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깟사빠의 아내 출신 ‘밧다 까삘라니’ 

고따마 부처님 당시에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대표적인 비구니 가운데 한 사람인 밧다 까삘라니(Bhaddā kāpilānī)는, 마하깟사빠(Mahākassapa)의 부인으로 더 많이 알려진 여성수행자이다. 이들은 부부가 모두 아라한과를 성취한 특별한 경우로 불가에서 이상적인 부부의 모델로 회자되어 왔다. 

밧다 까삘라니가 고따마 부처님의 지도를 받기 시작한 후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성자의 반열에 오른 것은 오랜 전생 동안 쌓은 공덕의 힘이 뒷받침됐다. 그녀는 빠두뭇따라(Padumuttara) 부처님(연화상불)의 시기에 태어났을 때, 법회에 참석했다가 빠두뭇따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다. 밧다 까삘라니는 그때 빠두뭇따라 부처님께서 한 비구니를 가리켜 ‘전생의 삶을 기억하는 님 가운데 제일’로 지목하고 크게 칭송하는 장면을 보고는 크게 각성하여 자신도 앞으로 덕성을 닦아 저 비구니와 같은 위대한 사람이 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이후 그녀는 어느 생에 태어나든 살아 있는 한, 또 할 수 있는 한 많은 공덕을 지었고 거기서 죽어서 천상계와 인간계 등 선계를 윤회하면서 살았다. 그녀는 고따마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탄생하기 이전 시기에, 바라나시 시의 훌륭한 가문에 태어나 전생의 마하깟사빠 존자와 결혼을 하였는데, 시누이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느 날 시누이가 탁발을 나온 벽지불(홀로 깨달은 님)에게 공양을 올리면서 “제가 저 여자(밧다 까삘라니)와 100요자나나 떨어지기를!”라고 기원하는 것을 듣고, 그녀는 ‘이 보시가 이루어지도록 놔두면 그 공덕이 굉장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홀로 깨달은 님의 손에서 발우를 빼앗아 밥을 버리고 대신 진흙을 채워주는 악업을 저질렀다. 이 모습을 본 시누이는 밧다 까삘라니를 향해 “당신은 어리석은 여인이야. 당신은 나를 비난할 수 있고, 심지어 나를 때릴 수도 있어. 그러나 음식을 버리고 진흙을 채워서 수많은 세월 동안 바라밀행을 닦아온 홀로 깨달은 님에게 드린 것은 나를 때리고 비난할 것보다 훨씬 더 온당치 않은 일이야.”라고 비난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도 그녀를 비난했다. “어리석은 자여, 그대는 홀로 깨달은 님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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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로부터 모진 비난을 듣고서야 퍼뜩 정신을 차린 밧다 까삘라니는 비로소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홀로 깨달은 님으로부터 다시 발우를 받아 진흙을 깨끗이 씻어내고, 향분으로 거듭 닦은 후 네 가지의 맛있는 음식들로 채운 뒤 그 위에 홍련화색의 받침 색깔로 빛나는 응유(凝乳, 엉겨 붙은 우유)를 부어서 홀로 깨달은 님에게 올렸다. 공손히 무릎을 꿇은 그녀는 ‘이 탁발 음식의 공양이 빛나는 것처럼, 저의 몸도 빛나기를! 그 밝은 빛이 널리 퍼지기를!’이라고 기원했다. 

이 공덕으로 그녀는 다음 생에 천상세계에 태어날 수 있었다. 이후 그녀는 천상 세계와 인간계 등 좋은 곳을 윤회하다가 다시 깟사빠(Kassapa) 부처님이 출현했을 당시에 바라나시 시에 사는 한 대자산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녀는 전생의 업의 결과로 몸에서 악취가 풍겼고, 사람들은 그녀를 혐오하자 외경하는 마음이 생겨나 자신의 장식물로 황금벽돌을 만들어 세존의 탑묘에 놓고, 한 움큼의 청련화 꽃으로 정성껏 공양을 올렸다. 그 공덕으로 그녀의 몸은 그 당대에 좋은 향기를 갖게 되었고 용모까지 아름다워졌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에게 사랑받고 귀여움을 받으면서 살아 있는 한, 착하고 건전한 일을 하다가 거기서 죽어서 천상계에 태어났다. 

그녀는 천상계에 태어나 살아 있는 한 최고의 즐거움을 누리다가 거기서 죽어서, 바라나시 시의 왕의 딸로 태어나 천신들의 영화와 같은 영화를 누리면서 홀로 깨달은 님들을 섬겼다. 봉양해오던 홀로 깨달은 님들이 완전한 열반에 들자, 그녀는 크게 슬퍼 하다가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었고, 수행처에서 살면서 선정을 닦아 천상세계에 태어났다가, 고따마 부처님이 태어날 무렵 싸갈라(Sāgala) 시의 꼬씨야곳따(Kosiyagotta)라는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훌륭한 가문의 귀한 딸로 각별한 보살핌을 받으며 잘 성장했고, 성년이 되자 마하띳타(Mahātittha) 마을의 소년 삡빨리(Pippali, 마하깟사빠 존자의 어린 시절 아명)에게 시집을 갔다. 그런데 그녀가 삡빨리에게 시집을 가게 된 데는 오랜 전생부터의 인연이 있었다. 

삡빨리는 성장하여 결혼을 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결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그는 독신으로 지내는 것을 좋아했고, 결혼하라는 부모님의 강력한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버텼다. 그러나 부모님의 성화가 날로 거세지자 삡빨리는 직접 미녀상(美女像)을 그렸다. 그리고는 부모님에게 미녀상을 보여주며 이런 사람이 아니면 결코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의 부모는 사람들을 백방으로 풀어 아들 삡빨리가 그린 미녀상과 똑같은 여인을 수소문했고 마침내 찾아냈는데, 다름 아닌 밧다 까삘라니였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제가 정성껏 모실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는 출가를 할 것이다.’ 더 이상 부모님의 염원을 외면할 수 없게 된 삡빨리는 내심 이렇게 결심했다. 자신이 그린 미녀상과 똑같이 닮은 여인이 등장했으니,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삡빨리와 밧다 까삘라니는 비록 부부가 되었으나, 둘 다 출가에만 관심이 있었다. 결혼 후 일절 부부관계를 갖지 않음은 물론, 앞으로도 한 이불 속에서 잠 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첫날밤부터 두 사람 사이에 꽃으로 줄을 만들어 놓고 잠에 들었다. 

어느 날 삡빨리는 들로 나아가 농부들이 밭갈이하는 장면을 지켜보다가 흙 속에서 기어 나오는 벌레들을 새들이 날아와 잽싸게 쪼아 먹는 장면을 보고는, 살아 있는 존재들은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출가의 마음을 더욱 굳혔다. 같은 시간 밧다 까삘라니 역시 까마귀가 작은 벌레를 잡아먹는 장면과 그 순간 흙 밖으로 튀어나온 곡식의 씨앗이 말라죽는 것을 목격하고는 동물은 물론 식물까지도 결국 생명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출가할 마음을 더욱 다잡았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세속에서 부부의 인연으로 살았지만, 내심 출가의 의지를 다지며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삡빨리의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이제 출가의 걸림돌이 사라졌다고 판단한 두 사람은 출가할 준비를 서둘렀다. 출가를 결행하는 날까지도 둘 사이의 꽃 줄이 흩어지는 일은 없었다. 

두 사람은 세속에서의 생활을 바짝 마른 초가집 태우듯 신속하게 정리했다.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머리를 깎아 준 두 사람은 궁궐처럼 커다란 집과 엄청나게 많은 재산을 하인들에게 모두 나누어주고, 흙으로 빚은 바리때 하나만 들고서 조용히 집을 나섰다. 소유하고 있던 방대한 토지는 고르게 나누어주었으며, 하인의 신분까지 해방시켜주었다. 자애로운 주인의 출가를 하인들이 온몸으로 막아서며 울부짖었지만 두 사람의 얼굴에는 한 점 아쉬운 기색이 없었다. 

집을 나온 두 사람은 말없이 걸었다. 삡빨리가 앞장서고 밧다 까삘라니가 그 뒤를 따랐다. 길을 따라 걷는 동안 삡빨리에게 이러한 생각이 일어났다. ‘지금, 밧다 까삘라니가 나의 뒤를 가깝게 따라오고 있다. 게다가 그녀는 매우 아름답기까지 하다. 한 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저들은 수행자다. 그런데도 저들은 여전히 서로가 없이는 못 산다. 저들의 행위는 저열하다.’라고. 삡빨리는 만약 사람들이 이러한 잘못된 생각으로 그들의 마음을 더럽히고, 잘못된 소문을 퍼뜨린다면, 그들은 스스로 해로운 원인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집에서 나와 한참을 걷던 두 사람 앞에 갈림길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걸음을 멈추고 마주 보았다. 삡빨리가 말했다. 

“밧다 까삘라니여, 우리는 삭발하고 집을 나섰으니, 이제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함께 길을 걷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먼저 길을 고르십시오.” 

삡빨리의 말에 밧다 까삘라니가 호응했다. 

“마땅히 그리해야 할 때입니다. 당신은 남자이니 오른쪽 길을 가십시오. 저는 여자이니 왼쪽 길로 가겠습니다.”

홀로 왼쪽 길로 접어든 그녀는 오랜 시간을 걸어 꼬살라 국의 수도 사왓티 시에 도착했다. 그녀가 사왓티 시로 향한 것은 제따와나 승원(기원정사)에 머물고 계신 고따마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서였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아직 비구니 상가가 설립되지 않았을 때였다. 부처님의 상가에 머물 수 없으므로 그녀는 부득이하게 제따와나에서 멀지 않은 비(非)불교 교단인 띳티야라마(Titthiyārāma)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는 비구니계를 받기 전까지 5년 동안 그곳에 머무르며 나름의 수행을 해나갔다. 그러나 여성 수행자를 보호할 환경과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기에 밧다 까삘라니는 온갖 고초와 역경을 감내해야만 했다. 

마침내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의 노력과 아난다의 간청으로 붓다의 상가에 여인의 출가가 허용되고 비구니 상가가 성립된 것은 밧다 까삘라니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희소식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최초의 비구니이자 최초의 여성 아라한인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를 찾아가 그녀가 지도하는 비구니 상가로 출가해 구족계를 받고 비구니가 되었다. 

부처님은 비구니가 된 밧다 까삘라니를 위해 <묘현경(妙賢經)>을 설해주었고, 수행 정진할 것을 격려했다. 그 후 오래지 않아 그녀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첫 여성 아라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의 지도 아래 부지런히 정진한 끝에 자신의 과거 생을 모두 기억해 내었고, 통찰을 확립하여 거룩한 경지를 얻었다. 이로 말미암아 5백 비구니들에게 큰 깨우침을 주었다. 그녀는 거룩한 경지를 얻고 나서 전생의 삶을 기억하는 앎에 자유자재하였다. 그녀는 거기서 열심히 덕성을 지었기 때문에 나중에 스승께서는 고귀한 대중 가운데 앉아서 비구니들을 순서에 따라 특별한 자리에 세우면서 그녀를 ‘전생의 삶을 기억하는(숙명통) 님 가운데 제일’의 자리에 세웠다. 

그녀는 어느 날 출가 전 남편이자 부처님 상가의 대장로인 마하깟사빠 장로의 덕성에 관하여 먼저 찬탄하고, 이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 마친 경지를 다음과 같은 감흥 어린 시구로 읊었다.   

부처님의 아들이자 상속자인 

깟사빠는 잘 정립되었으니,

전생의 삶을 알고 

그리고 천상과 지옥을 본다. 

성자로서 태어남을 부수고

곧바른 앎을 완성했으니,

이러한 세 가지 명지로 인해서

세 가지 명지를 갖춘 고귀한 님이다. 

마찬가지로 ‘밧다 까삘라니’도

세 가지 명지를 얻어 죽음을 물리쳤으니

악마와 그 군대를 쳐부수고

최후의 몸을 성취했다. 

세상에서의 위험을 보고서

우리 둘은 출가하였는데

번뇌가 부수어지고 길들여졌으니,

청량해져서 우리는 열반을 실현했다. 

       - 전재성 옮김 <테리가타>에서 인용

아라한과를 성취한 비구니로서 밧다 까빨라니는 젊은 여성 출가자들을 교육하고 특히 율장을 가르치며 비구니 상가에 헌신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보수적 태도로 비구니들에게 곱지 않은 태도를 견지했던 마하깟사빠 존자를 적대시하던 비구니들의 질시를 감내해야 하는 짐도 있었다. 그런 비구니들 가운데, 툴라난다가 있었다. 그녀는 좋은 스승과 좋은 가르침(담마) 속에서 정진했지만 자비보다는 지적 능력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특히 율장에 어긋나는 행동을 일삼아 제멋대로 사는 수행자였다. 그런데 툴라난다의 제자들 가운데 몇몇이, 아라한과를 성취하고 담마의 스승이자 율장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으로 존경받고 있던 밧다 까삘라니를 흠모하기 시작하면서 툴라난다의 질투심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밧다 까삘라니를 괴롭히기 위해 툴라난다를 따르는 비구니들이 밧다 까삘라니의 꾸띠(숙소) 앞을 왔다 갔다 하며 큰 소리로 게송을 읊으며 정진을 방해했다. 이 일로 인해 툴라난다는 고따마 부처님으로부터 훈계를 받았다. 또 한 번은 밧다 까삘라니의 부탁으로 툴라난다가 밧다 까삘라니의 임시 숙소를 준비하는 일이 있었다. 그때에도 툴라난다는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고 밧다 까삘라니를 숙소 밖으로 내팽개쳤다. 

그러나 밧다는 이미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성자였기에 그런 일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어떠한 방해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연민의 시선으로 툴라난다를 바라보는 밧다 까삘라니에 대한 비구니들의 존경심을 날로 깊어갔다. 

한편 밧다 까삘라니처럼 고따마 부처님의 교단에 비구니 승단이 생기자 합류하는 여성이 크게 늘어났다. 부처님의 상가에 여성 수행자들이 늘어나면서, 마치 새의 두 날개처럼 부처님의 교단은 비구와 비구니 상가가 두 축을 이루며 발전을 거듭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