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루눗다 대장로의 여동생 ‘로히니’ 공주  

로히니(Rohinī)는 사끼야 족의 왕족 출신인 아누룻다(Anuruddha) 장로의 여동생이다. 아누룻다는 고따마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여러 사끼야 족 청년들과 함께 출가하여, 25년 만에 여섯 가지 신통[육신통]과 사무애해(四無礙害)를 갖춰 아라한과를 이룬, 당시 부처님의 상가에서 큰 존경을 받은 대장로였다. 아누룻다 장로는 출가 후 55년 동안 바닥에 등을 대고 눕지 않는 장좌불와 수행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루눗다 장로가 출가 후 처음으로 고향인 까삘라왓투를 찾았다. 아루눗다 장로가 500여 비구와 함께 고향에 도착하자 사끼야 족 사람들은 공양과 법회 준비를 하는 등 대대적인 환영에 나섰다. 

아루눗다 장로는 부처님의 제자 중에서도 상가의 대중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는 스승이었다. 그는 무려 150세까지 살았을 정도로 법력이 뛰어났다. 그런 그가 고향을 방문했으니, 많은 사끼야 족 사람들이 다투어 찾아와 인사하고 예배를 올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단 한 사람, 아누룻다 장로의 친 여동생 로히니 공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연유를 알아보니, 로히니 공주는 나병에 걸려 얼굴과 온몸이 진물과 피로 범벅이 되었기 때문에 일체 외출을 삼가며 집안에만 박혀서 살고 있었다. 

아루눗다 장로는 로히니를 즉시 데려오라고 친척들에게 당부했다.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성취하고 대장로가 되어 돌아온 오라버니가 찾는다는 전갈에 로히니는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장로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다가오자 아누룻다 장로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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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히니야, 너는 왜 다른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 오지 않았느냐?”

“대장로님, 저의 피부에 발진이 생겨서 얼굴을 내보이기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냐? 그렇다면 네가 공덕을 지어보지 않겠느냐?”

“어떻게 공덕을 짓습니까?”

“비구들이 모여 토론도 하고 공양도 할 수 있는 승당을 한 채 지어보아라.”

“제가 무슨 돈으로 그런 건물을 짓겠습니까?”

“네게 보석 장신구가 있지 않느냐?”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걸 팔면 얼마나 될까?”

“아마 만 냥 정도는 될 겁니다.”

“그러면 그 돈으로 승당을 짓도록 해라.”

“누구를 시켜 건물을 지을까요?”

그러자 장로는 가까이 서 있는 친척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친척들이여, 승당을 짓는 일은 여러분들이 할 일입니다.”

“대장로께서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나도 여기에 머물며 승당 짓는 일을 감독하겠습니다. 당신들은 건축 자재를 모두 가져오십시오.”

“잘 알겠습니다. 대장로님.”

친척들은 그렇게 대답하고 건물을 짓는데 필요한 도구와 자재들을 모두 가져왔다. 아루눗다 장로는 승당을 짓는 일을 감독하며 로히니에게 말했다. 

“승당은 2층 높이로 지도록 하고 판자로 지붕을 완성하고 나면 너는 마루를 청소하고 의자를 준비하고 물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도록 해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로히니는 이렇게 자신의 보석을 팔아서 2층 건물의 승당을 세웠다. 지붕이 마무리되자 그녀는 오라버니 아루눗다의 분부대로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의자를 준비하고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는 등 정성껏 일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수도원에 머물면서 비구들이 사용하는 변소바닥, 욕실 등을 청소하고, 물 단지에 물을 채워 놓는 등 수도원 내의 청소를 도맡았다. 오라버니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덕을 쌓은 것이었다. 또한 그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늘 염두에 두고 외우면서 수행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쌓아가는 공덕 덕분인지 그녀의 병세에도 호전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큰 용기를 얻은 로히니 공주는 더욱 부지런히 청소와 봉사를 실천해나갔다. 

그동안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마침내 준공식을 갖게 되었다. 준공식에는 고따마 부처님과 많은 비구들을 초청하여 공양을 올렸다. 부처님은 공양을 마치고, 건물을 지어 상가에 바친 시주자를 찾았다.  

“아루눗다여, 이 건물을 누가 시주한 것인가?”

“세존이시여, 저의 여동생 로히니가 시주한 것입니다.”

“그런가? 로히니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집에 있습니다. 스승이시여.”

“그래. 어서 로히니를 불러오너라.”

로히니는 부끄러워 가고 싶지 않았으나 부처님이 부르시는데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녀가 와서 부처님께 3배를 올리고 자리에 앉자 부처님이 그녀에게 물었다. 

“로히니여, 왜 여기에 오지 않았느냐?”

“부처님이시여, 저의 피부에 발진이 생겨서 차마 얼굴을 내밀기가 부끄러워 오지 않았습니다.”

“로히니여, 왜 온몸에 발진이 일어나 너를 괴롭히는지 그 연유를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네 몸에 발진이 일어난 것은 질투와 분노 때문이니라.”

“부처님이시여, 제가 언제 질투하고 분노를 일으켰다는 말입니까? 저는 그런 기억이 없습니다.”

“로히니여,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해 줄 테니 잘 들어라.”

부처님은 그녀의 전생 이야기를 들려주시기 시작했다. 

“오랜 옛날, 바라나시를 다스리는 왕의 왕비가 있었다. 그런데 왕에게는 총애하는 한 무희(舞姬)가 있었다. 무희는 춤을 잘 추고 노래도 잘 불렀으며, 예쁘고 매혹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이 여인의 노래와 춤을 즐겁게 구경하다가 여인과 서로 눈이 마주쳤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왕은 왕비의 처소에 오지 않았다. 왕비는 이 사실을 알고 심한 질투를 느꼈고, 무희를 증오하게 되었다. 질투심이 극에 달한 왕비는 급기야 그녀를 해칠 궁리를 하게 되었다. 어떻게 그녀를 괴롭힐까 궁리하기 왕비는 심부름꾼을 보내 온몸을 가렵게 만드는 마하깟추 열매를 가루로 만들어 무희가 사용하는 침대와 옷가지, 이불 등에 뿌리도록 시켰다. 마하깟추는 열대식물로 그 열매 가루는 살갗에 닿으면 톡톡 쏘아대며 온몸을 가렵게 만드는 독성을 갖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무희는 곧 몸에 가려움이 일어나고 발진이 생기더니 곧 온몸이 발진으로 뒤덮였다. 그녀는 극심한 가려움을 견딜 수 없어 마구 긁어댔기 때문에 이내 끔찍한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다. 침대에 눕자 거기에 뿌려놓은 가루 때문에 더 심하게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때의 왕비가 바로 너, 로히니였느니라.”

부처님은 이렇게 로히니의 과거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로히니여, 이것이 네가 전생에 저지른 악행이었다. 분노와 질투는 아무리 가벼운 것이라도 옳지 않다. 누구든지 화내는 마음을 내어 남에게 나쁜 감정을 품거나 사나운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나의 제자들은 출가를 했거나 세속에 있거나 마땅히 항상 자비심으로 인욕을 지키고, 자신을 억제하여 참으며, 사랑으로 모든 존재를 대하고, 서로 간 화합하여 존경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시었다. 

분노를 포기하라. 

자만심을 버려라. 

모든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라. 

몸과 마음에 집착이 없는 자는 

고통의 불행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 게송 끝에 법석에 자리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과를 성취했다. 로히니 공주도 성자의 흐름에 드는 수다원과를 성취함에 동시에 병이 낫고 다시 예쁜 피부를 회복했다. 그녀의 피부는 황금색으로 빛났다. 

로히니 공주는 이후 고따마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정진을 하면서 살다가 죽은 후 33천[도리천]의 네 명의 천신이 다스리는 경계지역에 천녀로 태어났다. 이곳에서도 더없이 완벽한 미모를 갖춘 여인으로 태어난 로히니를 본 네 명의 천신들은 그녀를 보자 차지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일으켰지만, 경계지역에 태어났기 때문에 서로 자기의 소유라고 주장할 수는 없었다. 네 명의 천신들은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였다. 

“그녀는 나의 영역에서 태어났어.”

“무슨 소리? 그녀는 나의 영역에서 태어났어.”

의견을 좁히지 못한 그들은 결국 33천을 다스리는 삭까 천왕에게 가서 중재를 요청하기로 했다. 그런데 삭까 천왕 역시 그녀의 미모를 보고 한눈에 반해 자기도 그녀를 갖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일어났다. 삭까 천왕이 네 명의 천신들에게 차례로 물었다. 

“그대는 이 천녀를 보자 어떤 생각이 일어났는가?”

첫 번째 천신이 대답했다. 

“저는 그녀를 본 순간 전쟁터의 북소리보다 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천신이 대답했다. 

“저는 그녀를 본 순간 높은 산골짜기에 쏜살같이 흐르는 물보다 제 피가 더 빠르게 흐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 번째 천신이 대답했다. 

“저는 그녀를 본 순간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습니다.”

네 번째 천신이 대답했다. 

“저는 그녀를 본 순간 마음이 탑 꼭대기에 걸려 있는 깃발보다 더 펄럭거려서 진정시킬 수 없었습니다.”

네 천신의 대답을 다 들은 삭까 천왕이 그들에게 말했다.

“벗들이여, 그대들의 마음은 사랑의 열병으로 불타고 있구나. 하지만 그대들은 내 마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그녀를 얻으면 살고 얻지 못하면 죽어버릴 것이다.”

천왕의 대답에 놀란 천신들이 놀라며 말했다. 

“대왕이시여, 당신께서 죽으면 절대 안 됩니다.”

네 명의 천신들은 천녀 로히니를 삭까 천왕에게 바치고 각자의 영역으로 되돌아갔다. 이렇게 해서 로히니는 삭까 천왕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가 되었다. 삭까 천왕은 그녀의 부탁이라면 어떤 것도 거절할 수 없을 만큼 그녀를 아끼고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