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종 칼럼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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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학회가 1973년 1월25일에 ‘고고미술자료 제22집’으로 펴낸, 황수영 박사의 <일제기문화재피해자료>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활자가 아닌 육필 원고를 등사기 형태로 그대로 찍어내 편집한 것으로 볼 때,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출세(出世)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황수영 박사는 1972년 9월 27일 서울 안암동 가야산실[자택으로 보임]에서 쓴 머리글[서문]에서 이 책을 간행하게 된 연유를 토로하고 있다. 

“우리 국토가 일제에 점령당하고 온갖 문화의 유산이 그들에 의하여 유린되던 금세기 초반의 역사는 악몽과 같이 우리의 머리를 떠나지 않으며 그 자취는 또한 쉽게 아물지 않는다.…”로 시작하는 머리말은 일제가 ‘고적조사사업’을 내세우며 특히 개성을 중심으로 고려분묘에 대한 악독한 약탈고대는 인류 역사상에 다시 그 유례가 없는 것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황수영 박사는 1950년 대 종말에 이르러 한일회담에서 문화재 반환 문제가 표면화됨에 그 일에도 간여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국립박물관에 보존된 고적보존기록을 비롯하여 각종 문헌을 더듬게 되었다는 것 등 당시의 배경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그 사이 수집된 일제기 우리 문화재 수난을 중심으로 하는 각종 자료를 엮은 까닭은 이만한 것도 오늘에 이르러서는 새로 마련하기에 시간과 힘이 든다는 판단 아래 혹시 이 같은 변변치 못한 자료집이 우리 과거의 쓰라린 사실을 후인에 전하여 앞으로 그 보존과 연구를 위하여 무슨 작은 도움이 될까 하는 기원에서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 책은 일제기 문화재 피해 자료를 ‘고분과 그 출토품’, ‘도자’, ‘조각’, ‘건조물’, ‘전적’, ‘회화’, ‘석조물(탑, 부도)’, ‘공예’, ‘기타’ 등으로 나누어 수록하고 있다. 이들 수많은 피해 자료 가운데 최근 인구(人口)에 널리 회자(膾炙) 되는 대상이 있으니, 바로 ‘조각’ 편에 수록된 ‘경주석조석가여래상(총독관저)’이 그것이다. 이 불상의 좌대를 찾기 위해 경주로 출장 간 조사자(技手) 소천경길(小川敬吉)이 임무를 마치고 수록한 복명서의 내용은 이렇다. 

경주석조석가여래상

경주 모처에 있었던 것. 지금은 옮겨져 조선 총독의 관저에 있다. 당대의 것으로 양식, 수법 또한 가작이라 부르기에 족하다. [편자주: 속칭 ‘미남불’이라고 호칭되었다는 바 현재 청와대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중략…

총독관저에 있는 석불은 대정 2년경 사내(寺內, 데라우치) 총독이 경주를 순시하였을 시 본 석불을 보고 또 보고 재삼 들여다보고 숙시(熟視) 한 일이 있다. 당시 경주의 금융조합 이사 소평(小平)씨는 총독의 마음에 든 석불로 생각하여 곧 이것을 경성 관저로 운반한 것이라고 한다. 소평씨는 지금 경주에 살지 않으며 동씨(同氏)에서 전문(傳聞) 하였다고 하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본 석불은 원래 경주군 내동면 도지리(道只里)의 유덕사지(有德寺址)에서 옮긴 것이라고 한다. 고로 불좌석의 조사를 위하여 동사지에 대하여 조사하였으나 불좌석은 보이지 않으며 다만 전답 중(田畓中)에 폐탑, 주초(柱礎) 등이 산란함을 볼 뿐임. 그리고 석불에 적당한 불좌를 구하려 타 사지를 조사하였으나 적당한 불좌를 얻지 못함. 요컨대 불좌가 경주박물관에 소재한다는 것은 오전(誤傳)으로서 소재하는 불좌는 타의 것이다.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진 것처럼, 청와대가 개방된 지난 5월 11일 당일 대통령 관저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이 석불상이 한 개신교도에 의해 훼손될 뻔한 사건이 발생했다. 개신교를 믿는 한 여성이 ‘미남불’이라는 별칭을 가진 이 석조여래좌상 앞에 놓인 불전함 등을 파손하고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며 난동을 부려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자신은 기독교인인데 사람들이 불상을 향해 절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노하신다고 생각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불상을 훼손하려는 사건과 관련해 개신교인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여론이 일자, 한국교회총연합회(한교총) 대표가 불교계에 유감을 표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류영모 한교총 대표회장이 5월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윤석열 대통령과 7대 종단 지도자 간담회에서 ‘불상 훼손’ 사건과 관련해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에게 “청와대 개방에 티가 되고 불교에 누를 끼친 청와대 불상 훼손 사건에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남불이 다시 화제가 되자 경주문화재제자리찾기시민운동본부라는 시민단체가 지난 5월 2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 경내에 있는 미남불을 경주로 반환해 달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이 단체는 “일제강점기 불법적으로 경주에서 서울로 반출됐고, 청와대를 국민에게 개방해 돌려준 시점에 불상이 청와대 경내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며 “무단으로 옮겨져 청와대 구중에 갇힌 불상을 고향 경주의 품으로 되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불교계의 입장은 일단 회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조계종을 중심으로 경주로 이전하려면 보존 환경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불교계가 그동안 ‘문화재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른바 ‘환지본처론’을 기회 있을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자주 외쳐왔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번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동안 견지해온 입장과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것은 왠지 자연스럽지 못하다. 국가나 유명 사립 박물관 등에서 관리하고 있는 수많은 불교 성보들을 ‘환지본처’를 명분으로 돌려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불교계에 대해, 만약 그들이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하거나 유보한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경주지역 시민단체들의 미남불 반환 요구와 관련하여 불교계가 보다 적극적으로 경주 이전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설 수는 없는 걸까. 도리어 이전의 주체가 되어 본래 있던 자리로의 이운을 추진하고, 성실한 관리자를 자임하는 동시에, 그 구체적인 보전 방안까지 경주지역 시민단체들과 함께 마련하는 게 더 나은 방향이지 않을까. 

그때그때 달라지는 태도로는 폭넓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뻔한 사실을 불교계가 애써 모른척하는 이유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