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보기 싫거든 물가를 떠나라

                                                      정찬주(소설가)

크게보기

삽화 정윤경

 마중물 생각

 저잣거리에는 선거가 끝났지만 극언과 비방, 혐오가 난무하고 있다.

 안타깝다.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럴 때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백유경>을 보면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지 재미나는 비유들이 많다.

 산중의 물소리 바람소리야말로 자연이 주는 ‘영혼의 백신’이 아닐까.

 헛된 시비 분별로 지친 영혼을 맑히고 투명하게 씻어주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은 뻐꾸기 소리를 엄마의 ‘영원한 모음(母音)’이라고 하셨고 

 <어린 왕자>의 목소리는 ‘영원한 영혼의 모음’이라고도 말씀하셨다.

 나는 꾀꼬리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사랑의 기쁨’이라고 느끼곤 한다.

 두 마리가 숲속에서 ‘호호(好好) 호이오(好而娛)’ 노래하는 듯해서다.

 부처님 말씀과 침묵

옛날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몹시 목이 말랐다. 때마침 그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나무 홈통을 발견하고 정신없이 물을 마셨다. 그는 물을 실컷 마시고 난 뒤 나무 홈통을 보고  말했다. 

“물아, 이제는 더 흐르지 마라.”

 그러나 물은 여전히 흘러나왔다. 그러자 그가 화를 냈다. 

“싫도록 마셨으니 더 흐르지 말라는데 왜 멈추지 않느냐!”

 어떤 사람이 그 광경을 보고 말했다. 

“당신은 참 어리석구려. 당신이 이곳을 떠나면 될 텐데 흐르는 물을 보고 성화를 내야 무슨 소용이 있겠소.”

 어떤 사람이 그를 타이르며 물가를 떠나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와 같다. 세상 온갖 것에 집착하고 갈망하여 오욕락(五欲樂)의 단물을 마시다가 그 쾌락에 싫증이 나면 물을 실컷 마시고 난 사람처럼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너희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난 것은 다시 내 눈에 띄지도 마라.”

그러나 그 다섯 가지 욕락은 끊임없이 앞에 나타난다. 그는 다시 화를 내며 말한다.

“빨리 사라져 내 눈에 띄지 말라 했는데 왜 다시 나타나느냐!”

 이때 지혜로운 사람은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오욕락으로부터 떠나고 싶으면 당신의 여섯 감각기관과 마음을 잘 다스리어 망상을 내지 마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머잖아 해탈을 얻을 것입니다.”

                                                       ― 『백유경百喩經』

 갈무리 생각

 한밤중에 깨어나 은하수가 흐르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자음과 모음으로 이룬 소리가 아니므로 표현할 길은 없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는 누구나 들을 수 있다는 금언이 있다.

 ‘별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남한테 전하려면 

 그것에 필요한 말이 우리 안에서 먼저 자라나야 한다.’   

 임제선사는 인생을 찬탄하여 말했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그가 서 있는 자리마다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리라.”  

 또, 조주선사는 사계절 좋은 시간을 찬탄했다.

 봄에는 꽃들이 피고 가을에는 달빛이 밝다.

 여름에는 산들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흰 눈이 내린다.

 쓸데없는 생각만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 세상의 좋은 시절이라네. 

 향나무는 자신을 찍은 도끼날에 향을 묻혀 준다고 했다.

 그러지는 못할망정 차라리 내면이라도 깊어지게 침묵하자.

 쓸데없는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호시절이라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