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은 국맛을 모른다

                                                             정찬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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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중물 생각

 이불재 뜰에 모란꽃이 우아하게 피어 있다. ‘나 홀로 존귀하노라!’라고 부처님이 탄생게에서 선언했던 것처럼 유아독존(唯我獨尊)의 꽃 같다. 내 산방은 추운 곳이어서 개화가 늦다. 평지의 모든 봄꽃들이 피고 난 뒤에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고 한 카이사르처럼 찬란한 자태로 피어 있다. 로마, 이집트, 스페인까지 평정한 카이사르가 장군 중에 장군이었듯, 모란꽃은 꽃 중에 꽃 같다. 그러고 보니 모란꽃에는 왕관 같은 눈부심과 우아함과 당당함이 깃들어 있다. 김영랑 시인의 찬란하게 슬픈 모란꽃과 정찬주가 보는 개선장군 같은 모란꽃은 이렇게도 다른가! 부처님도 <담마빠다(법구경)>를 보면 꽃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와 다른 것은 꽃을 보고 담마를 보신다. 우리는 꽃에 취하고 아름다움에 빠진다. 

  부처님 말씀과 침묵

보기에는 예쁘고 사랑스런 꽃이

빛깔만 곱고 향기가 없듯

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다운 말도

행하지 않으면 보람이 없네.

여러 가지 고운 꽃을 한 데 모아서

보기 좋은 꽃다발을 만들어내듯

사람도 착한 일을 모아 쌓으면

다음 세상 좋은 복을 받는다.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이 멀듯이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이에겐

생사의 밤길은 길고도 멀어라.

내 아들이다 내 재산이다 하여

어리석은 사람은 괴로워 허덕인다.

나의 ‘나’가 이미 없거니

누구의 아들이며 누구의 재산인가.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다고 

스스로 생각하면 벌써 어진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질다 생각하면

그야말로 어리석은 바보일 뿐.

어리석은 사람은 한평생 다하도록

어진 사람을 가까이 섬기어도

참다운 진리를 알지 못한다.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잠깐만이라도

어진 사람을 가까이 섬기면

곧 참된 진리를 바로 안다.

마치 혀가 국맛을 알듯이.

                                         ― 『법구경法句經』

 갈무리 생각

 어제 부처님 오신 날 쌍봉사에서 봉축사를 했다. 김밥이 3천 명 분이 나갔다고 하니 2천 명 이상의 불자가 쌍봉사를 찾은 셈이다. 여기에 봉축사 일부를 남긴다.

 ‘쌍봉사 창건은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화순군에서 유일하게 국보 57호 사리탑이 있는 국보사찰이지요. 철감선사께서 창건하셨는데, 철감선사는 당나라 유학승이었습니다. 철감선사는 18세에 출가하여 모악산 귀신사에서 10년 간 화엄경 공부를 마친 뒤 선(禪)을 배우고자 28세에 장보고의 배를 타고 당나라로 가서 남전선사 제자가 됩니다. 남전선사의 문하에는 저기 호성전 안내판 설명이 보입니다만 조주선사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스승 남전선사가 철감선사를 보고는 ‘우리 종문의 법인이 몽땅 동국으로 돌아가는구나.’ 하고 인가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사실은 중국선종서인 <조당집> 17권 쌍봉화상 편에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이후 조주스님의 사제였던 철감선사는 중국 땅에서 20년 이상 공부합니다. 철감선사는 장보고가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50세에 신라로 돌아와 금강산에 머뭅니다. 

 그때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구름처럼 몰려왔다고 합니다. 신라 경문왕도 철감선사에게 왕사가 되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철감선사는 서라벌에서 왕사가 되어 호의호식하기보다는 변방의 백성과 동고동락하겠다면서 여기 쌍봉사로 오신 것입니다. 중생을 교화하면서 고락을 함께 하겠다는 것이 철감선사의 정신이었습니다. 철감선사의 정신은 농부의 밭을 가는 소처럼 중생을 위해 살아라(異類中行)는 것이 스승 남전선사의 가풍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쌍봉사의 첫 번째 정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정신이야말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신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탄생게는 명명백백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하늘 위와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모두 고통에 헤매나니 내가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여러분은 이처럼 철감선사의 정신과 부처님 뜻이 깃든 쌍봉사에 와 계십니다. 여러분이 정성껏 단 연등은 어두울수록 더욱 아름답게 빛날 것입니다. 신산한 코로나 시대이지만 여러분의 불심은 더욱 깊어지고, 쌍봉사 부처님의 가피로 삶의 활력과 위안을 얻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에 참석해 부처님 탄생의 의미와 쌍봉사의 정신을 배워가는 사람은 지혜로운 불자일 터이다. 부처님도 지혜로운 사람은 국맛을 아는 ‘혀’ 같고, 어리석은 사람은 국맛을 모르는 ‘숟가락’ 같다고 하셨다. 혀로 살지 숟가락으로 살지는 온전히 우리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