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사람이 만들더라도 그것은 본래 자연처럼 해야 한다((雖由人作, 宛自天開).” -계성, ‘원야(園冶)’

인간과 정원, 그리고 자연.

인간이라는 구분이 규정하는 경계 밖에 놓여 있는 자연. 그리고 인간이 만들고 가둬버린 자연인 정원. 첩첩의 경계 속에 인간은 자연을 흠모하면서도 경계 밖으로 내몰고 만다.

중국에서는 정원을 원림(園林)이라고 부른다. 중국의 대표 문인인 왕유, 백거이, 소동파, 이공린이 거닐던 공간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그들이 붓 끝에 담아내던 자연이 바로 원림이었음을 아는가.

크게보기인간과 원림, 그리고 자연.

그들은 그들을 닮은 공간을 만들었고, 그들의 공간은 자연을 닮았으며, 그들은 다시 공간을 닮아갔다. 점점 경계는 사라지고, 원림과 인간은 공히 물아일체(物我一體), 내외명철(內外明徹)의 경지에 이른다.

당송 시대 사대부는 현실 모순을 해결하는데 있어 유가와 도가의 가르침으로 대안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몸담은 현실이 곧 이상이라는 선(禪)의 가르침은 그들에게 현실과 이상의 갈등을 일소에 해소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선의 가르침에 심취한 가운데, 이른바 선취(禪趣), 즉 선종의 영향을 받은 문예적 취향이 사대부 문화의 한가운데 드러나게 된다.

당시 사대부는 원림 조영에 심취해 있었고, 이로 인해 우리는 원림에서 당시 사대부의 세계관과 그 안의 선취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당송 이전의 원림은 가사 노동과 생산 활동, 그리고 유희의 장소로서의 기능만 있었으나 당송 시기를 거치며 사대부가 시서화의 예술 이론을 산수원림에 적용하기 시작했고, 원림은 기타 문예작품과 동등한 입지를 구축하게 된다. 이른바 시적 정감과 그림의 정취(詩情畵趣)라는 개념은 이러한 과정에서 생겨난 원림의 정신이다. 그러므로 원림에 담긴 사의(寫意)적 가치를 살며보는 것은 중국 고전원림의 본질을 아는 것과 같다.

명청 시대의 원림은 상당수 현존하기도 하고, 양식화 경향이 뚜렷해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진 상태이다. 그렇지만 당송 시대의 원림은 현존하는 것이 거의 없을뿐더러 있더라도 터만 남은 정도이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정립이 되지 않은 분야이다.

이런 미답의 분야에 박희성 서울 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중국 원림의 공간 구성과 형태의 연원을 찾기 위해 당송 시대의 원림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고, 거기서 더 나아가 원림을 만든 시대와 사람들을 주목하게 되었다. 팰연적으로 당송시대를 전반적으로 개괄하는 시대연구를 필요로 했고, 시대의 사람들, 즉 사대부를 탐구해야 했다. 여기서 사대부의 세계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선종을 발견하게 되었고 마침내 불교에 관한 연구까지 아우르게 되었다.

<원림: 경계 없는 자연>(서울대출판문화원)은 이런 6년 여에 걸친 원림 답사를 위해 오지행도 마다 하지 않은 학자정신으로 완성된 높은 순도 높은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선취라는 개념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림을 하나의 조경 모델로 차용할 수 있도록 조경학적 지식을 소개한다. 독자로 하여금 본문에 서술한 원림의 조경 요소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50여 장에 달하는 원림 답사 사진을 수록하고, 원림을 그린 20여 장의 회화를 찾아 설명하였다.

방대한 실증자료, 사료 속에 나타난 사대부와 원림, 불교와 유교, 도교를 넘나드는 다양한 사료들을 발췌하고 연구해 완성된 책이기에 단순한 조경학 분야 도서의 범주를 넘어섰다.

*저자 박희성은?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연구교수이다. (주)우리엔디자인펌 조경설계연구소 연구소장을 역임했었으며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을 역임했었다. 또 중국 칭화대,베이징대 연구학자를 역임했다. 「당,송대 산수원림 연구」로 조경학 박사 학위를 취득(서울대학교)하고‘조선왕릉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신청’, ‘선농단 역사공원 조성 기본계획’ 등 다수 사업에도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