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제15대 종정 중봉성파 대종사 추대법회가 지난 3월 30일 서울 조계사에서 봉행됐다. 한국 불교계 최고의 어른을 모시는 자리답게 불교계 고승대덕과 재가자는 물론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 주요 정당 대표 등 정치권 인사와 주한 외국대사, 재계, 문화계 등 각계 대표 3000여 명이 참석해 중봉성파 대종사의 종정 취임을 축하했다. 

종단의 법통과 신성을 상징하는 종정 추대 법석은 법고, 범종 소리와 함께 장엄하게 시작됐다. 화동의 인례로 종정 중봉성파 대종사와 원로회의 의장, 총무원장, 대통령 내외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으로부터 대웅전 앞까지 깔린 붉은색 카펫을 밟고 천천히 걸어오자 참석한 대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맞이했다. 

총무원장 봉행사, 중앙종회의장 행장 소개, 원로회의 의장 추대사에 이어 대통령이 국민을 대표해 축하의 뜻을 전했다. 추대법회 중에는 봄비가 촉촉하게 내려 행사장에 깔린 붉은 카펫의 색깔이 더욱 진하게 다가왔다. 

붉은 카펫! 알다시피 세계적인 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배우들이 붉은 카펫을 밟고 시상식장 안으로 들어가는 광경은 일반인들에게 매우 낯익은 장면이다. 예로부터 유럽에서는 빨간색이 권위와 명예를 상징했고, 따라서 귀족을 상징하는 색깔도 빨간색이었다. 그래서 유럽의 왕실에는 으레 붉은색 카펫이 깔려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카펫의 의미와 활용 범위에도 변화가 일어나 ‘붉은 카펫을 까는 것’은 ‘귀한 사람을 맞이하는 것’의 상징이 되었다. 붉은 카펫은 곧 극진한 환영의 표시로 인식된 것이다. 때문에 영화 시상식장뿐만 아니라 크고 중요한 행사에 붉은 카펫을 사용하는 것이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 시상식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시상식장으로 가는 길을 붉은 카펫으로 깔았다. 이 카펫을 밟고 지나간 배우들에게는 최고 권위의 시상식에 참가했다는 명예가 주어졌다. 

명예와 권위의 상징이 된 ‘붉은 카펫’.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았을 당시 붉은 카펫을 밟은 한국 배우들의 당당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세계 정상에 우뚝 선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느끼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불교 최고의 정신적 지도자이며 불교적 신성과 권위의 상징인 조계종 종정의 추대법회에 붉은 카펫이 깔린 것은 어떤 면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장면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크게보기

그렇다면, 수행자가 카펫 위를 밟는 것에 대해 부처님은 어떤 입장을 보이셨을까? ‘카펫 밟기’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이 <쭐라박가> ‘다발부’에 나와 있다. 

웨살리 시에 머물던 부처님께서 박가 국으로 유행을 떠났을 때, 꼬삼비의 우데나 왕의 아들인 왕자 보디(Bodhi)가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다음날 아침 공양을 받아줄 것을 청해 허락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 

보디 왕자는 공양 올리기 전날 밤, 여러 가지 훌륭한 음식을 마련하고 자신의 처소인 꼬까나다 궁전의 가장 아래 계단에 이르기까지 천으로 만든 카펫을 덮는 등 정성을 다해 부처님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다음날 아침 부처님과 비구들은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보디 왕자의 거처로 향했다. 이때 보디 왕자는 외문에 딸린 현관옥(중앙문)에 서서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기다렸다. 멀리 부처님과 비구들이 오시는 것을 본 왕자는 서둘러 나아가 인사를 드리고 부처님의 뒤를 따라 꼬까나다 궁전에 도착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계단의 밑단 근처에서 걸음을 멈추셨다. 그러자 보디 왕자가 부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상에서 존경받는 님께서는 천으로 만든 카펫을 밟으십시오.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께서는 천으로 만든 카펫을 밟으십시오. 그것은 저에게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을 줄 것입니다.”

보디 왕자가 이렇게 말했지만 부처님은 침묵하셨다. 보디 왕자가 다시 한번 카펫을 밟을 것을 청했을 때도 부처님은 침묵을 지키셨다. 보디 왕자가 세 번째로 거듭해 카펫을 밟을 것을 간곡하게 요청을 드리자 부처님은 대답 대신에 가만히 고개를 돌려 아난다 존자를 쳐다보셨다. 그러자 이심전심으로 부처님의 의중을 알아차린 아난다 존자가 보디 왕자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왕자여, 천으로 만든 카펫을 제거하십시오. 세존께서는 천으로 만든 카펫의 길을 걷지 않습니다. 여래는 뒤에 오는 사람을 배려합니다.”

그래서 왕자 보디는 그 천으로 만든 카펫을 서둘러 치웠다. 카펫이 제거된 후에야 부처님은 계단 위로 올라가 마련된 자리에서 공양을 마치셨고, 이어 법문으로 교화하고, 격려하고 북돋우고 기쁘게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궁전을 떠나셨다. 그 후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이 일을 기회로, 이것을 원인으로 비구들을 불러 모아 일렀다. 

“수행승들이여, 천으로 만든 카펫 위에 올라서는 안 된다. 오른다면 악작죄(惡作罪)를 범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정한 이 규율은, 이후 어떤 유산한 여인이 자신의 행운을 위해 깔아놓은 카펫을 밟지 않으려고 주저하는 비구들을 향해 “어째서 존자들은 행운을 위하여 요청을 받고도 천으로 만든 카펫을 밟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라며 혐책하고 분개하고 비난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재가자가 행운을 위하여 요청했을 경우에는 허용한다.’는 것으로 예외가 인정됐다. 그렇다고 해서 출가자가 카펫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기본 정신이 변경되거나 사라진 것은 아니다. 

수행자의 권위는 재가자의 그것과 같지 않다. 평생을 맨발로 걸었던 부처님의 삶을 돌아보면 진정한 권위와 신성은 외적 장엄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긴 시간이 흘렀다고 환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가르침의 근본이 바뀔 수는 없다. 따라서 이번 조계종 종정 추대법회 장에 깔린 붉은 카펫은 ‘옥에 티’가 아니었을까. 더구나 그 법회는 재가자가 행운을 위해 마련한 법석도 아니지 않는가. 

어떤 행사를 준비할 때, 앞으로는 율장을 살펴보거나 율사들에게 물어서 ‘부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세밀히 살핀다면 보다 여법(如法)한 법석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