과는 달리 부정적인 이미지로 점철되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태고종은 승소한 현시점부터 선암사를 한국 불교계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청정한 수행도량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총림의 격에 맞게 최고의 선방, 최고의 강원, 최고의 율원을 제대로 복원하고, 태고종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염불원을 여법하게 세워 종단의 정체성도 강화해나가야 한다.
특히 태고종 종도들 중에는 상당수의 독신수행승들도 있는 만큼, 가능하다면 선암사는 독신 수행승들이 주석하며 수행하는 수행도량으로 가꾸었으면 좋겠다. 기존 대처승은 사판의 업무를 맡아 이판승들을 뒷바라지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면 될 것이다. 총림의 방장이나 선원장, 유나, 수좌 등은 수행력이 검증된 구참들 가운데서 추대하고, 만약 종단 내에서 추대할 만한 분을 찾지 못한다면 종단이라는 벽을 넘어서라도 오직 법이 높은 명안종사를 찾아 나서는 발초참현의 결단도 고려해야 한다.
하여, 선암사가 한국불교에서 가장 으뜸가는 수행도량으로 우뚝 설 수 있다면, 태고종은 실추된 종단의 이미지는 일거에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은 조계종과 함께 한국불교를 이끌던 양대 종단의 위상에서 천태, 진각, 관음종 뒤로 밀려난 수모를 단숨에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태고종 중앙종무기관과 선암사 대중들은 서둘러 회동을 갖고 선암사의 사격을 높일 구체적이고 이상적인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관계 전문가를 널리 초빙해 자문도 구하고, 심포지엄 등 학술행사도 여는 등 만반의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법원의 판결로 절의 법적 소유권을 확보한 것에 만족한다면, 또 선암사 대중들의 일탈행위가 발생해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발생한다면 선암사는 이전보다 더 큰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 태고종은, 또 선암사 대중들은 그동안 왜,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걸고 선암사를 지켜왔는지 진지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은 아마도 종조 태고보우 국사를 선양하고, 가까이는 만암, 석진 스님 등 근대 고승들의 원력을 잇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불조의 혜명을 널리 비추고, 이루고자 하는 원력의 발현이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태고종과 선암사 대중이 선암사의 사격 회복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당위가 아닐 수 없다.
이웃종단이 총림의 방장 자격을 사판승까지 확대하려는 등 개악의 길로 휩쓸려가고 있을 때, 태고종이 보란 듯 청정수행도량 선암사로의 면모일신에 나서는 참 불사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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