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지친 영혼에게 백신 같은 동화”

법정·수불 등 고승 14분의 뭇 생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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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온 세상이 고통에 빠져 있을 때, 사는 일이 힘겹고 갈수록 치열해져 몸과 마음이 무겁고 지쳐있을 때 적잖은 사람들이 삶의 희망을 내려좋거나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들곤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으로 고통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통의 극복은 그 원인을 파악하고 원인을 제거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잘 알다시피 부처님은 이 세상을 고통의 바다로 비유하셨다.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끝이 없는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생계는 고통의 수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따금씩 기쁜 순간이 있을 수도 있고, 즐거움을 만끽하는 일도 간헐적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공히 잠시잠깐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스쳐 지나가는 기쁨과 즐거움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고해라는 점을 인식시키는 일종의 장치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코로나19의 공격을 받고 나서야 사람들은 무심코 누려왔던 이전의 평범한 일상들이 행복이었음을 알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벗을 날이 언제나 찾아올지, 마음 놓고 대화하고 식사하며 여행을 떠날 날이 다시 올수는 있을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럴 때일수록 지혜로워져야 하고, 우리가 숨 쉬고 움직이는 시공간 그물처럼 관계와 관계로 이어진 연기의 법칙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자비를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동체대비의 삶에 대한 희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감염위험 가능성이 낮은 산골에 살면서도 코로나19 감염의 위험을 낮춰줄 백신을, 온갖 보수언론들의 방해책동을 물리치고, 서둘러 접종한 것은 집단면역 형성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일상으로 회복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동체대비심의 발로였다. 다행히 필자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변종바이러스 등장이라는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연말쯤이면 일상으로의 회복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는 시점이다. 

이럴 때, 백신접종이라는 물리적 처방과 함께 지친 심신을 회복시켜줄 영혼의 백신을 처방받는 것도 매우 요긴할 것이다. 때마침 제방의 독자들에게 청량한 지혜의 문구를 끊임없이 전해주고 있는 정찬주 소설가가 ‘코로나 시대를 건너는 영혼의 백신, 생명동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법정스님에서 수불스님까지 고승 14분의 뭇 생명 이야기를 동화의 형식으로 풀어낸 <스님 바랑 속의 동화>(다연 펴냄)가 그것이다.  

어쩌면 시나브로 사라질 수도 있었던 스님들 바랑 속에 들어 있던 이야기들이 생명동화로 부활한 것은 순전히 저자의 역량이다. 스님들을 만나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공유했던 이가 어찌 이 동화의 저자뿐이었겠는가. 20~30여 년 전 암자를 순례하며 때로는 직접 들었던 이야기들, 또는 큰스님들의 상좌나 후학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저자의 심연 속에서 숙성에 숙성의 과정을 거쳐 진국으로 태어난 것이리라. 그러므로 이 동화 속 글은, 불교소설가로, 불교적 사유에 바탕한 글쓰기로 평생을 일관해온 정찬주 작가만이 써낼 수 있는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 역시 큰스님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대담을 나눈 일이 많아 숱한 일화들을 들었지만, 그 이야기들이 이렇게 한 권의 교훈과 감동, 그리고 고귀한 깨침을 주는 생명동화의 소재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불교에 정통하고, 불교문화와 불교역사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으며, 출·재가를 막론하고 수많은 불연을 지어왔으며, 그런 반연들을 소설, 에세이, 그리고 동화로 엮어내는 놀라운 필력을 소유한 작가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            

어느 날 스님은 쥐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음 생에는 쥐의 탈을 벗고 다른 생명으로 태어나렴.”

그런데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말을 한 다음날이었습니다. 또 헌식을 하려고 암자 뒤꼍으로 갔는데, 헌식돌 옆에 쥐가 죽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스님은 ‘쥐의 탈을 벗어라’는 자신의 말을 듣고 쥐가 죽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아! 말귀를 알아듣는 쥐였구나.”

스님은 쥐를 위해 그 자리에서 두 손을 모았습니다. 다음 생에는 쥐의 탈을 벗고 귀한 모습이 생명으로 태어나기를 기도했습니다.  -이 책 20~21쪽에서

법정스님이 지리산의 한 암자에서 지낼 때의 이야기다. 헌식은 산짐승들과 음식을 나누어먹기 위해 끼니때마다 한두 숟가락씩 밥과 반찬을 놓는 의식을 말한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스님께서 유발제자인 저자에게 회상하듯 들려주었을 것이다. 법정스님의 바랑에 담겨져 있던 그 이야기가 저자의 마음에서 농익어 ‘작은 산짐승 친구들’이라는 제목의 생명동화로 몸을 바꿔 탄생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윤회는 생명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무수한 이야기에도 해당하는 것 같다.  

이 책은 모두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스님 바랑에서 꺼낸 자비’, 2장은 ‘스님 바랑에서 꺼낸 사랑’, 3장은 ‘스님 바랑에서 꺼낸 지혜’이다. 자비와 지혜가 불교를 구성하는 두  개의 기둥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이야기를 풀어간 듯하다. 각 장마다 5편씩의 동화가 실려 있으니, 모두 15편의 고귀한 가르침이 아름다운 문장과 함께 선물처럼 다가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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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에서 글처럼 중요한 것이 삽화다. 어쩌면 삽화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수도 있다. 이 책에 실린 삽화는 정윤경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이다. 영국 킹스턴대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한 정윤경 작가는 <행복한 무소유>, <법정스님 인생응원가>, <법정스님의 뒷모습> 등의 삽화를 그렸고, 그림동화 <마음을 담는 그릇>, <바보동자> 등을 펴낸, 이 분야의 실력자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어느 덧 일흔 줄에 들어선 작가 정찬주는 말한다.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가는 이 사막 같은 시대에 <스님 바랑 속의 동화>가 따뜻한 가슴을 회복하게 하는 영혼의 백신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식구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이 동화를 함께 읽음으로써 자비와 사랑, 지혜의 싹이 자라나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듯하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