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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사람 김성채의 '문화탐방' 54
수원사람 김성채 객원기자 2022-07-11 (월) 09:41
한없이 큰 부처님의 공덕은 이렇게 아름답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가장 현명하니, 그런 사람을 영웅이라 한다. 마음을 단속하고 몸을 길들여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최후의 경지에 이른다. - 법구경
이제까지 최후의 경지에 이른 영웅이 있었습니까? 딱 한 분이 계셨었습니다. 인류 역사에 가장 굵은 획을 그은 큰 영웅을 모신 곳이 대웅전입니다.
겹처마 지붕을 받치고 있는 다포식 공포와 네 귀퉁이의 한대는 우렁차면서도 아름답습니다. 어간기둥 기둥머리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두(龍頭)가 조각되어, 대웅전이 극락세계로 향하는 반야용선임을 보여줍니다.
부연개판과 서까래, 도리와 평방과 창방에는 비단에 수를 놓듯 금단청을 올렸고, 각 부재의 머리에는 그에 맞는 머리초가 그려졌습니다. 정말 화려합니다. 그러나 화려함만이 아니라 위엄과 엄숙함이 깃들어서, 봉원사가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의 단청장이 계신 사찰이란 것을 실제로 느끼게 합니다.
영산재 시연시간에 앞서서 미리 대웅전에 도착했습니다. 때문에 대웅전 월대에 오르는 계단 바로 옆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머리 바로 위에는 처마가 있어 비를 피할 수 있고, 시연이 펼쳐질 마당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흉은 피하고, 복은 누릴 수 있는 명당자리’입니다.
부처님께서 사자의 기운 뻗는 삼매[師子頻申三昧]에 드시자 모든 세간이 깨끗하게 장엄되며 누각이 별안간에 넓어졌고, 솟은 누각이 높이 어울리고 추녀와 지붕이 마주 닿았다. 문과 망창이 해를 향해 열렸고 섬돌과 축대와 마루들이 모두 갖추어졌다. 한량없는 갖가지 당기를 세웠으니 보배 향 당기·보배 번 당기·모든 여래의 본생 일을 말하는 바다 마니왕 당기·일체 법계의 영상을 나타내는 마니왕 당기들이 시방에 두루하여 열을 지어 장엄하였다. - 대방광불화엄경 입법계품
대웅전과 마당에 마련된 야단법석은 ‘영취산에 모인 여러 보살과 성문들이 세존께 묻고자하는 일체 중생제도에 관한 모든 것’을 들려주시고자 삼매에 드셨을 때의 광경을 지화(紙花)로 장엄하였습니다.
시연이 다가오자 빗발이 가늘어지고 햇볕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푸른 하늘이 보였고, 산줄기를 타고 내려온 바람이 그렇게 푸른 하늘로 불보살 명호가 쓰인 번기를 띄웠습니다.
법석에는 아미타부처님을 협시하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그린 커다란 괘불이 걸렸습니다. 괘불 좌우에는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보현보살의 사구게가 걸렸습니다.
찰진심념가수지 대해중수가음진 허공가량풍가계 무능진설불공덕
刹塵心念可數知 大海中水可飮盡 虛空可量風可繫 無能盡說佛功德
티끌처럼 많은 낱낱마음을 모두 헤아리고
큰 바다의 물도 모두 마실 수 있으며,
허공 크기를 헤아릴 줄 알고 바람까지도 묶어낼 수 있으나
부처님의 크신 공덕은 어떻게라도 다 말해낼 수 없네.
2500년 전 영취산 정토에 태어나다
시간이 되자 범종이 울리고, 뒤를 이어 태평소, 나각, 바라, 용고, 나발이 대취타를 연주하며 영산재 시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연주 소리가 부처님께서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것임을 알리는 신호처럼 들렸습니다.
법석에는 (그때) 법문을 듣기 위해 참석한 시방세계의 많은 불보살과 도량을 지켜주는 신중들을 모시는 시련(侍輦)이 놓였습니다. 가마채(가마를 멜빵으로 어깨에 멘 다음 손으로 들어 올리는 손잡이) 양쪽 끝에는 용머리가 새겨졌고, 네 개의 량(지붕을 이룬 산마루) 아래쪽에는 봉황이 조각되어 있는데, 인간세상에서는 가장 높은 임금을 태우는 가마로 정성스레 모시겠다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흰색에 가까운 장삼에 붉은 가사를 입은 스님들의 바라춤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라를 앞으로 또 위로 돌리면서 올리는 춤동작은 불법을 받들고 찬양하는 모양새입니다. 또 앞으로 나가다가 물러서고, 물러서는 듯싶다가 되돌아서며 내딛는 동작은 이곳에 몰려든 좋지 않은 일 모두를 쫒아내어 도량을 맑게 지켜내겠다는 굳센 기세가 나타납니다.
역동적인 바라춤이 끝나며 나비춤이 이어졌습니다. 세모라고 할지, 네모라고 할지 모를 고깔엔 알 수 없는 문양과 연꽃이 그려졌습니다. 장삼의 소매는 길어서 땅바닥을 스칠 듯 말 듯하고, 붉은 가사의 앞과 뒤쪽엔 녹색 황색 청색의 비단을 드리웠습니다. 그렇게나 화려한 의상의 나비춤 춤사위는 양 손에 든 작약을 떨어트릴 것이 염려되어 조심하는 듯, 움직이는지 멈춘 것인지 모를 정도로 정중동(靜中動)입니다. 그러나 조용함 속에 강한 움직임이 들어있고, 강한 움직임 속에 유연함이 깃들어있음(動中靜)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비춤을 보면서 마음이 차분해졌는데, 설법을 듣기위해 마음을 비우는 입정과 다르지 않았고, 바라춤과 나비춤은 남성적인 춤과 여성적인 춤을 비교해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산재는 영취산에서 생사윤회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일깨워주신 석가모니부처님의 영산회상을 재연시켜, 불법의 가르침과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큰 불교 의식입니다. 이는 살아있는 중생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망자에게도 베풀어지는 것이어서, 자손들이 올리는 공양의 덕으로 망자는 삼도의 괴로움을 벗어나 극락왕생하게 됩니다.
용고와 바라, 나각, 나발에 이어 염불하는 스님이 앞장섰고, 그 뒤로 “나무대성인로왕보살” 번기를 든 스님, 뒤이어 위패를 모신 교의를 든 망자의 후손들이 뒤따릅니다. 행렬은 법석을 여러 차례 돌면서 아미타삼존불 앞을 지났습니다. 하품하생까지도 진심을 다해 ‘나무아미타불’을 칭명함으로써 나쁜 과보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에, 후손들이 염하는 ‘나무아미타불’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인로왕보살은 망자의 영혼을 극락세계로 안내해 주는 보살입니다. 목련존자는 ‘아귀의 고통을 겪는 자기 모친이 지옥을 벗어나 극락에 태어나게 해 달라’며 많은 스님들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 덕으로 목련존자의 어머니도 인로왕보살의 안내를 받았고, 1겁 동안 마귀의 고통을 벗어나게 됩니다.
극락전 벽화에서 본 반야용선과 법석에서 행해지는 천도재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반야용선(극락전 벽화)
인로왕보살이 뱃머리에서 거친 바다를 안전하게 헤쳐 나가도록 뱃길을 안내합니다.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소원하는 스물여덟명의 망자가 합장했는데, 그 뒤에 석장을 잡은 지장보살이 서계십니다.
금강경을 처음 읽었을 때 ‘부처님께서 걸식을 하고 돌아오시어 공양을 드신 후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로 시작되어서 엄청 이상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욕심을 여의신 분께서 ‘목숨을 이어가는 식사에 집착하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아는 것이 없지만 그때는 도저히 이해를 못했었습니다.
부처님의 뛰어난 공덕 열 가지 중 하나인 “응공”이 천상과 인간으로부터 존경받고 공양 받을 자격이 있는 분이라는 뜻이고, 부처님의 말과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가르침이기에 공양을 받으심이 당연하다는 것을 아는 데는 한참이 걸렸습니다.
영산재 시연 과정에 있었던 게(偈), 청(請), 염불과 화청, 망자에 대한 왕생극락 발원 등은 부처님과 스님(복전)들께서 마땅히 공양 받으셔야 할 법공양입니다. 그런데 이 공양(식당작법)이 특별한 것은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공양과 다르게 범패와 춤이 곁들여진다는 것입니다.
범종소리가 들리자 법석의 가운데에 정견 정사유 등 팔정도가 쓰인 기둥을 놓고 두 스님(打柱)이 등지고 앉았다가 타주무를 추었습니다. 타주무는 공양의 진행과정 중 몇 차례에 볼 수 있었습니다.
목어를 두드리고, 한 스님께서 큰 북을 치는 법고무를 추었는데, 다른 스님은 목어를 계속 두드렸습니다.
식당작법은 팔정도의 가르침으로 도업(道業) 성취와 더불어 일체 모든 중생에게 공양을 베풀어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을 일깨워 주고자 하는 의미를 가진 의식이라 합니다. 제법 긴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부처님에 대한 공양도 ‘목숨을 이어가는 식사’라는 생각을 가졌으리만큼 아는 것이 적을 뿐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불교 정신이 깃들어 있어서 앎이 짧은 제가 설명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나마 들어서 쉽사리 알게 된 것이 있으니, 도량에서 베풀어진 재(齋)로 인하여 살아있는 대중은 불법의 가르침과 신앙심이 고취되고, 망자는 해탈과 극락왕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봉원사를 나오며, 모든 중생들이 불법 인연을 짓고, 업장이 소멸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끝.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