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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나무로 만나는 붓다’①

이 학종 | | 2022-07-08 (금) 09:10

꽃으로 만나는 붓다, 나무로 읽는 붓다의 진리! 

이 흥미로운 여정에 많은 도반들이 함께 하기를



(사진=이학종)
 


붓다와 붓다의 진리를 만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방대한 경전을 읽으며 만나는 방법, 법사의 법문을 들으며 만나는 방법, 수없이 발간된 불서로 만나는 방법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문제는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한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붓다의 진리를 전승하며 홍포해온 역대 전법사들은 제각각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강구해 포교사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과학과 문명의 발전에 따라 더욱 다양화하고 세분화한 현대사회에서 붓다의 진리는 더 다채로운 방법으로 중생들에게 다가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불자들이 매일 다짐하는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의 서원을 실천에 옮기는 일이기도 하다. 

필자는 앞으로 붓다의 가르침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꽃과 나무, 풀 등을 소재로 삼아 붓다의 생애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것을 통해 붓다가 드러내고자 한 진리는 어떤 것인지, 각각의 식물들이 상징하는 세계는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살펴보고자 한다. 이 또한 중생들이 붓다와, 붓다의 진리에 다가가는 한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불교는 숲의 종교, 명상의 종교라는 별칭과 어울리게 자연, 특히 꽃과 나무, 풀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교가 전래된 이후 꽃과 풀로 불전을 장엄하는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붓다의 어머니 마야 왕비가 룸비니 동산에서 무수 나뭇가지를 잡는 순간 싯다르타가 태어났으며, 이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태자가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은 자리에는 연꽃이 피어났다는 이야기는 불교와 식물이 얼마나 깊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붓다가 영산회상에서 법을 전할 때 말 대신 꽃 한 송이 들어 올렸다는 이심전심(以心傳心) 염화미소(拈花微笑)의 이야기는 선불교에서는 전가의 보도와 같은 이야기이다. 



 (사진=이학종)


붓다와 관련된 꽃 이야기는 붓다가 출현한 생애 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붓다 전생 이야기로 이루어진 〈자따까(jātaka)〉에는 붓다의 화혼(華婚)의 유래가 된 일곱 송이 꽃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를 근거로 오늘날의 불교식 결혼에서는 신랑신부가 각각 다섯 송이와 두 송이의 꽃을 올리는 의식이 진행된다. 이 밖에도 붓다의 생애에서 꽃과 나무, 풀들이 함께한 순간들은 무수히 많다. 그 순간 꽃과 나무와 풀들의 역할을 매우 상징적이었다. 이 연재는 그 상징의 세계를 천착하며 붓다의 진리를 접하고, 붓다를 만나고자 기획되었다. 붓다와 함께 했던 식물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 이야기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꽃은 고대 인도에서부터 불교와 함께 했으며, 2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한국불교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꽃은 불교의식에서 불전에 올리는 여섯 가지 공양물 중에 하나이다. 여러 경전에도 꽃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붓다는 붓다의 진리를 풀어내는 데 꽃을 자주 등장시켰고, 〈묘법연화경〉에서 보듯 경전의 명칭에 꽃의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꽃으로 만나는 붓다, 나무와 풀로 읽는 붓다의 진리! 필자는 이제 그 흥미로운 세계로 한 발 한 발 걸어 들어가고자 한다. 이 여정에 많은 진리의 도반들이 함께 하기를!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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