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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바람 속으로 천년의 호흡이 스며들고

염정우 기자 | bind1206@naver.com | 2021-03-29 (월) 09:14

봄기운의 앓는 소리가 창을 긁는다. 새벽의 어둠 너머로 연약한 비린내가 소곤대며 두리번거리고 있다. 사바의 생명들이 또 한 번의 계절을 넘으려 하고 있다. 봄은 무엇으로부터 움터오는가. 얼어붙었던 겨울의 주검들로부터 오는가. 생명은 죽음의 어느 자락과 맞닿아져 있는가. 봄의 가녀린 줄기를 잡고 세월 속으로 흩어진 원주 폐사지로 떠난다.


거돈사지







처음 맞닥뜨린 것은 수천의 노동력으로 쌓여진 처절한 아름다움이다. 그것을 기획했던 집단의 문화 의지 위로 담쟁이넝쿨이 핏줄로 돋아 올라와 살아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하늘을 열어놓은 듯한 돌계단을 올라가면 상륜부를 잃은 삼층석탑이 연꽃을 이고 고고히 솟아오른다. 그 뒤로 천년을, 만년을 나의 염원을 받아 주리라던 청동불은 간 데 없고, 화마에 그을린 좌대만이 깨어지고 떨어져 나간 모습으로 앉아 있다.








가슴이 저리도록 아름다운 석축과 머리를 내민 주춧돌만이 가람의 향기를 짐작하게 한다. 가사를 여민 승려들의 새벽 도량석과 목숨을 들어 돌아가고자 하는 남성들의 장엄한 염불 소리가 들린다. 은은한 향 내음에 간밤의 끓던 번뇌가 잦아든다. 스승을 찾아 법을 논하던 사제 간의 차 맛이 시퍼렇고, 지옥을 깨는 종소리가 살갗을 떨리게 한다. 한 편에선 눈 맞은 보살과 살림을 차렸던 도신의 한평생 꿈이 하얗게 변한 머리로 낮잠을 깨고, 탑을 잡고 엎어져 우는 아낙네의 다급했던 뒤꿈치엔 선혈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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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공국사승묘탑 자리에서 아래로 바라보는 오른쪽에는 거돈사의 천년 세월을 지켜본 느티나무가 서있고, 왼쪽으로는 귀수에 올라 아홉 마리의 용을 이고 있는 원공국사탑비가 서있다. 저 거대한 느티나무는 현계산 기슭의 골짜기에서 펼쳐지는 거돈사 영욕의 세월을 다 보았으리라. 신라와 고려시대의 번성, 조선의 탄압과 임진왜란의 사나운 불길을 견뎌내고, 지금은 고요히 참선에 잠겨 있는 느티나무는 천년의 세월도 찰나일 것이다. 깊은 삼매에 빠진 채로 거대한 뿌리로는 피가 돌고, 폭염을 오가는 길손에게 무릎을 내어주며, 겨울 삭풍에 흔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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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사지



왼쪽은 거돈사지에서 법흥사로 가는 오르막 길이고 오른쪽은 어재에서 거돈사지쪽을 내려다본 모습이다.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에서 왼쪽으로 현계산으로 오르는 산길을 넘어가야 법천사지가 나온다. 임금이 배를 타고 법천사에 왔다가 거돈사까지 가기 위해 넘던 고개라고 해서 ‘어재길’이다. 부론이라는 일개 면에 거대한 천년 고찰이 두 개씩이나 있다.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에 고려·조선시대에 뱃길로 세곡을 나르던 창고인 '흥원창'이 있던 곳이라면 그 번영했던 시절을 짐작할 만하다.







떼가 덮여 있는 광활한 평지 끝 봉명산 아래 지광국사탑비(국보59호)가 있다. 비신석을 바치고 있는 거북의 몸을 가진 용이 이빨을 드러내고 “주인공아!”하며 부르는 사자후에 귀가 멀 지경이다. 비신석 옆으로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두고 희롱하는 모습은 마치 자유롭게 바람을 걷던 이가 바다를 차며 건너는 물보라에 무지개가 너울거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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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뒤뜰에 있을 당시 촬영한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문화재청 제공)


탑비 앞에는 지광국사현묘탑(국보101호)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 공간이 있다. 세계에서 손꼽힌다는 아름다움이 흘러넘치던 현묘탑은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일제에 의해 분해되어 현해탄을 건넜고, 6.25 때에는 포탄에 온몸이 찢어졌다. 지금은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상처를 회복하고 있다. 그 텅 빈자리에는 육체를 잃고, 지나온 기억만을 간직한 채 바람만이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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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장(風葬)! 한때 아름다운 가람의 기둥을 받치고 있었을 초석들이, 재속에 흩어져 있는 사리처럼 등뼈를 드러내고 비바람에 사그라지고 있다. 정돈되어 있지 않은 폐사지의 원초적인 모습은 인연을 따라 이루어지고, 머물다, 부서지고, 마침내 사라져버리는 뚜렷한 여래의 몸으로 가라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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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 한 편으로는 호수의 인공섬에 서있었을 법한 속이 빈 느티나무가 서있다. 동자 둘이 살고 있다는 느티나무속 표면은 벼락에 맞아 검게 그을린 자리가 선명하다. 불타 없어진 속을 보듬고 상처의 거죽만으로 피워내는 생명의 신비로움은 참담했던 세월을 가슴에 묻고 사는 생명들의 사바살이와 닮았다. 나무속으로 들어가 앉으면 머리 위로 하늘이 열려 있다. 하염없이 바라보던 저 하늘 위로 가슴속 그리움 다 아로새겼으리. 



 


답사후기


뭔가 풀어지고 있다. 깊이 흐르는 강물을 넋 놓고 바라볼 때처럼, 아궁이 속 타는 장작불을 하염없이 바라볼 때처럼....... 폐사지의 원초적인 모습을 보며 문득 저 등골의 땅을 찢고 들어가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하던 몸부림이 한 줌의 바람 속으로 천년의 호흡이 스며들며 가슴에서 뭔가가 풀어지고 있다. 천년의 세월을 품은 느티나무도, 속을 잃은 거죽의 품속에서 그리움을 아로새기던 하늘도, 몸을 잃고 바람에 뼈를 말리던 사리들도 인연으로 일어나고 스러지는 부처의 몸인 것을 보았기 때문일까. 


봄은 겨울로부터 오지 않는다. 봄은 봄으로 폭염의 여름과 낙엽의 가을, 삭풍의 겨울을 한꺼번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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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bodhisat 2021-03-29 22: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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