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저명한 불교학자로서 계율연구에 거의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고(故) 히라카와 아끼라(1915~2002) 선생의 필생의 역저인 계율연구 시리즈가 우리말로 완역돼 출간됐다.

전 해인율원장 혜능 스님이 최근 ‘비구계의 연구Ⅳ’와 ‘비구니율의 연구’를 출간함에 따라 지난 2002년 ‘비구계의 연구Ⅰ’를 시작으로 ‘원시불교의 연구’(2003년), ‘비구계의 연구Ⅱ’(2004년), ‘비구계의 연구Ⅲ’(2010년) 등 6권의 번역작업이 모두 마무리됐다. 약 10년에 걸친 번역작업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혜능 스님은 이 책을 전6권 합본집 <戒律硏究集成>이란 제목으로 민족사에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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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각고의 노력끝에 <계율연구집성>을 출간한 전 해인율원장 혜능 스님

혜능 스님이 이 책을 번역한 것은 이 책 자체가 이미 불교학계로부터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저작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번역, 출판 작업을 통하여 한국불교가 계율에 대한 바른 인식이 이루어져 승가의 생명인 청정성과 화합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됐다.

스님의 이런 바람은 번역과 출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6권을 ‘계율학 연구 전집’으로 묶어서 무려 500질을 종정스님을 비롯해 원로스님, 총무원장, 교육원장, 포교원장, 24개 교구본사주지, 종회의원, 전국의 율원과 강원에서 계율을 공부하는 스님들, 동국대와 중앙승가대 도서관 등 전국 주요도서관과 중요한 연구소에 법공양하기로 했다. 전 6권의 정가가 16만5천원이니, 책값만 해도 엄청나다.

혜능 스님이 이런 원력을 세운 것은 단순히 이 책이 장식용으로 있지 말고, 실제로 이 책을 보고 책명을 바라보면서 계와 율의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불교가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한국불교가 새로워지고 종교적,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귀의하도록 하자면 무엇보다도 계율적으로 승가가 청정해져야 한다는 믿음, 또 계율 정신이 흐려지고 계행이 정립되지 않는다면 한국불교는 청정성을 잃고 결국은 그 종교적 특성까지 잃게된다는 깊은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 스님은 최근 대만불교가 발전하게 된 원동력이 계율이었다는 점을 좋은 모델로 들었다.

<계율연구집성>은 율에 대한 연구가 단순한 이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리, 수행, 불교사 이해에도 필수적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불교가 태동했을 무렵 불교도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행동을 했으며, 어떻게 교단을 운영해 나갔는지를 계율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혜능 스님은 보조국사 지눌의 <계초심학인문>에서 계율을 학처(學處)라고 한 것, 세속을 버리고 출가의 삶을 택했다면 당연히 세속과는 다른 출가의 삶(梵行)을 살아가는 질서와 규율이 있는 것이고, 그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그리고 중요하게 그것을 온전히 배우고 익히는 것은 그 구성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이면서 엄중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계초심학인문>에서 ‘선지지범계차’하라는 뜻은 율장을 잘 공부하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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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연구 시리즈 <계율연구집성>(전6권) 한 질.

계율 시리즈 <계율연구집성>의 첫 권인 <원시불교의 연구>는 교단 조직의 원형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분석으로 정리해 놓은 율학개론서와 같은 것이라 승가의 구성원들이 누구나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이다. 남․북전 율장과 그 해설서를 토대로 초기교단생활의 구체적인 모습을 밝히고, 그것에 의해 승가가 지향했던 이상을 설명하고 있다. 부처님 스스로 ‘말하는 대로 실천하고, 실천하는 대로 말한다(如說行者 如行說者)’라고 밝히셨듯 율을 통해 부처님께서 무엇을 강조하고 실천했으며, 그것이 출가자의 행동규범으로 어떻게 정착됐는지를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모두 4권으로 이뤄진 <비구계의 연구>(Ⅰ~Ⅳ)는 비구들이 수지해야 할 250개의 바라제목차 의미를 중심으로 계경(戒經)의 종류, 부파의 율장 전승 문제, 포살과 바라제목차의 관계, 바라이법, 승잔법 등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특히 초기불교시대의 승가 조직을 치밀하게 조명한 것을 배경으로 각 조문 하나하나의 용어에 대해서도 전문적인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또 상좌부, 대중부, 설일체유부, 음광부 등 여덟 부파에서 전승된 계경을 모두 번역한 것은 물론 그것이 설해진 인연담을 설명하고 각 조문에 대한 상세한 해석까지 담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노력은 부파불교를 넘어 초기불교시대 계율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비구계 연구> 1권에서는 바라이법과 승잔법의 조문 해석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2권에서는 부정법 2조, 즉 그 자리에서는 결정할 수 없는 파계의 경우, 비구의 일상생활에서 지켜야하는 율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3권에서는 ‘바일제법’을 다루고 있다. 자기가 범한 죄를 자신의 몸을 던져 속죄하거나 혹은 그 대신에 금품을 제공하고 용서받는 것 등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4권에서는 바일제법 나머지 부분과 증학법 75조, 멸쟁법 7조 등을 수록하고 있다. 4권으로서 비구 250계의 연구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비구 250계를 상세하게 연구한 것은 지금까지 비구 250계에 대한 연구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좋을만큼 이 분야의 연구가 늦어져 있기 때문에 조문 하나하나의 용어에 대해 전문적인 입장에서 해설했다.

<계율연구집성>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제6권 <비구니율의 연구>는 지금까지 학계에서 비구니율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오늘날 비구니 생활규범으로 활용되기에 충분하다. 350여개의 비구니율을 중심으로 비구니승가의 성격과 팔경법의 문제점, 비구니 바라이법, 비구니 승잔법, 비구니 사타법, 비구니 바일제법 등을 상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계율연구집성>은 2600년 전 불교교단의 모습을 계율을 통해 생생히 되살려내고 있다. 또 승가의 구성원들이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수행에 힘쓰는 것이야말로 출․재가를 막론한 모든 불교도가 반드시 실현해내고자 했던 승단의 모습이었음을 보여준다. 승단의 분열은 극도로 기피되고 오로지 승단의 화합을 강조하는 많은 율장 조문들과 기술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학문적으로도 심혈을 기울인 역작이기도 하거니와, 최초로 명쾌하게 밝혀진 바라제목차에 대해 승가의 구성원들이 바르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그래서 승단이 본래의 청정성과 화합성을 회복하여 세간의 귀의처로서 예경과 공양을 받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엮은 불교사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책이다.

“500질을 법공양하기 위해 그동안 조금씩 모은 돈으로는 아무래도 힘에 부칠 것같다”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혜능 스님의 환한 표정처럼, 한국불교에 청정하고 조화로운 기운이 다시금 충만해질 수 있을까. 묵직한 이 책들의 무게만큼이나 한국의 모든 스님들이 이 책 출간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전 6권 16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