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비밀3 

 줄곧 상필이 생각만 하던 민우는 편지를 발견했다. 놀랍게도 재희에게서 온 편지였다. 알록달록한 편지였다. 민우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뜯었다. 하얀 백지 위에 낯익은 재희의 글씨가 보였다.

 민우야.

 몇 번이나 정수사로 전화를 했는데..... 난 잘 있어. 동생들이 많이 생겼어.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몰라. 그래서 편지가 늦었어.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정수사에도 오지 않는다며. 그게 가장 마음이 아파. 난 여기서 항상 마리산을 생각해. 학교 운동장이며, 퐁당 수로, 동막 해수욕장. 5학년이 되었는데, 공부를 못해서 걱정이야. 우리 반은 마리 초등학교보다도 아이들이 더 적어. 겨우 9명. 그래서 언제 없어질지 모른대. 그것도 걱정이야. 스님은 잘 계서. 여기서도 하루에 한 번씩 꼭 산을 타셔. 그럴 때면 꼭, 민우 얘기를 하셔. 할 말이 많았는데, 막상 편지를 쓰려니까 쓸 말이 없어. 내 잔소리 안 들어서 좋지? 내 걱정은 하지 마. 참, 여기서 동생들이 나를 키가 작다고 짜몽이라고 불러. 짜리 몽땅의 줄임말이래. 그래도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아. 감기 조심하고. 밥은 거르지 말고 꼭 먹어. 그리고 또 부탁! 하루에 한 번씩 할머니한테 꼭 가 봐. 다음에 또 편지할게.

불암사에서 재희가

 민우는 멍청하게 서 있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마.’ 그 말이 민우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동생들도 생기고, 재희는 잘 지내는구나.’ 전화하고 싶지도 않았고, 편지를 쓰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민우는 재희에게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재희는 자기와는 다른 자기와는 다른 먼 세상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민우는 재희가 너무 힘이 들어서 다시 강화도로 오고 싶다는 편지를 받고 싶었다. 징징 울면서 전화를 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민우는 힘없이 재희의 편지를 책상 위에 놓았다. 섭섭했다. 하지만 민우는 몇 번이나 재희의 편지를 읽었다. 그러고는 땅거미가 내릴 때쯤 간단히 저녁을 먹고, 동막리 백사장으로 갔다.

 물이 밀려오고 있었다.

 바람이 몰려오고 있었다.

 별이 뜰 때쯤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밝은 햇살이었다.

 학교를 가기 위해 잠에서 깨었을 때, 아버지는 민우 옆에서 자고 있었다. 12시가 넘었을 때까지 기다렸던 민우는 그만 이불도 깔지 못하고 잠들었다. 그런데 민우는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아버지가 민우를 다시 누인 것이다. 민우는 아버지를 깨우지 않기 위해, 저녁때 놓아두었던 찬밥을 할머니가 갖다 준 물김치에 말아 먹고 가방을 둘러맸다. 그리고 부엌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상한 가방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검은 가방이었다.

 민우는 가방을 열어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가방 속에는, 그 가방 속에는 분명히 너구리와 이름도 모르는 동물들의 가죽이 들어 있었다. 스님과 함께 덫을 풀어주었던 그 귀엽던 너구리, 민우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정신이 아찔했다. 

 저녁때에 나갔다가 새벽에야 들어오는 아버지, 그리고 그 이상한 아저씨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막연하게 불길했던 예감이 그대로 적중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스님이 말했던 그 밀렵꾼들이란 사람이 바로...... 민우는 눈을 감았다. 당장이라도 경찰서로 달려가고 싶었다. 아니 스님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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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 가서도 민우의 머릿속은 껍질만 남은 너구리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선생님에게 몇 번이나 주의를 받았지만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난 쟤처럼 멍청한 애는 처음 봤어.”

 쉬는 시간에 상필이가 다른 애들한테 그렇게 말했다. 뻔히 자신의 험담을 하고 있는 줄 알지만 민우는 참기로 하였다. 상필이는 반에서 제일 크다고 누구에게나 그렇게 말하는 아이였다.

 “쟤, 축구할 때 봐라. 꼭 두더지가 기어 가는 것 같애.”

 “그래도 공은 잘 차잖아?”

 “야, 그게 어디 공 잘 차는 거냐? 키가 작으니까 공에 몸이 딱 달라붙는 거지. 작은 애들은 원래 어디든 잘 달라붙어. 너 박쥐 알지. 박쥐는 천장에도 붙어산다. 히히!”

 민우는 끝까지 못 들은 척하기로 하였다. 상필이가 일부러 시비를 붙기 위해 하는 말이라는 걸 민우는 알고 있었다. 축구를 잘하는 자기를 상필이가 질투하기 때문이란 걸 알고 있었다. 더구나 민우는 축구부도 아니었다. 상필이는 5학년 주장을 맡고 있었다.

 “쟤 왜 4학년 때 축구부에 안 들었는 줄 아니?”

 “왜?”

 “누구누구하고 좋아지내려고. 걔도 알고 보면 공주병 걸린 애였어. 절에서 학교 다니는 주제에, 무슨 독서부라고. 하긴 사람은 끼리끼리 모인대. 당꼬마는 땅꼬마하고 친하게 되어 있어. 그래서 쟤도 독서부에 들었잖아. 그렇지만 땅꼬마 공주님은 멀리멀리 떠나갔잖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됐지.”

 상필이는 민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민우는 고개를 젖혀 상필이를 쏘아보았다. 아이들이 술렁거렸다. 민우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민우가 상필이가 있는 뒷자리로 조용히 걸어갔다. 상필이 책상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아이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박상필, 너 이따가 나 좀 보자!”

 “그래? 그렇지 않아도 나도 너 좀 보려고 했는데 잘 됐다. 우리 한 번 멋지게 싸워 보자!”

 아이들이 모두 들으라는 식으로 상필이는 큰소리로 말했다.

 민우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후로 교실의 분위기는 완전히 들떠 있었다. 여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대로, 남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대로 소곤거렸다. 소위 말하는 ‘땅꼬마’ 민우와 ‘나르는 삼겹살’ 상필이의 대결이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관심은 상필이가 어떻게 민우를 혼내줄 것인가에 쏠려 있었다. 상필이의 덩치는 거의 민우의 두 배에 가까웠다. 

 지루한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모두 미끄럼틀이 있는 운동장 담장 쪽으로 몰려갔다. 그 쪽이 교무실과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다. 민우는 한쪽 어깨로 가방을 멘 채로 천천히 담장 쪽으로 걸어갔다. 상필이가 먼저 자리를 잡고 아이들에게 떠벌이고 있었다. 민우는 두 주먹을 꼭 쥐었다. 

 “너 재희 욕한 거 취소해!”

 “나아, 참!”

 상필이는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꼭 서부의 총잡이들처럼 민우와 상필이는 담장 미끄럼틀 밑 모래밭에 서 있었다. 아이들이 민우와 상필이 옆에 뺑 둘러 서 있었다.

 “난 말이다.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이야.”

 “너 정말 취소 안 하면 나한테 혼나!”

 민우는 상필이를 노려보았다.

 민우의 새파란 인상에 질렸는지, 아니면 하도 가소로워서 그런지 상필이의 눈은 민우의 눈과 마주치지 못했다.

 “긴말할 것 없이 덤벼!”

 상필이가 주먹을 쥐었다. 

 “난 너하고 싸우기 싫어. 그러니까 아이들이 있는 앞에서 사과해!”

 “싫다면?”

 그러나 상필이의 그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민우의 머리가 상필이의 얼굴로 날아갔다.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상필이는 제대로 주먹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모래밭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역시 상필이는 상필이었다. 덩치와는 다르게 벌떡 일어난 상필이는 그 커다란 주먹을 민우의 코를 향해 날렸다. 민우의 코에서 금방 코피가 쏟아졌다. 그러나 민우의 주먹도 상필이의 얼굴로 날아갔다. 매운 주먹이었다. 

 민우와 상필이는 엉겨 붙었다. 누구의 코에서 피가 나는지 알 수 없었다. 민우의 얼굴도, 상필이의 얼굴도 붉은 피로 얼룩졌다. 그제야 구경하던 아이들이 달려들었다. 아이들은 씩씩거리는 민우와 상필이를 데어 놓았다.

 “너, 오늘 운 좋았다!”

 상필이가 흐르는 코피를 훔치며 을렀다.

 “한 번만 더 재희 흉보면, 그땐 죽는 줄 알아!”

 민우의 말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난 천 번이라도 그 땅꼬마 계집애 욕할 수 있어.”

 상필이가 민우를 비웃었다. 민우는 자신이 붙잡고 있는 아이들을 밀쳐 내고 상필에게 돌진했다. 그러나 그때 누군가 외쳤다.

 “야, 저기 선생님 오신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상필이도 얼른 줄행랑을 놓았다. 그렇지만 민우는 상필이를 뒤따라가지 않았다. 교문 족으로 가는 선생님을 피해 담장 밑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모습이 사라질 때쯤, 옆에 놓아둔 책가방을 멘 채로 교문을 향해 걸었다. 멀리서 상필이와 아이들이 수군거렸지만, 민우는 그냥 터벅터벅 걸었다. 마음먹은 대로 상필이와 주먹다짐을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꼭 누구와 싸움을 하고 나면 개운하지 않고 남는 뒷맛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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