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암 스님         

정안 스님은 성큼성큼 발을 옮기면서도 노스님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마을에 혼자 두고 온 할머니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산으로 올라갈수록 싸늘한 냉기가 온 몸을 감싸고돌았습니다. 자꾸만 더 많은 눈밭이 나타났습니다. 정안 스님은 잘 정돈된 잣나무 숲 밑에서 아랫마을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어느새 끝말랑이집은 보이지 않고, 마을 앞 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새파란 물이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다시 걸었습니다. 정안 스님의 발걸음은 산토끼처럼 빨라졌습니다. 무릎 밑을 파고드는 산대 숲을 지나자 멀리서 풍경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정안 스님은 풍경이 우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올라갔습니다. 

 가파른 고개 하나를 넘자 거짓말같이 편편한 산정이 나타나고, 그 끝 쪽에 조그만 오막살이집 한 채가 바람을 맞고 서 있었습니다. 눈밭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늘이 없었습니다. 끝말랑이집과는 다르게 햇빛만이 있었습니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평원에 동그마니 서 있는 잡목 나무 집. 집 안팎은 의외로 깨끗했습니다.

 적멸암.

 오막집 앞 나무판자 위에 새겨진 글자는 읽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삭아가고 있었습니다. 반듯한 기억자의 집, 도돔한 흙 뜨락 위엔 하얀 고무신이 한 켤레 놓여 있었습니다. 절이면 대둥전이 있어야 하는데 어디에도 대웅전은 없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용기를 내서 염불을 외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러나 방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정안 스님이 살며시 방문을 열었을 때, 놀랍게도 어떤 스님 한 분이 잘 꾸며진 불당 밑에서 좌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합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다시 문을 닫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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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 스님이 툇마루에 앉아 얼마를 기다렸을까. 

맑은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방문이 열렸습니다. 분명 얼굴은 젊은데 몽땅 세어버린 머리칼, 정안 스님은 숨이 막혔습니다. 한눈에도 자신과 너무 닮아있었습니다. 

“......?”

정안 스님은 스님을 향해 공손하게 합장을 했습니다.

스님도 정안 스님을 향해 합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빛이 부딪치는 순간, 정안 스님은 확연하게 보았습니다. 자신을 보고 꿈틀거리는 스님의 긴 눈썹을. 틀림없이 처음 보는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정안 스님의 바랜 기억 속에서 깊숙이 앉아있던 얼굴, 정안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스님이 넌지시 정안 스님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기 위해 애쓰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미소를 지을 때 양 입술 옆으로 엷은 보조개 두 개가 패이는 것도 정안 스님과 비슷했습니다. 

 정안 스님은 그 보조개를 보면서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어린 정안 스님의 마음은 자꾸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해도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숨을 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호흡이 가빠졌습니다. 얼굴도 몰랐던 아버지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적멸암 스님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어린 스님, 길을 잘못 드셨습니다, 그려. 여기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절이 아닙니다.” 

적멸암 스님은 먼 곳으로 시선을 둔 채 잠잠히 말했습니다. 정안 스님은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습니다.  

 “적멸암을 찾아왔습니다.”

 정안 스님은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당돌한 정안 스님의 말투에 스님의 눈썹이 다시 흔들렸습니다. 보기 드물게 하얀 얼굴이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앞에 선 이 스님이 아버지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목이 매여 다른 말은 할 수도 없었습니다.

적멸암 스님이 조용히 툇마루에 걸터앉았습니다. 

 “어떻게 어린 스님이 여기까지 왔습니까?”

정안 스님은 적멸암 스님의 얼굴 위로 잔 솜털이 마구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적멸암 스님의 꼭 다문 입술 주위에도 잔 경련들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햇빛은 쏟아졌고, 이름도 모르는 산새들은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물론 깊은 산속의 유일한 물고기들인 풍경들은 제멋대로들 울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여기 계시다고 해서......”

정안 스님은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여기는 그런 사람 없습니다.”

적멸암 스님이 두 눈을 깜박이며 덤덤하게 말했습니다. 정안 스님은 다리를 떨고 있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떨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따스한 겨울 볕이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그 겨울 햇볕을 받아들이는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것은 참나무, 저것은 오리나무, 저것은 소나무...... 햇볕은 그 나무들 가지 끝에서 한없이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짹짹거리며 숲 사이사이를 날고 있는 새들의 울음소리에 끝없이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자꾸 울렁거렸습니다. 적멸암 스님에게서 나는 향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무슨 말인가를 해야 되는데...... 정안 스님은 두 발로 툇마루 밑을 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딸깍 동작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혼자 있을 때면 마루 끝에 앉아 죄 없는 땅바닥을 긁어댔던 것입니다. 정안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어릴 때의 자신으로 돌아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가 적멸암이잖아요?”

 정안 스님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습니다.

비로소 적멸암 스님이 고개를 들어 정안 스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정안 스님도 적멸암 스님을 을 바라보았습니다. 적멸암 스님의 하얀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정안 스님은 될 수 있는 대로 적멸암 스님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면서 또 자신도 모르게 두 발을 까딱거렸습니다. 그 순간 적멸암 스님의 눈에서 눈물이 반짝 겨울 볕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적멸암 스님은 빙긋 얼굴에 웃음을 달고 있었습니다. 적멸암 스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가슴에서 목구멍까지 타고 올라온 뜨거운 응어리가 정안 스님의 말문을 막았습니다. 

 고개를 숙인 건 정안 스님이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채곡채곡 쌓아두었던 말들은 천지사방으로 쏟아지는 햇볕처럼 온 데 간 데가 없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내려갈 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눈빛이 자꾸만 흐려졌습니다.

 “머언 옛 날 이야기요.”

 정안 스님은 마당 정면의 키 낮은 소나무 가지 끝만을 바라보며 적멸암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습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보다 더 먼 얘기.”

적멸암 스님의 목소리는 차분했습니다.  

 “어린 스님, 내게 아들이 하나 있었어요. 난 걔가 네 살 되던 해에 헤어졌지요. 죽을 결심을 하고 산에 올라왔는데도 그 애 때문에 산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난 한 번도 마을을 내려가 본 적이 없어요. 마을에 내려가면 다시는 올라오지 못할 것 같아서.”

정안 스님은 어렴풋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한 번도 마을에 내려오시지 않으셨어요?”

“단 한 번도 내려가지 않았지요.”

정안 스님은 적멸암 스님의 말을 들으면서 점점 혼자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난 아직도 저 아랫마을로 내려가지 못해요. 지나가는 네 살짜리 아이를 보면 다시는 산에 오지 못할 것 같애서......”

 적멸암 스님의 말은 잠시 끊겼습니다.

 정안 스님은 노스님의 말을 기억했습니다. 

나무를 보듯 돌을 보듯

그냥 보고 오는 거다. 

“여기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요. 물도 저 산 밑에서 길어 와야 되고, 책 한 권도 없어요. 난 아랫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어요. 앞으로도 마을에 내려가는 일은 없어요. 스님도 어리지만 내 얘기 알아듣지요?” 

적멸암 스님은 긴 한숨을 뿜어냈습니다. 그리고 반쯤 지그시 감은 눈으로 줄기차게 햇볕이 퍼붓는 숲속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엄마도 아버지도 없어요.”

정안 스님은 그대로 엎어져 울었습니다.

그러나 적멸암 스님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스님, 누구도 원망하지 마세요. 아마 노스님께서 그래서 나한테 보냈을 겁니다......”

적멸암 스님의 목소리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정안 스님은 고개를 들었습니다.

“정말로 적멸암에 스님의 아버지가 있다고 하셨습니까?”

 정안 스님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적멸암 스님의 다음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급하게 일어났습니다. 

  정안 스님은 툇마루에 앉아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적멸암 스님에게 공손하게 합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섰습니다.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런데 정안 스님의 등 뒤에서 적멸암 스님의 울음 섞인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

 “스님, 끝말랑이집, 그곳에 계신 분이 스님의 친할머니입니다. 그 분은 10년 동안 부지런히 양식을 날랐지요. 혹시 내가 굶을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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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안 스님은 홱 돌아섰습니다.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마주친 적멸암 스님의 하얀 얼굴 위에도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정안 스님은 조용히 돌아섰습니다. 끝말랑이집의 할머니...... 정안 스님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발은 돌부리에 채이고, 얼굴은 나뭇가지에 긁혔습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끝말랑이집에 도착했습니다.

 해거름.

집은 너무 조용했습니다. 

마지막 햇빛이 마당의 반을 갈라놓고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없었습니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할머니가 없었습니다. 아침과는 다르게 잘 정돈된 방, 시렁 위에 가지런히 이불이 포개져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급하게 뒤꼍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곳에도 없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멍하니 동구 밖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창 넓은 모자를 쓴 아저씨가 마당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정안 스님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었습니다.

“......?”

정안 스님은 넋 나간 사람처럼 눈동자가 풀려 있었습니다. 그런 정안 스님을 바라보는 아저씨가 인상을 찡그렸습니다.  

“꼬마 스님, 명구 할매 찾으러 왔나요?”

 “명구 할매요?”

 정안 스님은 벌떡 일어났습니다. 한 번도 제대로 써보지는 못했지만, 자기 이름이 명구였습니다. 학교 친구들 외에는 아무도 불러주지 않던 이름. 

“10년 전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술만 한잔하면 우리 명구, 우리 명구해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명구 할매라고 불러요.”

 정안 스님은 마루에 다시 주저앉았습니다.

“어디 가셨나요?”

정안 스님의 목소리는 급했습니다.

“아까 급하게 떠났어요. 어디를 가느냐고 물어도 대답도 않고, 다시는 마을에 못 온다는 말만 했어요. 잘 움직이지도 못하시는 분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걸어가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에요. 하기야 그 양반 우리 마을에 첨 들어올 때도 그렇게 바람같이 왔었다니까......”

그 아저씨의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눈을 감았습니다. 은학리에 바람이 불었습니다. 학 울음소리 같은 바람이 불었습니다. 정안 스님을 가두고 있던 굴렁쇠같은 옛날이 가물가물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영원히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빈 마당 죽은 감나무 가지 끝에 떨어지는 늦은 겨울 볕처럼.