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정찬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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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중물 생각

 수련 꽃은 어린아이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는 듯하다. 함박꽃은 오십 대 농부 부부가 논에 모를 심고 나서 웃는 모습이다. 자주달개비 꽃은 어린 여중생들이 교복을 입고 웃으면서 재잘거리고 있는 듯하다. 

 노란 창포 꽃은 저물녘마다 범종을 치는 스님의 소박한 미소 같다. 나는 기어코 뒤뜰에 핀 장미꽃 두어 송이를 화병에 꽂고서 웃는다. 얼마 전에 입적한 틱낫한 스님께서는 미소 짓는 순간에는 누구라도 부처님이 된다고 말했다. 부처님은 사랑도 미움도 초월한 꽃과 같은 분이 아닐 수 없다.

  부처님 말씀과 침묵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마라.

미운 사람도 가지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도를 어기면 자기를 따르게 되고

도를 따르면 자기를 버리게 된다.

이 뜻을 모르고 마음대로 행하면

그는 애욕의 구렁에 떨어지리라.

사랑을 일부러 만들지 마라.

사랑은 미움의 근본이 된다.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모든 구속과 걱정이 없다.

  부디 나쁜 일 하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해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 것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네.

승리는 원한을 가져오고

패한 사람은 괴로워 누워 있다.

이기고 지는 마음 모두 떠나서

다툼이 없으면 스스로 편안하리.

음욕보다 더한 불길이 없고

성냄보다 더한 독이 없으며

내 몸보다 더한 고통이 없고

고요보다 더한 즐거움이 없네.

병이 없는 것 가장 큰 은혜요

만족을 아는 것 가장 큰 재산이다

친구의 제일은 믿음이요

즐거움의 제일은 열반이니라.

성인은 만나는 일 즐겁고

성인을 섬기는 일 또한 즐겁다.

어리석은 사람을 떠날 수 있어

착한 일 행해 혼자서 즐겁다.

욕된 것을 참아 분심을 이기고

착함으로써 악을 이겨라.

남에게 베풀어 인색을 이기고

지극한 정성으로 거짓을 이겨라.

악은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

다시 사람의 몸을 망친다.

마치 녹이 쇠에서 나서

바로 그 쇠를 먹어가듯이.

음욕보다 뜨거운 불길이 없고

성냄보다 빠른 바람이 없으며

무명(無明)보다 촘촘한 그물이 없다.

애정의 흐름은 물보다 빠르다.

진리를 가까이하면 히말라야의 눈처럼

멀리 있어도 그 이름 드러나고

진리를 멀리하면 밤에 쏜 화살처럼

가까이 있어도 나타나지 않는다.

                                     ― 『법구경法句經』

 갈무리 생각

 건설업에 종사하는 최 사장이 의자를 한 개 만들어 들고 왔다. 최 사장은 나에게서 호를 특이하게 받았다. 한 자는 최 사장이 몽(夢) 자로, 또 한 자는 내가 안(安) 자로 지었던 것이다. 서로가 합송(合誦) 하듯 이렇게 지은 경우는 유일무이할 것 같다. 최 사장이 좋아한다는 꿈 몽(夢) 자에 내가 편안할 안(安) 자를 붙인 까닭은 현실은 물론 꿈속에서도 편안하라고 발원했기 때문이었다.

 법정스님께서는 생전에 불일암 상량문을 ‘꿈이 없는 잠이 이루어지이다.’라고 쓰셨다고 내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래서 최 사장의 호에 안(安) 자를 불현듯 생각해냈는지도 모른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흥망성쇠가 잦다. 최 사장도 한때는 서울 강남에 빌딩을 지어 임대를 했을 만큼 흥할 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외부환경 변화로 몇 해 동안 곤경에 처해 있다가 최근에 희망의 빛을 발견한 듯하다. 우여곡절 속에 살아가는 최 사장 같은 분들에게 위와 같은 부처님 말씀을 선물하고 싶다. 가슴에 메아리치는 것들이 있으리라고 믿는다. 

 최 사장은 사업하는 사람답지 않게 책을 좋아해 나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십수 년 전에 최 사장이 내 책을 읽고 이불재로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가 맛이 있으면 그 음식을 이불재로 가지고 왔는데, 고흥 매생이나 완도 김 등등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의 취미는 작은 가구를 만드는 일이다. 개인 공방이 따로 있을 정도로 소목장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작년엔가 아내의 의자를 주목이란 귀한 목재로 만들어왔는데, 등받이에는 불법승 삼보(三寶)를 상징하는 구멍 세 개가 뚫려 있었다. 이번에도 나의 의자를 같은 재목으로 만들어 왔다. 그런데 내 의자 등받이에는 절 만(卍) 자가 투각 돼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집필하는 동안 상서로운 기운이 충만하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어느새 최 사장은 나를 ‘형님’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 말이 하기 힘들어 술에 취해서 가끔 부르곤 하더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맑은 정신으로도 ‘형님’이라고 한다. 아내는 전라도 사람들은 너무 쉽게 ‘형님, 동생’ 한다며 의아해하지만 불제자로서 연기(緣起)를 생각할 때 이웃은 ‘또 다른 나’이니 오히려 고맙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