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봉규 연재동화 졸참나무처럼
우봉규 연재동화 졸참나무처럼14
우 봉규 2021-03-23 (화) 08:00
정선 제일 초등학교
멀리 학교가 보였습니다.
진부로 가는 길 옆에 꼭 성냥갑 만한 학교가 산속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저 학교야.”
능금이가 손가락으로 학교를 가리켰습니다.
“저쪽 밑에 아파트가 생기면서 오히려 학생들이 늘었지. 그 전엔 학교 문을 닫으려고 했는데. 그땐 전교생이 10명도 되지 않았거든.”
별안 노스님이 흐뭇하게 웃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산골에 아파트가 생겨?”
정안 스님이 능금이에게 물었습니다.
“서울의 유명한 회사에서 커다란 농장을 만들었거든 그래서 그 직원들 아파트가 생겼어.”
정선 제일 초등학교.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던 아이들이 노스님과 별안 노스님을 보려고 몰려들었습니다. 아마도 스님이 학교에 온 것은 처음인 것 같았습니다.
“아이구 이 녀석들, 우리 같은 돌 중은 처음 보는 몬양이야. 허허!”
별안 노스님이 너털웃음을 지었습니다.
“능금아!”
몇 명의 아이들이 능금이에게 몰려들었습니다.
능금이는 빙긋 웃기만 했습니다.
“왜 학교 안 왔어?”
능금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학교 나오는 거지?”
그제야 능금이가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능금이 인기가 좋구나. 특히 남학생들한테......”
노스님이 능금이의 등을 두드렸습니다.
"그런데 저 검은 안경을 쓴 친구는 누구야?"
아이들이 능금이에게 그렇게 물었을 때 평소 같으면 고개를 푹 숙였을 정안 스님은 오히려 고개를 빳빳하게 들었습니다.
"응, 내 친구."
"그럼, 쟤 스님이야?"
"그렇지."
능금이는 아주 힘차게 말했습니다.
"쟤, 앞을 못 봐?"
"아니, 오른쪽 눈이 나빠서 검은 안경을 쓴 거야."
능금이는 활짝 웃었습니다.
정안 스님도 빙긋 웃었습니다.
4학년 1반.
교실은 한창 수업 중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주 젊은 남자분이었습니다.
“능금이구나.”
노스님과 별안 노스님이 선생님에게 합장을 하였습니다. 선생님도 합장을 하였습니다.
“지난번 물난리 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다행입니다.”
“걱정하셨지요?”
별안 노스님이 말했습니다.
“무사한 줄은 알고 있었습니다. 한번 찾아뵙지를 못해 죄송합니다.”
“죄송하기는 제가 더하지요. 길이 끊겨서 능금이 혼자 학교에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 이제 능금이 학교에 나오는 거지요?”
“능금이뿐만 아니라 하나 더 달고 왔습니다.”
별안 노스님이 정안 스님을 가리켰습니다.
정안 스님은 선생님에게 합장을 했습니다. 선생님의 눈이 커졌습니다.
“이름이?”
“김명구입니다.”
정안 스님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절에서는 정안이라고 부릅니다.”
노스님이 싱긋 웃었습니다.
“아주 잘 됐습니다. 우리 학교는 산골에 있지만 자꾸자꾸 아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하나 둘 들어올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두꺼운 안경을 쓴 선생님은 연신 능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정안 스님도 그런 선생님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노스님과 별안 노스님도 선생님이 마음에 드는지 한껏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창밖 복도에서 아이들이 몰려서 교실 안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명구는 어디서 학교를 다녔습니까?”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경기도 시흥 포리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노스님이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럼 내일부터 능금이 하고 명구가 학교에 나올 수 있겠네요?”
선생님의 물음에 노스님과 별안 노스님이 동시에 정안 스님과 능금이를 쳐다보았습니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내일부터 우리 잘 해보자.”
선생님이 한꺼번에 정안 스님과 능금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때를 맞춰 복도에 있던 아이들이 함성을 질렀습니다. 선생님도 웃고, 노스님과 별안 노스님도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네 사람의 손에는 갖가지 물건들이 들려 있었습니다. 정선장에서 산 밑반찬부터, 정안 스님과 능금이의 학용품까지 잔뜩.
정안 스님과 능금이의 발길은 가벼웠습니다. 그것은 노스님과 별안 노스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구나 능금이의 손에는 예쁜 케잌도 들려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의 새로운 학교생활을 축하하는 노스님과 별안 노스님의 마음이 담겨 있는 케잌이었습니다.
다음날 즐거운 등굣길.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나란히 서서 두 노스님들에게 합장을 하였습니다.
“학교 끝나도 둘이 실컷 놀다 오너라.”
노스님의 말을 듣고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서로를 마주 보며 빙긋 웃었습니다.
타박타박 동그란 자갈을 밟으며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언제까지 있을 거야?”
“몰라.”
정안 스님이 능금이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자갈 하나를 발로 차면서 말입니다. 정안 스님은 항상 누가 언제까지 있느냐고 물으면 괜스레 슬퍼졌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오래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노스님이 일부러 떠돌아다니는 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적당하게 친구들도 사귀고, 학교도 눈에 익을만하면 느닷없이 자리를 옮겼습니다.
정안 스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능금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앞서가는 능금이를 바라보며 희진이를 생각했습니다. 희진이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공양주 할머니는? 그리고 그리고 은학리의 할머니와 적멸암 스님은......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능금이와 학교를 다닌다고 생각한 어제는 그렇게 즐거웠는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두고 온 졸참나무숲이 그리웠습니다.
이 나무는 졸참나무다. 참나무 중에 가장 작은 나무지. 그렇지만 졸참나무는 저 아랫마을에 흉년이 들면 스스로 열매를 많이 단단다. 먹을 양식이 없는 사람들이 굶지 않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나무를 부처님 나무라고 한다. 절 사람들은 모두 이 졸참나무를 닮아야지.
정안 스님은 처음 포리암에 올 때 노스님이 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무슨 생각 해?”
능금이가 다시 말을 붙였습니다.
“포리암 생각.”
“거기 좋아?”
“응 정말 좋아. 앞에는 갯벌이 있고, 뒤에는 산이 있고, 절 옆에는 수많은 졸참나무가 있고.”
정안 스님은 신나게 말했습니다. 찔끔 눈물이 비어져 나왔습니다. 이상하게도 다른 곳은 그렇지 않은데 두고 온 포리암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포리암이 깊은 산중에 있어서 경치가 좋은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히 친한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포리암은 늘 정안 스님의 가슴속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안 스님 자신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졸참나무에 대한 노스님의 말씀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졸참나무?”
능금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그런 나무가 있어.”
“난 참나무는 알아도 졸참나무는 몰라.”
“나중에 스님들께 물어봐.”
정안 스님은 혼자 빙긋 웃었습니다.
“나도 언제 한번 가보자?”
“그래, 방학하면 같이 가자.”
정안 스님이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거기에 친한 친구 있었어?”
정안 스님의 머릿속엔 순간적으로 희진이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금방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난 친한 친구 없어.”
능금이가 히죽 웃었습니다.
정안 스님도 활짝 웃었습니다.
능금이는 빠르게 길을 재촉했습니다.
“해가 저쯤에 있으니까 8시 반이 넘었어.”
“그걸 어떻게 알어?”
“저기 작은 소나무 그림자를 보면 알 수 있지.”(계속)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