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금이 

새소리였습니다.

물소리였습니다.

방 안 가득 햇님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이 눈을 떴을 때는 자리에 누워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급하게 일어났습니다. 잘못하면 노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질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을 부비며 밖으로 나온 정안 스님을 보며 노스님이 빙긋 웃었습니다.

“잘 잤냐?”

정안 스님은 뒷머리를 긁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사방을 살폈습니다. 능금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저 녀석 보게, 능금이는 부엌에 있다.”

 별안 노스님이 껄껄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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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와줄까?”

그러자 능금이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밥 다 됐어. 먼저 세수하고, 양치질해.”

그러나 정안 스님은 능금이 옆에 앉았습니다. 어쩐지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너 어제 코 골더라.”

“정말?”

“노스님들보다 더 크더라.”

정안 스님은 피곤하면 코를 고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매일 이렇게 밥해?”

“아니 오늘만, 밥은 항상 스님이 하셔.”

능금이가 또 생긋 웃었습니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둘 다 무릎을 세우고 나란히 앉았습니다. 능금이가 타오르는 불더미를 헤쳤습니다. 마지막 불이 타올랐습니다. 아무런 할 말이 없었습니다. 

 바깥 들마루에서는 두 노스님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학교는 보내야겠는데......”

“정안이는 안 보내려고 하는데.”

 "왜?"

"학교에 가는 것보다 안 가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아서. 어린 녀석이 학교에서 받는 상처가 너무 커." 

노스님의 음성엔 눈물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걸 이겨내야지. 언제까지 자네 품속에 넣어둘 텐가? 앞으로 우리 살날은 얼마 남지 않았어." 

“그렇기는 하지만.”

“능금이 혼자 다니기는 너무 멀어.”

“이 사람 엉뚱한 생각하고 있구먼.”

“무슨?”

“능금이가 걱정되지?”

“저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살아야 얼마나 살겠나?”

별안 노스님의 음성에도 많은 걱정이 묻어 있었습니다.

“자넨 나하고 다를 줄 알았더니." 

노스님이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그러나 별안 노스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정안이는 그래도 사내 녀석이고, 능금이는 여자애잖아.”

 “그나저나 여기서는 학교까지 얼마나 걸리나?”

“20리가 넘지.”

노스님이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어떻게 할까?”

"뭘 어떻게 해. 학교는 보내야지."

노스님이 긴 한숨을 쉬었습니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보내고 싶지 않아."

"일단 보내보자구?"

 별안 노스님이 빙긋 웃었습니다.

  "자넨 능금이 생각만 하지?"

“흐흐흐, 능금이는 나보다 더 산을 잘 타.”

 “그래에?”

 부엌에서 구수한 밥 익는 냄새가 났습니다.

하늘은 맑았고, 계곡을 내려가는 물소리는 점점 깊어졌습니다. 햇볕이 한없이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구름 한 점, 바람 한 점이 없는 날씨였습니다.

“그렇다면 내일은 우리 모두 학교나 한번 가볼까?”

“내일 말고 오늘 가보는 게 어떨까?”

“이 사람 갑자기 급하기는?”

그런데도 별안 노스님이 자꾸 노스님을 재촉했습니다.

 “아이들이 내일부터 학교 다닐 수 있게 말이야.”

“그럼, 내가 또 자네하고 여기서 살아야 되나?”

노스님의 입가에 미소가 돌았습니다.

“왜 싫어?”

별안 노스님도 웃었습니다.

 “지겨워서 그래. 자네하고 30년을 같이 있었는데......”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힘이 들기는 했지만... 그때는 젊었었잖아.”

 “어쨌든 아침 공양하고 생각해 보세. 자네가 나한테 친절하게 대한다고 약속하면 오늘 학교에 가보지.”

“예끼, 이 사람!”

두 노스님의 웃음이 파란 하늘을 갈랐습니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두 노스님이 하는 이야기를 몽땅 듣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행복한 아침상이 마련되었습니다. 

노스님과 별안 노스님은 무엇이 즐거운지 연신 껄껄거렸습니다. 

“저것들 함께 학교 다니면 좋겠지.”

“달랑달랑 손잡고 다니면 좋겠지. 그렇지만......”

노스님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능금이가 힐끗 정안 스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전 학교 다니기 싫어요."

정안 스님이 노스님을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노스님이 다시 긴 한숨을 쉬었습니다.

"절대로 학교는 안 가요."

정안 스님은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노스님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분명하게 밝힌 것입니다. 그런데 곧바로 불호령을 내려야 할 노스님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그렇다면 가지 말아야지."

노스님의 마음이 이렇게 흔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여태껏 노스님은 정안 스님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노스님의 한 마디가 법이고, 진리였습니다. 정안 스님은 조금도 노스님의 말을 어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노스님의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즐겁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어두워졌습니다.  

그때 능금이가 배시시 웃었습니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한테 인사만 하면 돼.”

심각한 정안 스님이나 노스님과 달리 능금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습니다.

 "그럼, 너 혼자 다녀."

정안 스님이 짧게 말했습니다.

"난 나 혼자는 학교 안 가."

처음 만났는데, 능금이는 남이 아니었습니다. 정안 스님이 물기 어린 눈으로 능금이를 바라보았습니다. 다시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을 했는데 능금이의 그 한 마디에 정안 스님의 고집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둘이 산 넘어서 다닐 수 있겠니?”

별안 노스님이 지그시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그러나 정안 스님도 능금이도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니 얘들이 꿀을 먹었나?”

반찬은 김치 몇 가지가 전부였습니다. 그렇지만 다들 달게 먹었습니다. 노스님이 그렇게 한 공기의 밥을 몽땅 비운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쩐 일인지 이곳에 와서는 노스님의 기침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노스님의 얼굴은 환하게 밝았습니다.  

즐거운 아침이 끝나고 설거지는 정안 스님 차례였습니다.

“설거지할 줄도 알어?”

능금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습니다.

“우리 절에서 설거지는 내가 몽땅......”

정안 스님은 그렇게 큰소리를 치려다가 그만 입을 다물었습니다. 늘 고생만 하시는 공양주 할머니에게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능금이는 손이 아주 빨랐습니다. 그릇을 씻는 솜씨가 정안 스님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학교가 그렇게 싫어?"

"......"

"사실은 나도 학교가 싫어. 혼자서 산 넘어 다니는 것도 싫고... 절 집 아이라고 아이들이 놀리는 것도 싫고... 운동회 때..."

능금이는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오늘 당장 학교 가 보자."

정안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불쑥 그렇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응."

항상 학교만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거렸는데 신기하게도 정안 스님의 마음은 정말 편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능금이와 함께 다닌다면 겁날 것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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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스님, 정안이가 학교에 간대요!"

 능금이가 밖으로 뛰쳐나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두 노스님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거참, 흐흐흐. 그렇다면 빨리들 준비해라. 기왕 가는 거 학교에 들렀다가 너희들 먹을 것도 사 와야지.” 

별안 노스님의 말을 듣고 능금이는 더욱 신바람이 났습니다.  

“방학이 12월 말이지?”

“난 몰라.”

능금이가 금방 울상이 되었습니다.

 능금이는 벌써 두 달 이상이나 학교에 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몇 번이나 전화를 하셨는데......”

“그럼, 친구들도 많겠다?”

능금이가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습니다.

“전교생이 50명도 안 돼.”

정안 스님은 불암사, 포리 초등학교, 그리고 희진이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희진이를 떠올릴 때면 희진이 이모가 생각났습니다. 정안 스님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정안 스님이 포리 초등학교에 정을 붙이지 못한 것은 아마도 희진이 이모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뭐 저런 애하고 놀아!

눈은 또 왜 저래?

지난겨울 들었던 그 말이 정안 스님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안 스님은 능금이의 다음 말을 기억했습니다. '난 나 혼자는 학교 안 가.' 정안스님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